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폐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읽기 (1)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는 1883년 옛 합스부르크 제국(지금의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1883년은 경제학사에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 해에 사회주의 경제학자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죽었고,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관리 경제를 주장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태어났습니다. 경제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같은 해에 운명을 달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우연한 운명처럼, 슘페터의 대표 저서로 오늘 살펴볼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도 마르크스와 케인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위 책의 절반은 경제 이야기인데, 그 중 절반은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나머지 절반은 케인즈주의적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슘페터.

슘페터 vs 마르크스, 케인즈

슘페터는 경제학사에서 주류를 벗어난 특이한 인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인류 사회가 암울한 미래에 처할 것이라고 예언한 맬더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나,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등을 풍자적으로 그린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사를 대중적으로 풀어 쓴 교재 중에는 슘페터와 그의 경제이론 자체가 아예 빠져 있는 경우도 있고, 그를 언급하더라도 흥미 위주의 짧은 묘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신(Innovation),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런 것들이 슘페터에 대한 흥미 위주의 짧은 묘사 속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이 단어들이 슘페터를 대표하는 것들입니다. 슘페터는 이러한 용어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가의 모험적․영웅적 정신을 극찬하고, 그들의 혁신과 독점에 따른 거대기업 구축과 막대한 부의 축적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자본주의 질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정당성과 바람직함을 강변하고 있는 경제학자는 없습니다.

그런 그가 미래의 자본주의는 케인즈적인 관리자본주의 체제로 진화할 것이고, 종국에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심지어 그는 마르크스보다 한술 더 떠서, 사회주의 달성을 위하여 노동계급이나 사회주의자들의 눈물겨운 투쟁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들이 가만히 있어도 자본주의 사회는 저절로 사회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열렬한 옹호자가 미래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니, 마르크스와 케인즈에 대한 경쟁의식과 시기심으로 가득한 인물이 미래는 그들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하니, 슘페터가 특이한 인물인 것은 맞습니다.

그의 이러한 특이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이력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슘페터의 가문은 대대로 직물제조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의 선대들은 증기엔진을 도입하고 수공업체제를 공장체제로 변경하는 등,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슘페터 가문은 기업가로서는 성공하였지만, 상류층으로까지는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그가 네 살 때 사망하고, 그의 모친은 오스트리아의 대귀족과 재혼을 하였고, 그는 의붓아버지 덕분에 귀족사회에 편입되어 어려서부터 귀족적 교육을 받았고 최상류층의 문화를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가 평생 귀족적․부르주아적 속물근성과 허영심 속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빈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하였고, 이후 변호사․경제학교수․재무장관․민간은행장까지 역임하였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함께 그와 정반대적인 한계효용이론도 융성하였는데, 그는 이 양쪽과 교류를 하며 이 둘 모두를 배웠고, 이것이 나중에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저술하는데 주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의 삶은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수개월만에 장관직을 그만두고 민간은행장에 취임하였지만, 은행은 파산하고 그도 막대한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1932년 그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의 평생의 세 가지 소원(최고의 연애쟁이․승마인․경제학자 되기)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고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되는 등 명성을 재획득하고, 미국 상류사회와 수많은 교류를 하고,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다만 당시 미국 학계는 정부가 유효수효 창출을 통하여 불황과 실업을 극복하자는 케인즈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때라 이에 반대되는 슘페터의 이론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지적 자존심(혹은 허영심)에 크게 상처를 주었다고 합니다.

재무장관 시절의 슘페터, 1919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사회민주당과 보수적인 기독교사회당의 제2차 연립내각이 출범했는데, 당시 슘페터가 재무장관으로 입각했다. 뒷줄 왼쪽에서 3번째가 슘페터이다.

혁신, 창조적 파괴, 기업가정신

슘페터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혁신(Innovation)’에 있다고 말합니다. 혁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정태적인 자본주의와 동태적인 자본주의를 구분합니다. 그는 정태적인 상태에서는 생산방법이나 생산요소와 같은 여건들이 불변이고, 따라서 경제는 일정한 궤도를 따라 단순 재생산될 뿐이라는 말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재화․새로운 기술․새로운 시장․새로운 원료․새로운 조직 등 혁신이 등장하면 기존의 정체적인 기업들은 도태되고, 새로운 혁신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데, 슘페터는 이러한 과정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이러한 혁신의 반복과정으로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고 보았습니다.

