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2016년을 보내며

 

-어두운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태양은 다시 동녘에 떠오른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다.
온갖 수심 바람에 날려 보내고

 희망을 안고 새해를 맞이해야-

 

旅館寒燈獨不眠(여관한등독불면) 客心何事轉凄然(객심하사전처연) 故鄕今夜思千里(고향금야사천리) 霜鬢明朝又一年(상빈명조우일년) “차디찬 여관 등불에 홀로 잠 못 이룬다 / 나그네 설음 어찌 이다지도 뼈아픈가 / 그믐날 밤 지금 고향에선 천리 밖의 이내 몸을 생각하겠지 / 머리는 더욱 희어지고 내일이면 다시 한 살을 더 하나니”

머나 먼 타향에서 한 해를 보내는 외로운 나그네의 우수에 젖은 심정이 잘 묘사된 高適(702~765·唐)의 주옥같은 시 ‘그믐 날 밤 시를 쓰다(除夜作)’입니다. 

2016년 병신년의 해가 지고 있습니다. 붉게 물든 서쪽하늘 노을속으로 태양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또 한해가 저물고 있는 것입니다. 2016년 새해 아침 기억이 바로 엊그제처럼 선명한데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아쉬움과 함께 한줄기 회한(悔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칩니다. 저마다 나름의 희망을 품고 지나온 한해였기에 감회가 없을 수 없습니다.

분류(奔流)처럼 달려온 한해였습니다.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모두들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쫓기는 삶에 뒤질세라 그렇게 내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해인들 순탄한 해가 있었으랴마는 올해도 우리 국민들은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치적인 큰 사건들도 있었지만 사회를 어지럽힌 사건 사고도 많았습니다. 부모에 의해 저질러진 어린아이들에 대한 참혹한 범죄도 잇달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흉기를 휘두른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던 젊은 지하철수리공의 안타까운 죽음, 신안 섬마을 여교사 집단 성폭행사건 등등…참으로 가슴 아픈 많은 일들이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이성적이었던들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습니다.

올해도 우리 국민들은 제각기 희노애락에 일희일비하며 한해를 살았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이 인간의 삶일진대 그것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누군가는 권세를 얻고, 재물을 얻고, 명예를 얻어 기뻐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요, 누군가는 그런 것들을 잃고 낙망한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안타까운 별리(別離)로 눈물지은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그날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이어가는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야 비가오든 눈이 오든 힘겨운 삶을 이어온 것이 우리네 이웃들이었습니다.

4월에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패해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정치지형을 바꾼 일대사건이었습니다. 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준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붉게 물든 서쪽 하늘 아래로 다사다난했던 2016년의 해가 지고 있다. 다시 새해를 맞게 되고 역사는 계속되리라. /Newsis

올해의 가장 큰 사건은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탄핵(彈劾)입니다. 박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에 의해 저질러진 국정농단은 나라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정치스캔들입니다.

몇 달 째 도시를 뒤덮고 계속되는 수백만의 촛불 시위, 도대체 남녀노소 국민들이 왜, 차가운 거리에 나가 목이 쉬도록 함성을 질러야 하는지. 안보도 위기요, 경제도 위기요, 사회 또한 혼란한 이 엄동설한에 왜, 우리는 국민적 에너지를 그처럼 엉뚱한 곳에 쏟아야 하는지, 오로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은 우리사회가 처한 모습을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네 글자로 묘사했었습니다. '혼용무도'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말인데 마치 오늘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예언이라도 하듯 그 놀라운 명석함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들만이 아니라 박대통령 또한 올해 누구보다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이 “퇴진하라”고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서 그가 겪고 있을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오죽하면 “피 눈물이 어떤 것인가를 이제 알겠다”고 술회했다고 하니 인간적인 측면에서 측은지심을 갖게 합니다.

이제 박대통령의 선택은 한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래의 ‘인간 박근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박대통령이 갖고 있는 마지막 카드요, 지혜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구실을 만들어 핑계를 대고 현직에 집착하는 모습은 추태를 더하는 것 일뿐입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로 “국민 여러분, 오늘로서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하고 깨끗이 내려오면 될 일인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한번 뒤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쫓기는 삶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한해였기에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마음속의 거울에 비춰봐야 되겠습니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겸허히 반성해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없는 말 몇 마디로 하여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의 이기심을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많은 것을 갖고도 그것이 모자라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물음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날씨가 추우면 고생하는 건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입니다. 추운 잠자리에 배고픔으로 겨울을 나는 이들은 이때가 바로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영하의 차가운 지하철 시멘트 바닥에 라면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들에게 어찌 이 겨울이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쓸쓸한 양로원이나 고아원의 겨울도 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의지할 데 없이 홀로 사는 무의탁 독거노인들, 부모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도시 변두리의 극빈자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깨를 늘어뜨리고 추운거리를 방황하는 수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단속의 눈을 피해 숨어사는 중국동포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그들에게 이 겨울은 인내로 견뎌내야 하는 힘든 계절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어렵다하여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1792~1822)는 그의 시 ‘서풍의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애송(愛誦)하는 이 한 줄의 시구(詩句)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희망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훠이~훠이 바람에 날려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실낱같으나마 희망을 가슴에 안고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밤이 가면 아침은 오고 태양은 변함없이 동녘하늘에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새해는 분명 올해 보다 나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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