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사람은 모두 늙는다

 

-젊음이 무엇을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듯이, 늙음도 무엇을
 잘못해서 받는 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늙는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고로 사람이 칠십 년을 살기 어렵다”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시구(詩句)는 당(唐) 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가 나이 마흔일곱에 지은 ‘곡강(曲江)’에 나오는 글입니다.

젊어서 과거에 낙방한 두보는 오랫동안 방랑생활을 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한때 좌습유(左拾遺)라는 벼슬을 얻었으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방으로 좌천되어 고난에 찬 나날을 보냅니다. ‘곡강’은 그가 장안(長安)의 동남쪽 황하의 지류 한 마을에 있을 때의 삶을 묘사한 시입니다.

―관아에서 퇴청할 때면 봄옷을 저당 잡혀, 날마다 곡강에서 술에 취해 돌아온다네, 그 어디에나 술빚은 있기 마련, 예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 어려운 데, 꽃 위를 맴돌던 호랑나비 보이다 말고, 강물 위를 스치는 물잠자리 유유히 나네, 아름다운 이 봄날, 우리 함께 어울려 한때나마 즐기면 어떠하리―

두보는 어지러운 세상, 혼탁한 관료사회에 실망하고 매일 같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오늘날 나이 70세를 ‘고희(古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두보의 이 시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그 옛날 수명이 짧았던 시절 사람이 70년을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두보는 60을 못 채우고 59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 100년 전 조선시대 이 땅의 백성들은 얼마나 살았을까? 민간인의 수명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국왕들의 수명은 실록(實錄)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27대 528년을 이어 온 조선조 왕들의 평균 수명은 몇 살이었을까? 47세였습니다. 가장 장수한 왕은 81년 5개월을 산 21대 영조. 다음이 72세까지 산 태조 이성계입니다. 그러니까 70세를 넘긴 사람은 단 두 사람뿐입니다.

그다음으로 15대 광해군과 26대 고종이 66세를 살았고 2대 정종이 62세를 살아 회갑을 넘긴 왕이 겨우 5명에 불과했습니다.

일제 치하였던 1930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34세였고 50세를 넘어 선 것은 1960년대 들어온 뒤부터 인데 그로부터 점점 수명이 늘어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에 61.9세였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013년 81.9세로 43년 만에 20세나 늘어났습니다. 남성은 58.7세에서 78.8세로, 여성은 65.6세에서 85.5세로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1970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미국, 일본, 중국보다 낮았지만 1986년 중국을 추월했고 2002년에는 미국도 넘어섰습니다. 놀라운 현상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수명이 그처럼 늘어난 것은 경제 발전에 따라 식생활과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의료 수준이 높아지면서 질병을 이겨내 사망률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늙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Newsis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합니다. 유엔 인구기금의 2013년 세계 인구 환경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여성의 수명은 각각 79세, 85.5세로 이 수치는 여성은 세계 3위, 남성은 18위로 남녀 전체를 합친 수명은 세계 10위였습니다. 나쁜 것은 세계 1등, 좋은 것은 꼴찌가 많은 것이 대한민국인데 평균수명에서는 상위권에 들어간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오래 사는 것을 첫 번째 염원으로 꼽습니다. 2천200여 년 전 진시황이 늙지 않는 신비로운 영약(靈藥)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오라고 500 동자(童子)를 동쪽으로 보낸 것도, 동양인들이 갈망하는 ‘오복(五福)’중 첫 번째를 ‘장수(長壽)’로 꼽은 것만 봐도 그 염원이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던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오늘날 서양의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인간의 수명을 늘린 것 역시 질병의 고통을 넘어 장수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축복인 것만은 아닙니다. 질병 없이 숨을 거두는 날까지 건강하고 의식주 역시 걱정 없이 살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분석에 의하면 우리 국민은 죽기 전 10~15년을 질병과 싸워야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구구팔팔이삼사(9988234)”라는 우스개가 술좌석의 건배사로 회자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운 판국에 야당의 한 의원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같은 선출직 공직자의 연령을 65세로 제한하자는 주장을 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노인을 폄하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잖아도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려 설 자리를 잃은 노인세대들에게 정신적인 상처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이제 ‘100세 시대’를 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60부터…”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산술적으로 제한하자고 하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건강입니다. 그가 건강하다면 나이가 얼마라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70세에 대통령에 당선돼 79세인 89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강한 미국’을 세계에 자랑하며 아무 탈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또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부터 89년까지 주석 직을 맡아 오늘의 중국을 미국과 함께 G2 국가로 올려놓았고 세상을 떠나던 1979년 93세까지 국가원로로 크게 기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건강과 철학과 능력이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회가, 그 나라가 잘 되려면 청년의 역동성과 장년의 추진력에, 오랜 삶의 경험에서 축적된 노년의 경륜이 조화를 이뤄 노장청(老壯靑)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운영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엊그제 설을 지내 다시 나이 한 살씩을 더 먹었습니다. 불평등하기 만한 세상에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만민이 평등하게 한 살씩을 더 하게 되니 이 보다 더한 공평한 은혜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북에서 온 호마는 찬바람에도 북쪽을 향해 서고 남에서 온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는 한시(漢詩)가 있습니다. 설 귀성으로 지금 전국의 도로는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름 하여 ‘민족의 대이동.’ 사람이나 짐승이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다름이 없습니다.

늙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젊음이 무엇을 잘해서 받은 상(賞)이 아니듯, 늙음 또한 무엇을 잘못해서 받는 벌(罰이)이 아닙니다. 나이 들어 늙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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