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권력은 허망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착각을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대통령을
 왕조시대의 제왕으로

 잘못 알았습니다.-

 

2016년 12월 19일 저녁 7시 3분, 국회에서 가결된 ‘대통령탄핵안’이 청와대에 전달됨으로써 박근혜대통령의 대통령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박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매우 슬픈 일이요,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생애 최고의 기쁨이었다면 이날 탄핵은 그것을 상쇄(相殺)하고도 남을 일생일대의 비극적 사건입니다.

1400년 전 중국에서 수(隋)나라를 무너뜨리고 당(唐)나라 300년의 초석을 다진 것은 고조(高祖) 이연(李淵)이지만 당의 국가체제를 확립한 것은 2대 황제인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입니다.

타고난 용맹으로 아버지를 도와 당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세민은 이연의 둘째아들입니다. 그는 왕위 계승자인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23년간 제위에 있으면서 당나라를 번창시키고 문화를 꽃피운 중국 역사에 금자탑을 세운 뛰어난 군주였습니다.

그런 태종이 어느 날 신료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태종은 “옛말에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 창업은 쉽고 수성은 어렵다하였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창업’이란 나라를 세우는 것을 말함이요, ‘수성’이란 일으킨 나라를 잘 이끌어간다 함입니다.

그때 상서복야(尙書僕射)의 벼슬인 방현령(房玄齡)이 먼저 나서서 대답합니다. “나라를 세우려면 뭇 영웅들이 목숨을 걸고 쟁투를 벌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많은 적들을 제압해 이겨야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창업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자 간의대부(諫議大夫)인 위징(魏徵)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직(社稷)은 하늘이 주는 것이므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하건대 일단 나라를 손에 넣으면 점차 교만해지기 마련이어서 정사를 게을리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민심은 군주를 떠나게 되고 결국 나라는 기울기 마련입니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려운건 그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태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습니다. “경들의 의견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요. 방현령은 나와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천신만고 끝에 나라를 세웠으니 창업이 어렵다고 본 것이요, 위징은 나의 뜻을 받들어 교만과 나태를 경계하고 사직을 안정되게 이끌어 오는데 온갖 힘을 다 쏟고 있기에 수성이 어렵다고 한 것인데 그 또한 맞는 말이요”라며 “어쨌든 창업의 힘든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소. 이제는 수성의 어려운 과업을 명심하여 그대들과 더불어 실수가 없도록 나아가도록 합시다.”

배석한 신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를 토대로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고사는 당태종의 치세를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의 일부분입니다. 이 책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당나라의 치세가 워낙 유명했기에 현재에도 동서양의 정치교과서로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사건에서 비롯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서 박근혜대통령은 정치인생 18년의 돌이킬 수 없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박대통령은 젊은 날 어머니, 아버지를 비명에 잃은 좌절을 딛고 아버지의 후광(後光)으로 이 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된지 3년 10개월, 임기를 1년2개월 남겨 놓고 절체절명의 막다른 궁지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창업인가, 수성인가”를 논했던 1300년 전 당태종의 일화대로 수성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현실에서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가 된 것이 아닌 가 싶습니다. 

박근혜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안이 청와대에 도착하기 전 열린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저의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께 송구하다”고 인사한 뒤 황교안권한대행과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 Newsis

박근혜대통령은 9일 탄핵안 가결 직후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행정수반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했습니다. 그에 따라 이제 •국군통수권 •조약체결비준권 •사면, 감형, 복권 권 •외교사절 접수권 •예산안 제출권 •헌법개정 발의 공포권 •공무원 임면권 •헌법기관의 임면권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청와대 비서실의 업무도 대통령권한대행인 국무총리에게 넘어가 회의주재는 물론 공식보고도 받을 수 없고 본관 집무실로의 출근도 할 수 없습니다. 청와대 경내에 있는 관저는 그대로 쓸 수 있고 전용 차량과 경호, 의전은 전과 같이 제공되고 월급은 받지만 일부 업무추진비 성격의 급여는 제외됩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으로서의 신분은 유지 되나 ‘유폐(幽閉)’나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확정이 되면 퇴임이후 누리는 권한도 박탈됩니다. 정상적으로 퇴임을 할 경우 받게 되는 연금, 비서관 3명, 운전기사, 무료진료 등의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되고 다만 경호혜택만 제공됩니다. 또 사망 시 국립묘지 안장도 불가능합니다.

2012년 12월19일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만해도 국민의 기대가 컸던 게 사실입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극단적 여성천시의 유교 잔재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것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국민들 또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과 부드러움, 섬세함으로 ‘좋은 정치’를 하리라는 기대였고 우리 정치의 고질인 정쟁(政爭)과 ‘차떼기 뇌물’같은 “악취 나는 부패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출발부터 잇따른 ‘인사난맥상’이 이어지고 꽉 막힌 ‘불통’이 드러나고 ‘문고리 삼인방’에 ‘십상시’라는 측근들의 흉측한 소문이 이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패를 가르고 “배신자는 심판해야한다”느니, “영혼이 비정상”이니, “우주가 돕는다”느니 하는 이상한 발언들이 국민들을 의아하게 했습니다. 그 사이  장관들과의 대면보고 마저 싫어하는 ‘대인기피증’이 알려지고 아버지 박정희의 감춰진 ‘전력(前歷)과 쿠데타, 유신독재 등의 과거를 덮고 업적을 미화하려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속이 뻔히 보이는 정책을 추진하다 급기야는 ‘최순실’이라는 덫에 걸려 결국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마도 박대통령은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하에서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왕조시대의 초월적 권세를 누리던 ‘제왕’으로 생각을 한 게 분명합니다. 아버지의 음덕(陰德)에 TK라는 지역적 배경, 콘크리트라는 노년지지층에 도취해 “짐의 말은 모두 옳다”는 무소불위의 과대망상이 오늘의 이 불행한 사태를 불러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만한 권력의 종말입니다.

지금 박대통령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있습니다. 구미의 아버지 생가는 방화로 소실되고 어머니 고향인 옥천에서도 숭모제가 난장판이 되는가하면 서울문래동공원의 5·16기념 아버지 흉상은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입에 침이 마르게 박대통령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신문, 방송들은 일제히 등을 돌려 있는 흉, 없는 흉, 온갖 험담으로 난도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민심은 조석변(朝夕變)’이라 했고 권력은 허망하다고 한 것입니다.

지난 2004년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되어 치고받고 아수라장을 이룰 때 의석에서 유난히 밝게 웃던 박근혜의원은 12년 뒤 대통령인 자신에 대한 탄핵 현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사(人間事)란 참으로 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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