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헌법상의 의원 특권 국정감사
막말 고성 폭언 회의 파행
창의원 '갑질'에 수감기관 곤욕
수박 겉 핥기 변죽만 울리는
 품격 없는 감사 낯 뜨거워-

                               

요즘 전국의 국가기관, 공공기관은 연례행사인 국정감사 기간을 맞아 국회의원들의 열띤 활동으로 온통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산하기관장, 기관구성원들은 의원들의 열화 같은 질문과 추궁에 전전긍긍하며 진땀을 흘리는 것이 공통된 현상입니다.

국회는 12일부터 법제사법위원회를 비롯해 총 16개 상임위별로 제각기 미리 선정한 수감기관에 대해 지난 1년간의 업무 집행에 관해 20일간의 정기 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비롯한 여타 국가기관의 예산집행, 정책결정, 각종 사업의 추진결과를 감사하고 비판하는 국회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권한입니다.

국정감사 제도는 1689년 영국의회가 아일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한 것이 세계 최초, 국정감사의 기원입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의 법제도를 본받아 1921년 의회 내에 수사권을 가진 감사원(GAO)을 설치하고 상설 청문회 제도를 도입해 100년 가까이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의회청문회는 연중 특정사안에 대해 의원들이 형사가 되어 직접 조사하는 것을 일상적인 업무로 시행해 오고 있는데 GAO의 권능은 CIA, FBI를 능가하는 정보기관이자 수사기관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시 미국을 본떠 헌법을 제정할 때 대통령 권한 강화를 위해 감사원을 국회에 두지 않고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함으로써 미국과 달리 국회의 권한이 처음부터 약화된 게 사실입니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미국 의회 청문회와 달리 우리 국회의 국정감사는 진상을 파헤치기보다 수박 겉핥기가 되어 변죽만 울리는 것이 미국과 다른 점입니다.

그러기에 한국의 국정감사는 빈 수레처럼 소리만 요란했지, 통과의례로 끝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영국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닌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퓨전제도’라는 부정적 평을 듣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국정감사제도는 제헌 국회이래 제3공화국까지는 유지돼 왔으나 1972년 유신선포와 함께 폐지됐다가 1988년 6공화국에서 부활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신독재, 군사독재자들은 골치 아픈 국회의 간섭을 아예 차단했던 것입니다.

국정감사는 의원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처음 당선돼 국회에 들어 온 초선의원들은 첫 번째 국정감사를 치르면서 비로소 국회의원의 권위를 실감한다고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당선이 돼도 선거구에서 굽신 대는 것이 일상사가 된 의원이 국정감사 때가 되면 마음껏 ‘호기’를 부릴 수 있기 때문에 이건 마치 암행어사 부럽지 않은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제3공화국 시절이던 1960년대는 그야말로 국정감사의 ‘황금기’였다고 할 만큼 요란했습니다. 국정감사 철이 되면 헤드라이트를 켠 감사반 차량이 씽씽 도심을 질주하는 게 관행이었고 각 지방의 이름난 요정은 저녁이면 장구소리, ‘니나노’소리로 흥청대기 일쑤였습니다.

막말과 고성과 폭언이 난무한 12일의 법사위 국 정감사장.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회의장이 어수 선하다. /NEWSIS

국방위원회의 군부대 감사에는 4성장군기를 게양해 의원들을 예우했는가 하면 연병장에 탱크까지 동원해 장병들이 분열식을 하는 일도 있었고 전방 사령부에서는 군악대에 의장대를 도열시켜 초호화 환영식을 해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과잉의전이었지만 당시는 그런 부대장들이 유능한 지휘관으로 인정을 받았고 승승장구 승진도 잘 했습니다.

국정감사가 가까워지면 보좌진들은 바빠집니다. 해당 기관의 정보를 빼내 약점을 많이 아는 의원들이 언론의 스포트를 받기 때문에 지적사항을 되도록 많이 준비해야 유능한 의원으로 명함도 올렸고 ‘스타의원’으로 플래시 세례도 받았습니다.

감사시즌이 되면 수감기관 들 또한 곤욕을 치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씩 밤을 새워 가면서 감사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이 제각각 요구하는 자료가 엄청나고 예상 질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여 비위사실이 들통 나거나 작은 실수라도 지적받게 되면 기관의 명예는 물론 기관장의 ‘자리’유지에도 결정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연줄을 찾아 의원들에게 사전 로비도 해야 합니다.

어차피 국정감사란 잘 한일을 찾아내 상을 주는 것이 아니고 잘 못한 것을 들춰 내 호통을 치는 일인지라 피감기관은 어느 기관을 막론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국정감사 현장을 보면 민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수감기관장들은 무슨 큰 죄나 진 사람들처럼 막말에 폭언, 호통까지 서슴지 않는 의원들의 ‘갑질’을 고스란히 받아 줘야하는 처지이니 우리국회의 감사문화는 분명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엊그제 법사위 같은 곳은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자격유무를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해 막말과 고성, 폭언으로 난장판이 돼 인사말도 못하는 파행을 빚었고 이어지는 회의도 시정잡배들과 다름없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어린자녀들과 한자리에서 텔레비전을 본 부모들의 낯이 뜨거웠을 것입니다.

국정감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원들의 특권입니다. 감사를 통해 국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해 다음해의 예산편성에 참고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신중한 자세로 잘잘못을 살펴보고 잘한 것은 잘 한대로 격려를 해주고 잘 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질책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감사를 하는 쪽이라고 해서 마치 칼자루를 쥔 망나니처럼 대역 죄인을 다루듯 기세 등등 막말, 고성으로 회의 자체를 파탄 내는 그런 행동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의원에게도 인격이 있듯 회의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의원들에 달려있습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으려면 의정활동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범이 돼야합니다. 그러지 않고 지금처럼 막가파식으로 행동을 하다가는 정치권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원 개개인의 인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수녀와 국회의원이 한강에 빠졌습니다. 누굴 먼저 구했겠습니까. 수녀요? 아닙니다. 국회의원이라고 합니다. 왜 일까요. 국회의원을 오래 두면 강물이 오염될까봐서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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