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읍참마속

 

-사람이 마음에 들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봐야하고

사람이 밉더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봐야한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덕목인 것이다-

 

2200여 년 전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 촉(蜀)나라의 유비(劉備)가 천하를 놓고 쟁패를 벌이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유비의 군사(軍師)인 제갈량(諸葛亮)은 위나라를 무찔러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며 위세를 떨칩니다. 그러자 조조는 노장 사마의(司馬懿)에게 20만 대군을 줘 기산(祈山)에 부채꼴(扇形) 진을 치고  맞서게 합니다.

제갈량은 사마의가 워낙 지략이 뛰어나고 노련한 명장임을 알고 있기에 군량(軍糧)수송로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수비를 놓고 고민을 합니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중임을 맡겨 사마의에 맞설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때 마속(馬謖)이 자원을 하고 나섭니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발랄한 장수입니다. 하지만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라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을 합니다. “소장은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만약 패한다면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하고 거듭 청합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승낙하고는 “절대로 산위로 오르지 말고 고개 길을 막고만 있으라”고 각별히 당부를 합니다.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을 살펴보고 삼면이 절벽을 이룬 험산이라서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심산(心算)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산 위에다 진을 칩니다.

그런데 마속의 예측과는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좀체 위로 공격해 올라오지 않고 요지부동 제자리에서 버티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지나자 산 위 촉군 진영에는 식수가 떨어지고 식량마저 끊기게 됩니다. 그제야 고립된 것을 안  마속은 전군에 명령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하지만 위나라 의 맹공을 벗어나지 못하고 참패를 당하고 맙니다.

마속의 실패로 군사들을 본진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그에게 중책을 맡겼던 실수를 뒤늦게 후회합니다. 한 순간의 오판이 가져온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대표실에서 정세균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Newsis

군율을 어긴 마속은 약속대로 참형(斬刑)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참형이란 목을 잘라 죽이는 극형입니다. 마속의 능력을 아까워한 여러 장수들이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탄원을 하지만 그러나 제갈량은 단호히 불응합니다. “마속은 아까운 장수요. 그러나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려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는 것이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중국의 사서에 전해오는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친다”는 ‘음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입니다.

마속은 재기발랄한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하지만 경망한 것이 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비가 눈을 감을 때 “마속은 사람이 가벼우니 중용하지 말라”고 제갈량에게 충고를 남겼던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에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을 하지말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그만큼 삼국지에는 세상의 온갖 지혜가 다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예기(禮記)’에 보면 “사람을 아끼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愛知其惡), 사람이 밉더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憎知其善)”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제갈량은 마속의 능력은 알고 있었으되 경망(輕妄)은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칙에 입각해 군율을 실천한 것으로 ‘읍참마속’의 교훈은 후세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는 것입니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고 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 또한 자신을 죽이라고 사주(使嗾)했던 위징(魏徵)을 중용(重用)함으로써 당나라를 크게 융성시켰습니다.

그러나 편벽(偏僻)하고 옹졸한 지도자들은 바른 말 하는 사람을 기피하고 솔깃한 말을 일삼는 사람을 총애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맘에 드는 사람만을 애지중지해 나랏일을 좌지우지 농단(壟斷)하던 일을 우리는 조선조 오백년 역사에서 수 없이 보았습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세상만사는 사람에 달려있다”는 이 말은 “잘되고 못되는 일이 사람 쓰기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밝은 눈으로 좋은 사람을 골라 쓰는데 따라 치세의 성패가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나라가 몹시 혼란합니다. 그러잖아도 경제가 어려워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판국에 북한 핵 도발, 사드사태가 겹치고 우병우 사태, 한진해운 사태, 사상최고의 지진발생, 김재수장관 해임안파동, 최순실 미르재단, K스포츠 모금스캔들, 경찰 물대포 농민사망사건, 철도노조 파업…등등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음이 분명합니다. 설상가상 그것도 모자라 여당이 국정감사를 보이콧하고 당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마저 벌이는 희한한 형국입니다.

박근혜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 마다 ‘위기’를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습니다. 경제위기, 안보위기, 또 ‘무슨?, 무슨? 위기’를 역설하며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도 어쩌다 들어야 긴장이 되는 건데 하도 위기론을 자주 꺼내니까 국민들은 면역(免疫)이 생겼는지, 그저 무덤덤, 놀라워하지도 않습니다. 나라가 위기라면서 공무원들에게는 “골프를 쳐 경기를 살리라”고도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만 합니다.

폐일언(蔽一言)하고 쉽게 말하겠습니다. 오늘 이 혼란의 사단은 ‘우병우,’ ‘최순실’입니다. 언론이 그만큼 의혹을 제기하고 민심이 들끓으면 그들과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그게 대통령도 살고 국민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입니다. 천고마비, 이 좋은 계절에 비린내 나는 제갈량의 읍참마속을 되돌아 본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나 더 곁들여 제갈량의 치세의 삼원칙을 덧붙입니다. 공정, 공평, 공개의 ‘삼공(三公)’입니다. 그는 인사를 공정하게 함으로써 불만을 갖는 자가 없었고 상벌(賞罰)을 공평히 했으므로 누구에게 상을 주어도, 누구에게 벌을 주어도 시기하지 않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책을 감추지 않고 공개했으므로 주변에서 의심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제갈량을 전술전략의 귀재로만 알지만 그 밑바탕에 그런 투철한 경영철학이 있었음은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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