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산업기술경영대학원장

김상구 청운대학교 산업기술경영대학원장.

얼마 전 지인(知人)이 한통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 내용은 일리노이 대학교(어바나 샴페인) 대학원생(한국인)이 2016년 일리노이대학교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음악과 학생이 아니라 전자공학과 학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메일에는 학과 홈페이지에 소개된 그 학생의 수상소식과 공연 장면이 첨부되어 있었다. 공연장면은 음악인지 퍼포먼스인지, 시(詩)인지 애매했으며, 오히려 이것이 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종합예술을 연출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청중은 모두 일어나 낮선 장르(?)의 예술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존 케이지도 「4‘ 33’‘」라는 곡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 덮개를 열고 4분 33초 동안 피아노만 응시하다가 한 번도 건반을 두드려 보지 않고 퇴장했다. 4분 33초 동안의 기침소리, 웅성거리는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백남준도 아무도 거들 떠 보지도 않는 TV모니터를 이용하여 비디오 아트를 선보이고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그 경계선을 확장 시켰다. 이들처럼 진정한 예술가는 시대의 최전선에 서서 그 시대정신을 제일 먼저 수용하는 ’아방가르드‘인지도 모른다. 아방가르드는 전쟁에서 최전방의 낌새를 알아보는 척후병을 의미했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도 새로움을 추구한 뮤지션 겸 시인으로, 진정한 아방가르드로 인정받은 것일까? 

밥 딜런은 프랑스 시인 랭보나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밥 딜런의 원래 이름이 로버트 알랜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en)이었지만 딜런 토마스에게서 영향을 받아 밥 딜런으로 개명했다. 딜란 토마스(1914-1954)는 40세도 안 돼 요절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지는 않지만, 언어적 열정으로 빛나는 그의 시는 아직도 읽히고 있다. 어느 비평가는 딜란 토마스를 “토마스는 자기 손에 피처럼 시를 발견하여 소리 높이 절규한다.”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천재시인 랭보는 17살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20세에 절필한 괴짜시인이다. 그가 어린 나이에 잠시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미의식(美意識)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랭보는 그 이전에 아무도 체험해 보지 못했던 근대도시의 군중의 이미지를 시속에 도입하여 이것을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밥 딜런의 후기 가사가 랭보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 모호함을 보여준다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시인 로버트 로웰은 “밥 딜런은 기타라는 목발을 짚고 있어야 하는 시인이다. 음악이 없으면 그의 시는 불구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밥 딜런이 ‘공연되는 시’라는 일리노이 대학원생의 퍼포먼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음악은 국내의 대중음악계에도 많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문학상을 시상하는 스웨덴의 한림원은 밥 딜런이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왔기 때문“for having created new poetic expressions within the great American song tradition”이라고 노벨 문학상 시상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위대한 미국의 노래전통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며, 문학상을 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밥 딜런의 가사를 시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넌센스다. 최초로 위대한 미국적 시인의 탄생을 알리는 『풀잎』을 휘트먼이 발표했을 때 에머슨은 휘트먼의 실험적 언어 사용에 경배를 표했었다. 최초의 미국적인 소설을 쓴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도 미국적인 토속적 언어 실험을 다루고 있어 영국소설과 다르다는 호평을 받았다. 밥 딜런의 노래가사에 이런 문학전통과 새로운 시도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림원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호머와 사포는 노래로 불릴 것을 의도하고 시적인 텍스트를 썼는데, 밥 딜런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는 오랫동안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을 호머가 기록한 것이어서 그녀의 말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시상을 놓고 노벨문학상 영역 확장이라는 긍정적 측면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 논리는 어딘가 궁색하다. 영국작가 어빈 웰시(Irvine Welsh)같은 이는 “이번 수상은 노망나 횡설수설하는 히피의 냄새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변변치 못한 노스탤지어에 주는 상(this is an ill-conceived nostalgia award wrenched from the rancid prostates of senile, gibbering hippies)”이라고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놓고 이런 찬반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지만 정작 밥 딜런은 일언반구의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잠시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글귀가 나타났다가 사라져, 그가 12월 10일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밥 딜런의 문을 두드려(Knocking’ on Dylan’s door) 보았지만 아직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다. 노벨상 위원회를 노심초사하게 하는 그의 신비주의도 노벨상감이라 할만하다.

밥 딜런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노래,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Knocking’ on Heaven’s door)를 음미하며 그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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