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산업기술경영대학원장

김상구 청운대학교 산업기술경영대학원장.

영국이 EU에서 탈퇴하자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북 아일랜드+스코트랜드+웨일즈+잉글랜드가 영연방으로 구성된 영국연합왕국(United Kingdom)은  지난해 스코트랜드 분리 독립 투표로 한차례 몸살을 앓더니 브렉시트로 인하여 다시 내부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아일랜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 아일랜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때 대영제국을 건설하여 세계를 경영해 본적이 있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조그만 국가로, 유럽 한쪽 끝의 섬나라로 전락할 운명에 처해 있다. 왜 이들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브렉시트를 감행 했을까? 설마 그렇게 되랴하고 브렉시트 찬성에 투표한 영국인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투표결과를 가난한 계층, 특정 지역민들의 일회성 반란정도로 경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두고 많은 서방언론뿐만 아니라 국내언론들도 영국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지적은 영국이 곧 망할 것 같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영국인들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재투표하자는 쪽으로 일부는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결과를 되돌릴 확률은 높지 않다. 영국은 기왕 브렉시트를 하기로 결정했으니 EU라는 커다란 제국에서 떨어져 나와 서서히 그들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영국이 ‘마이웨이’를 걸어가면서 일부 서방 언론의 예단처럼 그들의 미래가 밝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두려움을 걷어내야 한다. 영국인들은 작은 섬나라에서 이미 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을 갖고 있지 않는가.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같은 사상가도 “신앙, 상업, 자유에서 영국인이 최고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영국인의 신념과 촉이 뛰어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무한 경쟁의 세계화가 종말을 맞고, 새로운 체제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감을 영국인은 촉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브렉시트로 인하여 영국의 미래는 작은 잉글랜드로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선택은 고심 끝에 얻은 것일 수 있다. 영국의 현직 법무부장관 마이클 고브는 EU가 내리는 결정에 불만을 터트리면서 전 런던 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과 함께 브렉시트를 이끌어 왔다. 그에 의하면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지도 못하고 EU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으로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영국은 제한하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EU라는 것은 사람, 자본, 물건이 자연스럽게 오가게 하려는 하나의 공동체라고 볼 때,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영국 스스로 막아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집을 지어도 고양이가 새를 쫓지 않게 숲에서 5km떨어져 짓도록 하는 시시콜콜한 EU의 규제에 그들은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나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는 기업의 생동감을 떨어 뜨리게 했는지 모른다. EU의 규제는 그들의 삶을 무력하게 만들고 경제를 퇴조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독일 다음으로 EU에 많은 돈을 내야만 했다. 영국인들은 유럽 내의 제국과 같은 존재인 EU를 프랑스와 독일이 움직인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투표는 영국인들의 지리적, 심리적 소외감이 발동했을 개연성이 높다.

영국이 브렉시트와 같은 결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534년 영국의 헨리 8세는 교황청이 자신의 이혼문제에 제동을 걸면서 그를 파문하려고 하자, 그는 교황청에서 탈퇴하여 자신이 수장(首長)이 되는 수장령을 발표하여 영국에 교회를 새롭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영국 성공회다. 자신이 교황청의 권위를 물리치고 스스로 교회의 장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도 그렇게 하지말자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교황청의 지배에서 벗어난 영국은 오히려 산업혁명의 길로 나아갔다. 그가 교황청을 거부하게 된 요인이 단지 캐서린과 이혼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치적, 경제적으로 교황청과 결별할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의 브렉시트 결정도 EU가 더 이상 영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이 이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불안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지만 예전처럼 그들은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길을 닦아 놓을지도 모른다. 무한경쟁으로 피로한 삶에 내몰리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글로벌화에 사람들은 피로한 기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이 먼저(Britain first)”라는 조 콕스 의원 살해범의 말이나 미국인들이 트럼트에 말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옛 그리스 에피루스(Epirus)의 왕 피루스(Pyrrhus)가 로마를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지만 병력의 3분의 1 이상을 잃을 정도로 희생이 컸기에 승리를 했어도 별로 승리라고 할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즉 승자의 저주일 수도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찬성자들의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가 되지 않으려면 영국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들의 지혜는 또 한 번 세계 정치, 경제 질서를 바꾸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칼 마르크스의 말을 패러디하면 지금 유럽에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유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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