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한국인의 거짓 말

 

-좋은 말만 하는 사람보다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 스승이다.
거짓 말 없는 사회를 위해
악담도 받아들이는 도량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하다-

 

일제식민지시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와 함께 조선의 3대천재로 꼽혔던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는 친일행적으로 빛이 바랬지만 당대 그가 보였던 뛰어난 문재(文才)와 명망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춘원은 소설가로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날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친일파의 상징으로 단죄(斷罪)되고 평가절하 되고 있는 것은 1922년 월간 ‘개벽지’에 발표한 ‘민족개조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퇴영적(退嬰的)인 의식구조를 바로 잡아야한다”며 ‘민족개조론’8개항을 잡지에 실었습니다. 내용은 첫째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행실이 없도록 개조해야한다. 둘째 공상(空想)과 공론(空論)을 버리고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무라고 간주, 즉각 실행해야한다. 셋째 표리부동(表裏不同)함이 없이 의리를 지켜야 한다. 넷째 겁나(怯懦•겁이 많고 나약함)를 버리고 옳은 일, 작정한 일이거든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자가되라. 다섯째 사회적 공공의식과 봉사정신을 함양하라. 여섯째 1인1기의 전문지식 습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일곱째 근검절약정신을 함양해야한다. 여덟째 생활환경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 등 이었습니다.

이 글이 발표되자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흥분한 열혈 청년들이 칼을 들고 집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출판사의 집기를 마구 부숴대는 소동을 빚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백성들이 일제의 폭압아래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민족을 개조하다니, 유림(儒林)과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난 건 당연했습니다.

춘원은 평소 날카로운 민족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민족은 나태하고, 게으르고, 공짜를 좋아하고, 허황되고, 요령과 술수에 능하고, 속임수와 눈 가리기에 뛰어나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습성으로는 서로간의 신뢰도 어렵지만 국제사회의 신뢰도 어렵다”고 온갖 부정적인 시각을 다 동원해 질타하면서 “민족이 개조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애국심’으로 자신의 주장을 폈지만 끝내 공감을 얻지 못했고 변절자, 친일파의 낙인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춘원은 유교적 봉건도덕과 윤리관을 비판하고 “여자도 인간이며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여자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결혼과 가정에서 해방되어야한다”고 남녀평등을 역설하는가 하면 자유연애론을 주장함으로써 청춘남녀의 우상이 되기도 했고 ‘만인의 연인’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춘원은 나아가 “동성애 역시 존중받아야 할 사랑”이라며,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들도 사랑할 권리가 있고, 사랑할 자유가 있어야한다”고 동성애 옹호론마저 펴 힐난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도 찬반양론이 시끄러운 동성애문제를 100년 전 주장을 했으니 춘원이야말로 시대를 뛰어 넘는 선구자요, 계몽주의자가 분명했습니다.

춘원의 그런 ‘민족개조론’ 제1항이 바로 ‘거짓말을 하지말자’입니다. 당시 함께 독립운동을 하면서 존경하고 따랐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선생 역시 ‘민족개조론’을 발표했는데 그의 글 제1항 역시 ‘조선인의 거짓말’입니다. 도산은 “거짓은 불공대천의 원수”라면서 거짓말 잘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 입을 개조하여 참된 말을 하는 사람의 입으로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춘원이나 도산의 주장을 보면 그것이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당시 우리 국민들의 ‘거짓말습성’이 이미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인은 숨 쉬듯 거짓말을 한다?” 기분은 나쁘지만 반박하기도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 /디자인 박은진기자

몇 일전 일본의 한 신문이 “한국인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면서 ‘한국은 세계 제일의 사기대국이자 부패대국’이라고 악의적인 보도를 해서 또 한 번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지 ‘비즈니스 저널’은 ‘한국인의 거짓말’을 특집으로 다루고 ‘한국에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 수는 일본의 66배, 인구 대비로는 165배’라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의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니 놀랄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잖아도 역사교과서 왜곡,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뒤틀려 있는 우리국민들로서는 괘씸하기도 하려니와 또 한 번 화가 치미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렇다면 그 신문 보도는 과연 사실인가? 근거는 확실하고 쓸 것을 쓴 기사이기는 한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2013년 기준으로 두 나라 경찰, 검찰 통계상 한국의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27만 4000건, 일본은 3만 8000건이었습니다. 수치로 보면 한국이 7.2배이니까 확실히 사기범죄가 많기는 많은 게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일본은 인구가 1억2천680만 명이고 한국은 5천150만인데 수평적으로 발생건수를 단순비교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물론 두 나라의 사법문화가 다르고 법 규정도 차이가 있으므로 단순히 많다, 적다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변하고 싶은 게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신문, 잡지들이 한국을 비난하는 특집기사를 실으면 보통 5만~10만부가 더 팔린다고 합니다. 한국을 혐오하는 서적이 나오면 기본 20만권 이상이 팔린다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폄하하고 악평하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농후하고 그에 동조해 신문이나 출판사가 앞 다퉈 한국 헐뜯기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혐한(嫌韓)비즈니스’인 셈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일본의 한국폄하보도가 괘씸하기는 하더라도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는 내용들에 대해 냉정한 이성으로 차분히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남의 비판을 아주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이나 지역사회, 국가라 할지라도 비판을 받아들이기를 알레르기 적으로 거부합니다. 설령 그것이 옳은 지적이라 할지라도 체질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기질이 강합니다.

춘원이 아무리 변절을 하고 친일을 했다하더라도 그의 주장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신문의 보도 또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이성이요, 도량입니다. 상대가 밉다고 타당한 지적마저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한국인들의 거짓말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듯합니다. 아침저녁 TV뉴스를 보면 온갖 사기사건이 화면을 뒤덮고 있는 것을 매일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도 식언(食言)을 잘 하니 정치인들의 말을 믿을 수 있나,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길 수가 있나, 도처에 사기꾼이니 전화를 마음 놓고 받을 수 있나, 거짓말에 당하는 것이 무서워 남을 믿지 못하니 사회가 불안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눈 뜬 사람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나라를 ‘사기대국’이라 한들 무어라고 반박하기도 어려운 게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옛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오선자 시오적(道吾善者 是吾敵) 도오악자 시오사(道吾惡者 是吾師). “나에게 좋은 말 만 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에게 나쁜 말만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명심보감). 본래 몸에 좋은 보약은 쓰기 마련입니다. 무조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 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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