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올림픽 정신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분투하는 것이고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정복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
오늘 다시 그것을 생각한다-

 

지금 저 브라질의 아름다운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새로운 세계(A New World)’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제 31회 하계올림픽대회가 환호와 함성 속에 열리고 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남아메리카에서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리우올림픽은 전 세계 207개국 1만1,239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5일부터 21일까지 17일 동안 28개 종목에 걸쳐 지난 4년 동안 땀과 눈물로 갈고 닦은 기량으로 제각기 조국의 명예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올림픽의 기원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 벌인 일련의 시합에서 유래하였으며 달리기와 레슬링, 권투, 마라톤, 경마 등의 경기를 벌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남자들만이 참가해 온 몸에 올리브유를 바른 나체로 당당히 경기를 치렀다고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오늘 날과 같은 세계인의 축제가 된 올림픽은 19세기말 프랑스의 교육자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영감을 얻어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쿠베르탱은 1894년 오늘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를 창설했으며 2년 뒤인 1896년에 IOC의 주관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올림픽대회가 열렸습니다. 아테네 대회는 14개국에서 241명의 선수단이 참가했고 대회 정식종목은 육상, 사이클, 펜싱, 체조, 사격, 수영, 테니스, 역도, 레슬링 등 9개 종목이었으며 2회 대회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리우올림픽은 1회 대회가 열린지 꼭 120년이 되는 해라서 그 의미가 큽니다.

오늘 날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 수는 UN회원국 193개 보다 더 많은 나라가 참가합니다. 그때마다 개막식에서 보듯 올림픽은 지구상의 종족이 거의 모두 참가함으로써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올림픽 심벌인 오륜기(五輪旗)는 흰 바탕에 파랑, 검정, 빨강 등 3개의 둥근 고리가 옆으로 나란히 위쪽에, 노랑, 초록, 2개가 그 아래쪽에 얽혀 있는데 다섯 개의 원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5대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올림픽의 표어는 라틴어로 Citius(더 빨리), Altius(더 높게), Fortius(더 힘차게)입니다.

올림픽의 상징적 이벤트인 성화(聖火)는 발상지인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채화돼 개최도시로 전달되는 것이 관행입니다. 성화 봉송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히틀러정권이 나치선전의 일환으로 시행한 것이 최초입니다.

올림픽대회는 본 대회인 하계올림픽과 겨울에 열리는 동계올림픽이 4년 마다 번갈아 열리고 신체 · 감각 장애가 있는 선수가 참가하는 장애인 대회인 패럴림픽(Paralympic), 청소년 올림픽 등이 따로 열립니다.

올림픽은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철저하게 프로를 배제하고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준수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와 일부 프로가 뒤섞이면서 상업화에 물들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찬반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브랜드의 판매수익과 텔레비전 중계권 등의 수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정신은 순수한 스포츠맨십이 존중돼야 하는 비정치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독재국가나 개발도상국들의 체제선전장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냉전(冷戰)의 대결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전시장으로 만들었고 1950~80년대에는 동서냉전, 즉 공산진영의 종주국인 소련과 그 동맹들,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우방들의 첨예한 대결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제 31회 올림픽. 5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성대하게 열린 개막식. / Newsis

아이러니한 것은 대회 때 마다 거의 1위를 놓치지 않는 미국이 올림픽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실려와 동물처럼 노예생활을 한 흑인 후예들의 결정적 공로라는 점입니다. 흑인선수들은 인종차별을 딛고 월등한 성적을 거둠으로써 미국의 명예를 빛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로부터 해방돼 정부를 수립한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부터입니다. 선수 50명, 임원 20명이 출전해 복싱 역도 등 7종목에서 동메달 2개를 따 종합순위 32위 성적을 올린 것이 KOREA, 대한민국의 올림픽 역사입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팀은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명분으로 태극기를 들고 참가하는 정도였고 금메달은 감히 넘겨다 볼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1952년 15회 핀란드 헬싱키대회는 6 · 25전쟁 중에 선수 19명이 6개 종목에 출전, 동메달 2개를 얻어 37위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196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던 제17회 대회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습니다.

올림픽에서 한국이 첫 금메달을 딴 것은 1976년 7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21회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3kg급 양정모선수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때 한국은 은 1개, 동 4개를 추가하여 종합 19위에 올랐는데 그 당시 양정모선수는 국민적 영웅이 돼 한동안 전국이 들썩거렸습니다.

하긴 한국인의 올림픽 금메달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선수가 마라톤에서 1등으로 월계관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식민지 치하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선수로 출전했었기 때문에 한국선수로 기록되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랬던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으로 국력이 신장 돼 급기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쾌거를 이룩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금메달12, 은메달10, 동메달11개로 세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록 안방에서 치룬 경기였지만 실로 자랑스러운 성적이었습니다.

4년전인 2012년 영국의 런던올림픽에서는 금메달13, 은메달8, 동메달7개로 종합순위 5위를 차지해 ‘스포츠강국’의 위상을 여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 한국은 24개 종목에 선수204명, 임원129명등 총 333명의 선수단이 출전했습니다. 종목은 축구, 배구(여), 핸드볼(여), 탁구, 양궁, 유도, 태권도, 역도, 배드민턴, 육상, 수영, 다이빙, 펜싱, 체조, 레슬링, 필드하키(여), 사격, 골프, 사이클, 승마, 조정, 요트, 카누, 근대 5종 등인데 목표는 금메달 10개 이상, 종합순위 10위 이내입니다. 바라건대 땀 흘린 선수들의 노고와 더위에 지친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합니다.

올림픽은 새로운 별이 깜짝 떠오르기도 하고 빛나던 별이 허망하게 사라지기도 합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올림픽 무대입니다.

쿠베르탱의 이상은 올림픽 선서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이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고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승리가 아니라 참가 자체에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본질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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