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진퇴유곡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왕조시대 제왕처럼 하려다가
 오늘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지금 박 대통령의 선택은
 내려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와 정치에 관하여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선왕은 “은나라 탕왕(湯王)은 왕이 되기 전 폭군인 걸왕(桀王)을 축출했고 주(周)나라의 무왕(武王) 또한 그와 같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토벌했는데 신하인 자가 감히 주군(主君)을 죽여도 되는 일인가?”라고 묻습니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仁)을 거스르는 것을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거스르는 것을 잔(殘)이라고 합니다. 적이나 잔이 되는 자, 그들은 이미 임금이 아니고 한낮 필부(匹夫)일 뿐입니다. 나는 필부인 걸과 주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임금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걸은 하(夏)나라의 임금이고 주는 은(殷)나라의 임금으로 둘 다 똑같이 포악무도하고 잔인해 온갖 악행을 일삼아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사 결국 죽임을 당한 폭군입니다.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주장했던 맹자(孟子)는 “하늘은 덕이 있는 자에게 천명(天命)을 내려 만민(萬民)을 사랑하고 천하를 다스리게 하지만 임금이 덕을 잃고 포악무도(暴惡無道)한 행동으로 백성에게 고통을 주고 세상을 어지럽히면 주었던 천명을 거두어 덕이 있는 다른 자에게 맡긴다”며 부덕한 임금의 권력을 빼앗아 끌어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이를 ‘방벌’(放伐)이라 칭하였습니다.

맹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백성이 첫째이고 둘째가 나라이며 군주는 그 다음”(民僞本 社稷次之 君位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이런 민본사상(民本思想)을 주장한 것은 시공을 초월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오늘의 민주주의사상을 일찍이 설파(說破)한 것이어서 참으로 놀랍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혁명과 쿠데타는 정권을 뒤엎는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은 기존의 낡은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기 위해 민중들이 들고일어나는 것이지만 쿠데타는 일부 군인들이 합법적인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고 정권을 빼앗는 다는 점에서 그 근본이 다릅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소장이 탱크를 몰고 한강을 건너 장면정권을 무너뜨렸을 때 ‘쿠데타’가 아니고 ‘혁명’이라고 억지주장을 폈던 일은 바로 반란으로 합법정부를 불법으로 빼앗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시국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대통령의 분별없는 행태에서 비롯된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일파만파로 나라를 뒤흔들어 놓으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큰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차마 믿기 어려운 일들, 있을 수 없는 온갖 추악한 사건들로 하여 지금 수백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박근혜 퇴진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그 함성은 전국 곳곳에 메아리칩니다. 마치 56년 전 1960년의 ‘4월 혁명’이 연상되는 광경입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노도처럼 일어난 100만 군중의 촛불시위. 마음을 비우고 대통령직을 사퇴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다. /Newsis

검찰은 박근혜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했습니다. 피의자가 무슨 뜻입니까. 범죄혐의가 있다는 말입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피의자가 돼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박근혜씨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권위를 상실했습니다.

법적인 탄핵의 절차가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피의자가 되어 국민들이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마당에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 게다가 90%의 부정 평가에 5%의 지지율로 국정을 이끌 수 있겠습니까.

박대통령은 보았을 것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 100만 군중의 촛불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역할 수 없는‘민심의 쓰나미’(지진해일)입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이처럼 나라가 어렵게 됐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국정을 주도해야 할 여당은 지리멸렬한 채 분당 직전의 위기에 빠져 있고 또 호기(好機)를 맞은 야3당은 일찍 온 기회에 멈칫대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때를 만난 텔레비전들은 경쟁하듯 패널 들을 불러다 판을 벌이지만 각기 처방만 뜨겁지 백약(百藥)이 무효이니 국민들은 더 더욱 황당함을 금치 못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성경 말씀대로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입니다.

박대통령은 지금 진퇴유곡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 설 수도 없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풀죽은 얼굴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더니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일전을 벌일 태세로 검찰과 맞서고 있습니다.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막무가내 으름장도 놓습니다.

다시 맹자의 말씀입니다. 군주인수(君舟人水).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는 뜻입니다. 백성이 있기에 군주가 있고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엎기도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리에서 끌어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방벌’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지금 ‘박근혜호’는 침몰하고 있습니다. 304명의 꽃 같은 청소년들의 목숨을 삼킨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뱃머리만 내놓고 가라 앉아있는 세월호처럼 ‘박근혜호’는 이미 기능을 상실한 채 점점 가라않고 있습니다. 통탄스럽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태가 어려울 때 일수록 문제를 쉽게 풀어야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박근혜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실타래처럼 뒤엉킨 문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한 칼에 풀어야 합니다. 빨리 대통령직을 물러나는 것, 그것이 정답입니다.

이제 박대통령은 마음을 비우고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을 놓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정을 파탄 낸 자신의 과오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초야로 돌아가십시오. 지금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입니다.

어쭙잖게 변호사를 내세워 구차한 변명을 하다보면 대통령이 좋아 아는 말 ‘골든타임’을 놓칩니다. 박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도 들고 일어나지 않습니까.

박대통령은 자신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 과대평가한 것이 원인입니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진작 깨달았던들 오늘의 이 곤경은 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란 무소불위(無所不爲)한 존재가 아닙니다. 국민들에 의해 선출돼 일정기간 국정을 수행하는 자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착각하고 내가 하는 것은 모두 옳다는 허황된 생각으로 왕조시대의 제왕처럼 내 멋대로 행동하려다가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단언컨대 지금 박대통령은 천하의 책사(策士)가 묘책을 낸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물은 엎질러졌고 다시 쓸어 담을 수는 없습니다. 천하의 제갈량이, ‘알파고’가 온다 해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스스로 하야를 선언하고 내려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바람 앞에 촛불은 꺼진다”는 궤변을 믿고 시간을 벌려 하지 말고 내려와야 합니다. 사촌 형부인 김종필 전 총리는 “5000만이 내려오라고 해도 내려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했다지만 그 고집은 결국 더 큰 불행을 불러 올 뿐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