분주한 2월

 

―역사적 올림픽에, 
민족의 명절 설날에,
북한 사람들의 방남.
가슴 뭉클한 공동입장
평화의 대화로 이어져야―

 

올 2월은 참으로 바쁩니다. 역사적인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이나 열리고 있으니 텔레비전 앞에 눌러앉아 불꽃 튀는 경기진행 상황을 봐야하고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그 일행들의 깜짝 방남(訪南)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의 명절 설날을 맞아 또 한 차례 치른 ‘귀성전쟁’ 등등 그야말로 즐거움으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2월 한 달입니다. 그러잖아도 평월보다 사흘이나 날수가 적은 달이다 보니 더욱 마음이 바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올림픽은 참 재미있습니다. 전 세계의 100개 가까운 나라들이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출전시켜 국가의 명예를 걸고 각축(角逐)을 벌이다 보니 올림픽이야말로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올림픽은 4년에 딱 한 번 대회가 열리다 보니 선수들은 그동안 이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 뼈를 깎는 각고의 훈련에 몰두해야 함으로 그들이 겪는 고통은 어떤 말로 표현을 한들 지나침이 없습니다.

올림픽은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키고 기존의 영웅을 몰락시키기도 합니다. 영원한 승자가 없는 것이 스포츠의 세계인지라 그가 누구인들 정상의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혜성처럼 나타난 도전자에게 월계관을 벗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패자의 운명입니다.

승자에게는 박수와 찬탄이 쏟아지고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패자에게는 오직 고통이 따를 뿐입니다. 승자는 웃고 패자는 눈물짓는 것, 그것이 승부의 세계요, 바로 올림픽입니다. 1000분의 1초,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찰나의 승부, 그런 승패의 생생한 현장을 우리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목도하고 있습니다. 승자는 기쁨에 넘쳐 환호작약(歡呼雀躍)하지만 패자는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올림픽 외적인 뉴스로 시선이 옮겨가 빛이 나기도 했고 김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느닷없이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선수단, 예술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을 보내 온통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주민들 밥 굶기고 핵무기나 만드는 줄만 알았던 나라인데 어쨌든 정치적으로 ‘한 수’ 한 게 분명합니다. 거기다 실체가 궁금해 호기심의 대상이던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신데렐라가 되어 나타났으니 ‘어쭈구리!’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입니다. 삼국유사에도 나올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정월 초하루 설 명절은 조선 고종 때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는 대개혁을 단행하면서 수난은 시작되었습니다. 고종은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1일로 전격 고지함으로써 음력시대가 막을 내리고 양력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일제(日帝)는 조선인의 전통을 탄압하면서 양력 1월1일을 신정(新正)이라 하여 설을 대신하게 했고 설날은 구정(舊正)으로 밀어내 탄압의 대상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국민의 의식 속에 뿌리 내린 설이 사라질 리는 만무했습니다.

*사진: ‘민족의 대이동’이 된 설 명절. 고향으로 향해 가는 차량행렬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NEWSIS

일제는 신정을 공식휴일로 정해 관공서와 기업을 앞세워 명절로 쇠도록 했고 학교는 방학을 하는 선심을 썼습니다. 반면 구정에는 기업에 조업을 강요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빠지지 못하게 시험을 치렀습니다. 설날이 가까이 오면 떡 방앗간의 문을 닫게 하고 설빔으로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리는 행패를 저지르기도 한 것이 당시의 풍경이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이 된 뒤에도 설날은 여전히 제 대접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초대 이승만대통령은 1949년 6월4일 공휴일을 지정하면서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국경일과 식목일, 한글날, 추석, 심지어 크리스마스까지 공휴일로 지정했음에도 음력설만은 외면해 버렸고 대신 신정은 3일간 연휴를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은 “음력설을 세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는 해괴한 논리로 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뒤를 이은 박정희 정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962년 정부는 구정임시열차의 증편을 불허했고 떡 방앗간의 단속도 강화했습니다. 그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어 제 이름을 찾지 못하던 설날이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공휴일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권시절이던 1985년이었습니다.

‘구정’이 ‘민속의 날’로, ‘민속의 날’이 ‘설날’이라는 제 이름을 찾은 것은 노태우정권 시절이던 1989년 2월입니다. 노정권은 ‘민속의 날’ 명칭을 ‘설’로 바꾸고 설과 추석을 3일 연휴로 정함으로써 100여 년 동안 천대받던 설이 드디어 복권이 돼 제 이름을 찾았던 것입니다. 당연히 전국에서 환호성이 일었습니다. 사필귀정입니다.

귀성전쟁은 동물들의 귀소본능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온종일 산과 들을 헤매던 짐승들은 해가지면 제 굴을 찾아들고 하늘을 날던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듯 인간도 때가 되면 저를 낳아 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공통된 동물적 본능입니다. 해마다 설과 추석이 되면 전 국민의 절반이 훨씬 넘는 인구가 전국의 도로를 가득 메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향으로 달려들 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부모 형제 일가친척들, 그리운 혈육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위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남북한선수단의 공동입장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둘로 갈라져 따로 입장을 하는 장면은 세계인의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는 없습니다. 일회성이기는 하지만 남북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입장하는 모습은 누구의 눈에도 감동적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드라마틱한 장면에 가슴 뭉클하지 않은 국민이 있었을까요. 비록 ‘평양올림픽’이라고 심통을 부린 사람들이라도 말입니다.

한 달 전 만해도 전쟁이 터질 것만 같던 긴장된 분위기였기에 이번 남북의 공동입장은 그야말로 멋진 연출이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이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평화를 위한 대화로 발전된다면 이번 올림픽은 역사에 길이 남는 이벤트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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