사실상 자본주의 경제는 정상적이지도 않고 정상적일 수도 없으며 일률적인 방식으로 단순히 확대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새로운 기업에 의해서, 즉 새로운 상품 또는 새로운 생산방법 또는 상업상의 새로운 기회를 그때그때 존재하는 산업구조에 침투시킴으로써 내부로부터 부단히 변혁되고 있다. 모든 현존 산업구조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모든 조건은 언제나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모든 상태는 자신을 성취할 시간을 미처 가지기도 전에 전복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진보는 일대 소란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생산물들과 새로운 생산방법들은 기존의 생산물들 및 기존의 방법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동등한 조건에서가 아니라 기존의 것들에는 죽음을 의미할지도 모르는 결정적 우위를 가지고 경쟁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가 실현되는 방식이다.

폐기해야 할 첫 번째 것은 경쟁의 작용방식에 관한 전통적 개념이다. 경제학자들은 드디어 가격경쟁만을 보아왔던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교과서적 표상과 구별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격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 새로운 기술, 새로운 원료공급원, 새로운 타입의 조직 등에서의 경쟁이다. 이 경쟁은 결정적인 비용 또는 품질 우위를 차지하는 경쟁이다. 또한 그것은 단지 현존 기업의 이윤과 생산물의 판매수익을 강타하는 경쟁이 아니라 그 기초와 생존 자체를 강타하는 경쟁이다.

이러한 혁신의 관철자 혹은 창조적 파괴의 수행자를 그는 ‘기업가entrepreneur’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하는 기업가는 ‘자본가(자본의 소유자)’와 다른 것입니다. 그는 혁신의 주체인 기업가를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욕망과 열정에 불타오르는 모험가’로, 자본가를 자산과 화폐의 소유주로 안정과 관행을 희구하는 정태적인 사회계급으로 보아 서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업가는 자본가의 자본과 노동자의 노동을 연계시키는 모험적․영웅적 개인과 그의 가족일 뿐(아마도 그는 자신의 부르주아적 선대들을 그러한 기업가로 상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적 의미의 노동에 적대적인 사회계급(자본가 계급)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기업가는 자본가들에게 이윤이나 이자를 지급하여 전체 부르주아 계급을 먹여 살리고 자본주의에 활력을 부여하는 근본 기제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노동자와 서민도 기업가가 될 기회가 보장되므로 기업가의 존재 자체는 자본주의의 정당성의 핵심기제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기업가의 자신의 제국에 대한 욕망이란 현실에서는 독점적 지위와 그에 따른 독점이윤에 대한 욕망을 말합니다. 그는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간주하는 완전경쟁이란 단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완전독점도 단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이 강조하는 독점의 폐해는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독점은 현실적으로 생산력의 증대나 기술발전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기업가는 혁신의 관철을 통한 성공으로 일시적인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며 독점이윤을 획득할 것이라는 기대로 영웅적 모험을 할 것이고 이것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필수적 계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과 그에 따른 독점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혁신에 따른 초과이윤은 모방의 유인이 됩니다. 초과이윤을 쫓아 다른 기업들도 그 혁신을 모방하고, 이러한 모방은 다른 산업분야로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혁신의 모방이 다른 기업과 산업으로 전파됨에 따라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져 경제가 호황국면이 돌입하고, 혁신이 보편화되어 이윤이 감소하면 경제는 다시 후퇴국면에 돌입합니다. 이후 다시 혁신이 일어나면 이러한 호황과 후퇴국면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것이 슘페터 경기순환 이론의 기본 골격입니다.

