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진천군 보육시설연합회장

▲ 김주영 진천군 보육시설 연합회장.

2014년 갑오년의 한해가 저물어갈 무렵 대한민국은 일명 ‘땅콩회항’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갑질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끓기 시작했다.

울고 싶은 아이의 뺨을 때린 듯 온 국민은 분노했다. 사회단체의 고발로이어진 발 빠른 당국의 노력으로 단숨에 당사자를 구속하면서 요란한 한해를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을미년 새해는 인천의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 장면으로 온 나라는 또 한 번 분노 했다. 반복 보도되는 자극적 동영상은 날이 갈수록 국민적 분노를 키워갔고 임신한 가해당사자의 구속과 시설폐쇄조치에도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그렇게 우리 보육인들은 파렴치한 범법자 신세가 돼 버렸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육인으로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자괴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직도 어두운 새벽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울려대는 알람소리와 함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어린이집에 출근하여 난방스위치를 켜고 행정실로 들어서서 컴퓨터를 켜고 출근 할 직원들의 아침 커피를 위해 정수기 스위치를 넣고 나면,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을 필두로 하나 둘씩 아직도 졸린 눈을 부비며 등원을 시작으로 버스가 도착하고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손을 잡은 아이들이 모여드는 이곳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영그는 어린이집이다.

등원이 완료되면 아침간식을 나르는 교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큰 쟁반에 수 십 개씩 시금치죽을 담아 힘겹게 나르면서도 간식을 가지러온 사이 저희들끼리 무슨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로 가파른 계단마저도 단숨에 뛰어 오른다. 오전 보육일정을 마치면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점심식사 역시 교사가 간식 때 보다 더 무거운 점심을 한꺼번에 들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만3세 이상의 아이들은 제법 규칙을 지키며 식사를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하나하나 입에 넣어주기 바쁘다. 밥 한입 물고 아이한술 먹이고, 물 먹이고 입닦아주고, 다시 한입물고 국 떠먹이고, 교사의 식사시간은 다 합쳐도 5분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먹으면 다행이다. 아예 점심을 굶는 교사가 태반이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에도 교사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두운 교실 한켠에서 보육일지와 학부모 통신란을 확인한다. 낮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들에게 오후 간식을 날라다 먹이고 반일반 아이들의 귀가준비는 또 한 번의 전쟁이다. 소지품을 챙기고 얼굴을 닦고 머리를 만져주고 통학버스의 인솔교사에게 인계하고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과 종일반 수업을 마치고 여섯시에 귀가차량에 태우는 것으로 정규 보육이 끝난다. 그렇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퇴근 후 데리러오는 한 두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교실을 청소하고 나면 7시, 회의가 없는 날이면 퇴근이다. 이것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보육교사들의 일과다. 화장실을 갈 시간조차 없고,점심 한 끼 먹을 수 없어 그냥 굶어 버리는, 그야말로 전쟁의 나날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보육인 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으로서 교사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이 있다면, 점심식사 만이라도 맘 편히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직장도 점심시간 한 시간 만큼은 있게 마련이다. 탄광의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도, 건설현장의 일꾼들도,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점심시간 한 시간은 있다. 그래도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보육인으로서의 자긍심이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말 못하는 아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기가 아프면 병원도 데려가고 열나는 아이를 안고 아파했던 시간에도, 그들이 조국의 유일한 희망인 까닭에 참아온 세월은 분명 우리 보육인의 사명감과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겐 그것조차 없다. 그동안 숭고하리만큼 아름다웠던 수백만 보육인들의 땀과 노력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 끝났다. 이젠 우리 국민 누구도 보육인을 믿지 않는다. 정치인도 사회단체도 우릴 범법자로 낙인찍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교사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실시간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하고, 교사의 인권을 말하기조차도 험악한 사회 풍조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하는 우리는 언제까지 내 조국의 공공의 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과연 우리 보육인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걸까?

1990년대 들어서 대한민국의 보육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정부는 민간인을 융자사업자로 선정하여 보육 수요를 대신하게 하였다. 덕분에 국가적 위기는 모면했으나, 이젠 형편이 좀 나아진 정부에서 어린이집에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간의 노고는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에게 과거 역사를 말하라 하면서 바로 몇 년 전 까지의 보육인들의 노고를 말하지 않는다.

우린 보육인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학부모들의 욕구는 다양해지고, 부모와 어린이집 그리고 국가의 역할 또한 모호해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서로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행해지고 있는 작금의 보육은 정부의 흔들림 없는 보육 기조를 요구한다. 또한 국가는 무자비한 분쟁의 해결사가 아닌 이성적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어느 한구석의 문제 역시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디딤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고치고 달래서 함께 가야한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손가락이 상했다고 귀한 생명이 존재하는 몸 전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나라는 구성원 모두의 책임과 의무를 통해 존재하며 그 어떤 구성원의 잘못을 조직 전체의 문제인양 단정하거나 특정인의 공적을 과하게 말하는 것은 몇 번으로 충분하다.  결국 양질의 보육은 학부모와 국가의 신뢰 속에서 보육인들의 숭고한 사랑으로 그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보육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럼에도 우린 아이들의 두 번째 부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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