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불량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
500억원의 제품을 불태운
뼈를 깎는 자기혁신으로
세계적 초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역사를 보고 배운다-

 

1993년 6월 7일 독일의 국제적인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의 켐핀스키호텔에서는 이건희 회장 등 한국에서 온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진 200명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삼성의 역사를 바꿔 놓은 이른바 ‘신경영 선언회의’였습니다.

이날 이건희 회장은 “20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21세기를 앞둔 중차대한 시점에서 시대의 흐름에 앞서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 한다”고 절박한 위기론을 역설하면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폭탄선언을 합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차가운 긴장감에 휩싸였고 이 회장은 “개인의 생각도, 습관도 바꾸고 회사의 규정도, 관행도 바꾸고, 그 밖의 모든 것, 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자”고 결연한 의지를 천명합니다.

당시 세계 경제는 세기말적인 환경 속에서 국가 간의 ‘경제전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급박한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같은 위기의 징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국내 제일의 대기업이긴 했지만 해외로 수출한 전자제품들은 싸구려라는 소비자들의 외면 속에 매장 한구석에 먼지가 덮인 채 놓여있는 그런 수준을 면치 못했습니다.   

창업주인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1987년 작고하고 뒤를 이어받은 지 5년, 이회장은 “현실에 안주해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의 미래는 없다”는 확신아래 “앞으로 10년 내 세계일류기업으로 성장하지 못 하면 회장 자리를 물러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입니다.

신경영회의의 핵심 내용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양(量)위주에서 질(質)위주의 경영을 실천해 궁극적으로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자는 것을 지향 점으로 삼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날 회의의 핵심화두는 ‘변화’였습니다.

1938년 이병철 회장이 창업 했을 당시의 ‘삼성상회’(위). 그 삼성이 오늘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변화를 추구한 예지에서 비롯되었다. 서울서초동 삼성그룹 본사(아래) /자료사진

삼성은 먼저 조기 출퇴근제인 ‘7·4제’를 도입하는 한편,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능력 위주로 임직원을 채용, 평가하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실시합니다. ‘7·4제’란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조기출퇴근제를 말하는 것으로 러시아워를 피해 일찍 출퇴근을 함으로써 직원들의 불편을 덜어줌은 물론 가족과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게 하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 개인의 자기 발전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게 하자는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국내의 모든 기관단체가 헌법처럼 준수했던 출퇴근시간의 변경은 당시로서는 혁명이나 다름없는 파격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또한 불량품이 발생하면 생산라인을 멈추는 ‘라인 스톱제’를 도입하여 제조부문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통상 수십, 수백 번의 조립공정을 갖는 전자회사에서 한번 라인을 세울 경우 매출과 생산성 손실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질을 위해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무조건 공장가동을 멈추라”는 이 회장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불량률을 낮추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 승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1994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제품 불량률은 11.8%였습니다. 100대의 제품을 만들면 12대의 불량품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때만 해도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하고 불량품을 만나도 “재수가 없다”고만 속을 썩일 뿐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불량품을 모두 회수하고 소각하라”고 엄명을 내립니다.

1995년 3월9일 구미공장 운동장에는 ‘품질은 나의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가운데 15만 대의 무선전화기, 키폰, 팩시밀리, 휴대폰 등 불량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2천명의 임직원이 지켜보며 제품화형식을 거행합니다. 먼저 직원들이 해머로 제품을 때려 부쉈고 이내 불을 질러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500억 원에 달하는 제품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삼성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달라졌습니다. 1993년 29조원이었던 매출은 2012년 380조원으로 13배 늘어났고, 세전이익은 8000억에서 38조원으로 48배, 수출은 107억 달러에서 1572억 달러로 15배, 종업원은 14만 명에서 42만 명으로 불어났고, 총자산은 41조원에서 543조원으로, 납세는 1조6000억 원에서 13조2000억 원으로, 시가총액은 7조6000억원에서 338조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제 삼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초일류기업으로 태산처럼 우뚝 섰습니다.      

선대 이병철 회장의 경영 이념은 ‘인본주의’였습니다. “사람이 중심이다. 모든 것은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내 회사 직원은 어느 기업보다 단 얼마라도 더 많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 것이 평소 경영철학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적게 주고 사람을 부려 먹겠다는 다른 기업들과는 사고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생전 이병철회장이 신입사원채용 면접에 참석해 직접 관상을 보고 직접 사람을 뽑았던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진실로 날마다 새롭고자 한다면,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또 날마다 새롭게 하라’는 이 글은 3천500여 년 전 중국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놋대야에 아홉 글자를 새겨놓고 아침마다 세수를 할 때면 그 글의 의미를 새겨가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치세(治世)로 백성들을 평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는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탕왕이 성군(聖君)으로 재위 시 태평성대를 이룬 것은 제왕이 그처럼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치세를 위해 골몰했던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진화론’의 찰스다윈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천만종의 생물가운데 수많은 종이 멸종되었지만 오늘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은 힘이 세거나 머리가 좋은 종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한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별표국수’로 시작한 삼성이 오늘 날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현실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미래에 대한 경영주의 탁월한 예지(叡智)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영국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Small Change, Big Difference.’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고 사회를 변혁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극소수 선구자들의 개혁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삼성에서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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