사회주의, ‘성공한’ 자본주의의 미래

그러나 슘페터는 이러한 혁신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기업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관리 자본주의로 발전하여 종국에 사회주의 체제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개인 기업들은 점점 대기업화․트러스트화 되어 관리조직이 발전하게 되고, 이러한 기업관료들이 창조적인 기업가를 대신하여 지배권을 획득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본주의 성숙은 민주주의와 맞물려 정치사회적으로 관리주의․합리주의․평등주의적 사고의 확산을 가져와 종국에는 모든 것을 공적 조직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료주의가 대체함으로써 자본주의는 본래의 기업가적 낭만과 에토스를 잃고, 무미건조한 구속되고 관리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마르크스의 사회화 명제)으로 의미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기술적․조직적․상업적․행정적․심리적 전제조건들이 점점 더 충족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농업부문을 제외하고 비즈니스는 소수의 관료화된 기업에 의해서 통제된다. 진보는 약화되고 기계화되며 계획된다. 이자율은 일시적으로만 또는 정부정책의 압력 아래서만이 아니라 투자기회의 감소로 말미암아 항구적으로 제로에 수렵한다. 산업 재산과 그 관리는 非개인적이 된다. 즉 소유는 주식과 채권의 소유로 전락해버렸고, 최고 집행간부는 공무원과 같은 사고습성을 습득한다. 자본주의적 동기와 기준을 시들어서 거의 사라져갔다.

그는 자본주의가 그 토대적 실패나 계급적 패배 때문에 사회주의에 그 자리를 내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분히 마르크스를 의식하며 그와 정반대로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물질적․경제적 위기나 실패 혹은 노동계급과의 계급투쟁에서의 패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는 자신의 물질적․경제적 ‘성공’으로 인한 ‘상부구조’에서의 反자본주의적 정신과 문화의 확산에 의하여 ‘저절로’ 쇠락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내가 확립하려는 테제는 다음과 같다. 즉 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적․전망적 성과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실패의 중압에 의해 붕괴된다는 아이디어를 부정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바로 그 성공이 오히려 이 체제를 옹호하는 사회제도들의 기초를 침식하여 ‘불가피하게’ 그 존속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그의 추정상속자로서의 사회주의를 강력히 지향하는 상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결론짓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은 다름 아닌 자신의 업적에 의해서 진보를 자동화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에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완전히 관료화된 거대한 산업단위는 중소기업들을 추방하고 이들 기업의 소유자를 수탈할 뿐만 아니라 결국을 기업가를 추방하고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를 수탈하는데, 그 과정에서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는 자기의 소득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무한히 소중한 그의 기능을 상실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선도자들은 사회주의를 전도하던 지식인들이나 선동가들이 아니라 밴더빌트 가문, 카네기 가문, 록펠러 가문이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슘페터, 자본주의 수호의 선봉에 서겠다

그렇다고 그가 이러한 경향과 미래를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케인즈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케인즈적 경향과 마르크스적 미래에 반대하여 ‘온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反케인주의와 反마르크스주의를 위하여 떨쳐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슘페터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진정으로 의도한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역사적 자료와 경제적 수치만을 갖고 고상한 분석만을 내놓기에는, 그에게 자본주의를 수호하여야 한다는 열정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내 최종결론은 대부분의 사회주의 저술가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결론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사회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예측은 예측되는 사건의 진로가 소망스러운지에 관해서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자신의 환자가 곧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할 경우에도 이는 그 의사가 그의 환자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 주장이 ‘패배주의’라는 비난을 유발했다. 그러나 나는 패배주의라는 용어가 내 분석의 한 단편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한다.……패배주의란 행동과 관련해서만 오직 의미를 갖는 어떤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사실 자체와 사실로부터의 결론은 이 상태가 무엇이 될 수 있든지 패배주의적이거나 그와 반대되는 것이 결코 될 수 없다.……사실들과 결론들은 분명히 유쾌하지도 기분 좋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패배주의적이지 않다. 기독교 사상과 우리 문명의 다른 모든 가치에 대해서 입에 발린 칭찬만 하고 이것을 옹호하기 위해서 아직도 떨쳐 일어서지 않는 자가 패배주의자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경제학은 그의 생존기간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로 오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치였고, 1932년 미국으로 이주해서는 케인즈주의자들에게 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1983년을 전후하여 그의 정치경제학은 화려하게 부활하였습니다. 특히 그 해에 있었던 수많은 마르크스 사망 100주년이나 케인즈와 슘페터 출생 100주년 등을 기념한 수많은 학술회의에서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일탈적이고 이단적인 슘페터를 최종 승리자로 선언하였습니다. 지난 세기말에 이르러 그는 케인즈와 마르크스와 동등한 아니 그들을 넘어서는 최고의 정치경제학자로 우뚝 선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 슘페터가 이토록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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