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의 미래하천 프로젝트 '미호천 탐사'

소두머니를 배경으로 한 `미래하천 미호천` 탐사대원들.

미호천의 호수로 불리는 소두머니에 이르렀다. 소두머니는 문백면 은탄리 갈탄(葛灘)마을에서 시작해 초평면 연담리 반탄(半灘) 반여울 사이의 호수처럼 넓은 미호천의 지명이다. 소두머니는 은빛 모래사장과 금빛 물결위에 내려앉은 기암절벽의 태봉산(胎封山)을 담아내고 있다. 깊은 물속으로 큰 산이 뚫고 들어간 모습은 미호천 최고의 절경이다. 한자로 우담(牛潭)이라 표기하는데 호수가 소머리를 닮아서인지, 소머리처럼 생긴 큰 산을 담아서인지, 소를 제물로 바치어 용신굿을 지내서인지 지명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용이나 이무기가 살 만큼의 깊고 큰 호수의 하천임은 분명하다. 현재 수려한 경관의 소두머니엔 건립하다 중단된 노인요양원인 ‘사랑의 에덴원’만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유지니 들어오지 마세요.`란 입간판과 함께~~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상산팔경 중 절반인 네 개가 미호천에 있는 것만 보더라도 진천지역의 미호천이 얼마나 빼어난 절경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곳은 팔경 중 우담제월(牛潭霽月)로 불리는 곳으로 조선시대 김진환 시인은 비가 갠 후 우담에 비치는 달을 바라보며 티 없이 맑은 호수에 비치는 밝은 달빛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달은 우담에 있는 나무 그늘에 걸렸는데        [牛潭月掛樹陰繁]
아름다운 경계는 비 개인 마을에 서리었구나.  [光景偏多霽後村]
경굴은 짙은 안개 헤쳐 버린 듯                    [瓊窟披來濃霧色]
금물결은 진세의 때 묻은 흔적 씻었구나.        [金波洗出点塵痕]
대나무 그림자 번득번득 길게 드리웠는데       [亂明竹影長堂戶]
매화꽃 아름다운 향기 술잔에 드는구나.         [暗動梅香自入樽]
재자가인 어느 누가 싫어하리.                      [才子佳人誰不愛]
은근한 정서에 황혼이 가까웠도다.                [懇懃有約近黃昏]

「우담제월」은 진천군에서 펴낸 『내 고장 전통 가꾸기』 ‘제영’ 편에 수록되어 있다.

소두머니 이정표

소두머니의 깊은 냇물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물의 신(神)인 용을 모시기 위해 동쪽에는 청룡신당을 서쪽에는 백룡신당을 세우고 매년 정월 보름에는 동제를 지내고 가뭄에는 기우제를 지냈다. 이때 동네 주민들은 냇물에서 도리깨질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용신에게 자식을 낳게 빌면 영험이 있다하여 치성을 드리고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매년 10월이면 무당들이 청룡·백룡신을 모셔 용신굿을 하는데 이때 마을사람들은 농기구로 소박하게 거북을 만들어 농악을 앞세우고 행진하며 마을의 안녕과 소원을 빌며 하루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용신제는 1920년까지 전승되다 명맥이 사라졌는데 1995년 진천군에서 발굴하여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충청북도 대표로 출전해 문화체육부상을 수상했다.

연담리 반탄 반여울 마을 입구

초평면 연담리 반탄 반여울 마을에 이른다. 이 마을은 고려시대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가정 이곡선생이 귀양와 터를 잡은 곳이다. 당시 원나라에는 고려처녀를 공출하여 기녀나 노비로 삼을 때 원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금수만도 못한 일이니 동녀차출을 금지해 달라 요청한다. 황제는 상소를 받아 들였지만 원나라 신하들는 고려에 압력을 가해 이곡선생을 귀양 보낸다. 원나라 신하들이 분이 안 풀려 이곡을 살해하려 이곳을 찾아오니 금당천(지금 미호천) 반은 물이 낮은데 이곡선생이 낚시하고 있는 반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센 여울이 생겨 못 건너오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와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은 스스로 모래를 쌓아 여울을 만들고 호수를 만들어 생태적 순환을 만들어 간다. 큰 물고기가 살 공간도 사람이 들어갈 공간도 만든다. 호수도 만들고 급류도 만든다. 이제 하천은 자연의 역동성을 이용해 스스로 살려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환경적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공사를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소두머니는 아래도 여천보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상실했다. 여천보 아래는 육상식물이 침투해 하천 본류에 가까이 갈수조차 없다. 고운 모래도 물길이 막히면서 펄속에 잠식을 당했다. 우리가 가꾸어 나가는 하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은탄교에서 바라본 소두머니.

소여울의 정자에 둘러 앉아 시조창을 읇조린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위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충북시조협회 권혁만 회장은 “시조는 선비나 상류층에서 학문을 겸해 읇조리는 노래다보니 엄숙하고 딱딱해서 재미가 없다며 충북에서도 시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1,000여명에 으르고 있다고” 넌지시 애기를 해준다. 시조는 평성, 묘성(조금 떠는 소리), 전성(내 뱉는 소리), 짓는 소리 등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 낸다. 어떠리 하여가 등 추임새는 하지 않는다. 국악은 정가와 속가로 나눠지는데 속가는 민요와 판소리고 정가는 시조 가사 가곡이다. 끝나고 나서 박수도 치지 않는다. 다만 미호천의 물줄기는 아무 말 없이 시조의 가락을 싣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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