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일해재단과 미르재단

 

-30년 전의 일해재단과
너무나 판박이인 미르재단.

측근들의 충성심을 뿌리치세요.
태화강 대나무 숲을 걷던
그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요즘 세간의 화제는 단연 ‘최순실 게이트’가 으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우병우 민정수석사건을 비롯해 ‘사드’후보지 문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단식, 여당의 국정감사 보이콧파동 등 굵직굵직한 사태들이 있었지만 이를 모두 덮어 버린 게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 자이기 때문입니다.

기회 있을 때 마다 매스컴에 이름이 등장하긴 했지만 베일에 가려져 여간해서 모습을 볼 수 없던 사람이 최순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 찾아냈는지, 선글라스를 낀 멋진 모습에 박근혜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가 되면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최씨가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박대통령 취임 후 정윤회씨 사건이 터지면서 부터입니다. 이때 정윤회씨의 ‘신상털기’가 나오고 그의 부인이 최순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최순실의 아버지가 바로 육영수여사 별세 뒤 박근혜양을 가까이서 도왔다는 최태민 목사라는 것과 박근혜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라는 데서 유명세는 시작이 됩니다.

그런 그가 매스컴의 톱으로 떠 오른 것은 ‘미르재단’, ‘K스포츠’를 설립하는데 중심역할을 했다는 의혹과 동시입니다. 당연히 언론들이 벌떼 같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야당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좋든 싫든 이제는 ‘최순실’이름 뒤에 ‘게이트’라는 ‘명예’까지 얻은 처지가 됐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설명을 하자면 미국에서는 정치, 경제적 큰 스캔들이 일어날 때면 언론이 ‘게이트’라는 명칭을 붙이는 관행이 있습니다. 1972년 현직 대통령인 닉슨이 사퇴하는 소동을 벌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워싱턴의 워터게이트호텔 지하 계단에 누군가가 몰래 도청 시설을 해 놓은 것을 호텔 경비원이 발견했고 공화당 소속이던 닉슨대통령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잡아떼다가 FBI조사결과 대통령 측근들이 저지른 소행임이 들통 나자 도덕성이 문제가 돼 궁지에 몰린 닉슨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납니다. 미 역사상 최초의 불행한 현직 대통령 사퇴였습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평범한 옷차림으로 울산 태화강 대숲을 산책하는 박근혜대통령. / Newsis

1983년 12월 전두환 대통령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일해재단’이라는 단체가 설립되고 기업인들로부터 599억원을 걷어 들인 적이 있습니다. 돈을 낸 사람들은 물론 그때도 전국경제인협회 회원인 재벌들이었습니다. 재단의 설립 동기는 아웅산테러 희생 유가족을 돕는다는 명분이었습니다.

아웅산 테러란 두 달 전 동남아 5개국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이 첫 방문국인 버마에 도착해 수도 랑군의 아웅산묘역 참배 직전 북한이 밀파한 특공대가 설치해 놓은 폭탄이 터져 서석준부총리, 이범석외무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목숨을 잃고 14명이 부상을 당한 참혹한 사건입니다.

현장에 늦게 도착해 구사일생 죽을 고비를 피한 전대통령은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 희생자 유가족을 위한 재단 설립을 지시했고 실세 중의 실세였던 장세동경호실장이 모금을 주도합니다. 그 결과 599억원이 걷혔고 정주영 현대, 김우중 대우, 구자경 럭키금성, 최종현 선경회장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합니다.

그러자 이내 시중에는 “유가족은 뒷전이고 전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재단의 명칭인 ‘日海’는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전대통령의 아호에서 따오고 재단의 신축부지로 성남에 2만6000평의 땅을 사들여 골프장과 수영장까지 만들어 사저(私邸)로 쓰려 한 꿍꿍이속이 들통이 난 것입니다.

실제로 전대통령은 7년 단임제 임기가 끝나면 구실을 만들어 국가원로로서 ‘상왕(上王)’노릇을 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총칼로 권력을 잡고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희생시키고도 권력은 영원한 줄 알고 후일을 도모하려 했던 걸 생각하면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준 본보기 사례였습니다.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전대통령은 꿈을 포기했고 일해재단은 ‘세종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학술단체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벌들이 권력의 ‘봉’노릇을 하는 것은 변치 않는 것 같습니다. 5공화국 전 60~70년대에는 서울 한가운데 호텔에서 아주 문을 열어놓다시피 하고 재벌들을 줄 세워 정치자금을 접수했습니다. 그때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군사독재시절이라서 언론이고 야당이고 시비를 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 말썽이 되고 있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사건은 30여 년 전의 일해재단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청와대의 실세가 나서서 모금을 주도했다는 의혹도 그렇고 전경련 회원인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모금에 참여한 것, 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한 것이라는 소문…등등이 판박이처럼 똑같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그런데 참으로 의아한 건 청와대의 두루뭉술한 대응태세입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아니면 아니라고 확실하게 해명하면 될 것을 “대응 할 가치조차 없다”는 무성의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전경련 역시 “청와대와는 관계가 없고 순전히 전경련 자체로 추진했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니  글쎄 ‘콩크리트 지지자’들 인들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거기다 더 이상한 건 야당의 최씨 증인채택요구에 새누리당이 ‘결사반대’로 나서고 있는 점입니다. 의심을 받으면 억울해서라도 공개석상에 불러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면 될 걸 왜, 굳이 막으려고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의혹은 의혹을 낳고 다시 추측은 추측을 낳는 게 시정(市井)의 민심입니다. 지금 상황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고나면 하나씩 더 불거져 나오는 형국이라서 사건은 정작 이제부터 시작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최순실씨 밑에는 또 다른 차모씨가 있고 그 아래 다시 김모씨가 있고, 사건은 줄기를 잡아당기면 잇달아 딸려 나오는 고구마처럼 점입가경으로 점점 더 흥미로워 지고 있습니다.

사실이야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박대통령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퇴임 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국민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측근들의 모사였다면 그 충성심을 뿌리치고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노후를 보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모를 비명에 보낸 정신적 고통이야 많았겠지만 금수저로 태어나 남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까. 패션 감각이 남달라 행사 때 마다 화려하게 새 옷으로 단장하고 손 흔들고 뽐내는 것보다 지난여름 휴가 때 ‘보통여자’처럼 수수한 차림으로 울산 태화강 대숲을 걷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고 친근감 있고 보기 좋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는 뜻대로 안 돼 골치 아팠겠지만 그런 평범한 생활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쉬운 일입니다. 세상일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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