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김영란 법

 

-정의가 살아 숨쉬고
정직이 미덕이 되는 사회,

깨끗한 나라 대한민국,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2016년 9월 28일. 대한민국 역사는 이 날을 가히 혁명적인 획을 그은 큰 사건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름 하여 ‘김영란법’이라는 ‘저승사자’가 우리 사회 한가운데 불쑥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일년 열두 달, 그날 그날 땀 흘려 밥이나 먹고 사는 대부분의 정직한 서민들이야 ‘저승사자’ 아니라 그 보다 더 무서운 게 온다한들 겁날게 없지만 소위 ‘꼴 씸’깨나 쓰고 살던 사람들은 이제는 조심조심, 몸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공직에 몸을 담거나 그 사람들에 붙어서 사는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 법이 시행되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패 추방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영란법’은 2012년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의 김영란위원장이 추진해 빛을 보게 된 법안입니다. 공무원이 직무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 법의 공식적인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며 약칭으로 ‘청탁금지법’이라 하고 별칭으로 제안자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이라고 합니다.

이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현직 검사의 잇단 부정행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02년 부패방지법이 시행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공직자의 부패, 비리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특히 2010년 ‘스폰서 검사’와 2011년 ‘벤츠 여검사’사건이 일어나 향응과 금품 수수가 확인됐지만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자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비리를 규제하는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김영란 법’ 시행을 앞두고 농민들이 법안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를 메운 채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 Newsis

‘벤츠 여검사사건’은 남자 변호사가 내연관계인 여검사에게 사랑의 증표라며 벤츠차를 선물하고 명품 백을 사줘 세간을 떠들 썩 하게 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둘이 연인관계라서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자 좀 더 강한 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결국 김영란위원장의 발의로 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김영란위원장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첫 여성 대법관입니다. 대법관 임명당시 16년만의 40대 대법관이자 사법연수원 기수에 따른 연공서열을 10년 이상 뛰어넘은 파격발탁으로 화제가 됐던 사람입니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여성의 종중원(宗中員)자격을 인정하고 호주제와 사형제에 반대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하려 노력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영란위원장은 대법관 퇴임 당시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선언해 ‘전관예우’ 관행이 만연한 법조계에 경종(警鐘)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김위원장은 2012년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자 국민권익위원장직을 즉각 사퇴할 만큼 자기 처신이 분명한 인물입니다.

청탁금지법이 적용되는 기관은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국가인권위원회, 중앙행정기관 및 그 소속기관,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운영법에 따른 기관을 포함합니다.

또 각 급 학교와 사립학교 법에 따른 학교법인, 신문, 방송사업자, 인터넷신문사업자, 잡지 등 정기간행물사업자, 뉴스통신사업자 등의 언론사가 모두 포함됩니다.

이 법이 공론화되자 그동안 찬반논란이 많았습니다. 당사자가 되어 직접 감시대상이 된 공직자들은 불만을 말할 처지가 아니라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켜 볼 뿐이었지만 그 밖의 관련자들은 이런 저런 구실로 비판의 날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경제계 일부에서는 경기위축을 내세워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농축수산물 업계에서는 집단항의에 나서는 실력행사를 벌이기조차 했습니다. 또한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 역시 공직도 아니면서 공직에 준하는 범위에 포함되자 위헌논란을 제기해 법안이 헌법재판소까지 가야했습니다.

이 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건 식사대접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 원 이내라는 대목입니다. 이 법으로 인해 식당운영, 명절선물 등이 위축되어 내수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발과 ‘부패 척결’이라는 법 취지를 지켜야 한다는 찬성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올 7월 28일 '김영란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를 법 적용대상에 포함한 것에 대해서는“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효과가 커서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이라며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법 적용대상에 포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법이 시행되면 누구든지 위반행위를 공공기관 등에 신고 할 수 있습니다. 신고자는 사실이 확인되면 최대 2억 원의 포상금을 받게 됩니다. 또한 신고로 공공기관의 직접적인 수입 회복, 증대 또는 비용 절감을 가져온 경우 최대 30억 원의 보상금이 지급됩니다.

내용이 알려지자 위법을 적발하는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학원에는 벌써부터 수강생들이 줄을 서고 있을 정도입니다. 

1948년 정부수립이후 그때마다 부정부패추방을 큰소리치지  않은 대통령이 없었지만 그 누구도 부패를 추방한 이는 없었습니다. 철권통치의 상징이었던 박정희대통령은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서울 장충단 공원에 운집한 100만 군중에게 “한번만 더 표를 찍어 주시면 이 땅에서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결과는 허언(虛言)이 됐고 김영삼대통령 또한 취임일성으로 “단돈 천원도 받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측근들의 수뢰(受賂)로 그 또한 허사였습니다.  

박근혜대통령 역시 “부패를 추방 하겠다”고 호언 했지만 자신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취임일성으로 부패추방을 선언하고는 낯 뜨겁게도 그 자신이 뒷돈을 받은 사실이 공개됨으로써 체면을 구겼습니다. 말하면 무얼 할까. 지난 시절 대통령 자신이 검은 돈을 긁어모아 포승줄에 묶여 감옥에 갇힌 일도 있었지 아니한가. 그것이 대한민국 부패의 실상이요, 자화상이었습니다.

과거 조선의 조정이 당쟁으로 얼룩졌어도 망하지 않고 500여 년 이나 지속된 것은 가난해도 부끄럽지 않은 시대정서, 즉 ‘선비정신’이 그 사회를 지배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날 미국이 마약과 총성으로 날이 새고 져도 ‘신이 내린 나라’라는 찬사를 들으며 세계 초강대국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청교도 정신’이라는 깨끗한 국민의식이 그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이 법이 제대로 시행돼 우리 사회가 깨끗해지기만 한다면 ‘김영란’이라는 이름 석 자야 말로 대통령을 역임한 그 누구보다 훌륭한 인물로 대한민국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정의 와 정직이 살아 숨 쉬는 깨끗한 나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투명성기구가 선정한 ‘부패 없는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불려 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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