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의 미래하천 프로젝트 '미호천 탐사'

미호천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역시 오폐수 방류, 생활 쓰레기 투기, 낚시꾼의 몰지각성, 재해방지를 위한 직선화 및 바닥 평탄화 작업 등이다. 행정과 주민의 무관심은 더욱 큰 문제 이다. 얼마 전 음성 금왕의 하수종말처리장 폐수유출사건은 하나의 일탈 행위라기보다는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는 하천을 쓰레기 및 폐수 배출구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위법이 드러나도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발뺌하기 바쁘다. 한국농어촌공사 진천지사에서 운영하는 자래보 또한 마찬가지이다. 똥물이 본류로 유입되고 있다. 나란히 있는 축산농가의 오폐수도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삶의 젓줄인 미호천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다.

자래보와 주위의 축산 단지.

오폐수만 문제가 아니다. 둑에 자나라는 나무들은 마구잡이로 베어진다. 굵은 나무들은 밑 둥이 잘리고 필요치 않은 중간기둥과 가지들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다. 나무를 자르는 행위는 둑을 견고하게 잡고 있는 뿌리를 썩게 만들어 유실을 가속화 시키며 조류의 삶을 터전을 없애 생태계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일이다. 미호천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없애는 것이다. 잡목의 방치는 수해 시 온갖 잡쓰레기와 함께 유실돼 오염 및 피해를 가중 시킨다. 이런 단속은 외면한 채 하상에 잘 자라는 갯버들 등을 수해예방이라는 이름으로 잘라낸다. 얼마 전 미호천의 최대 지류하천인 무심천에서 팔뚝보다 굵은 버드나무를 베어내려는 행정과 환경단체간의 마찰이 있었다. 하천방재과 관계자는 "장마가 질 경우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하기 위한 조치"라 설명했으나 또 다른 관계자는 "나무가 우거지면 수초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명확하지 않다. 그저 관례에 따라 베어낸 것이라 설 명 할 수 밖에 없다. 국제적 하천 방재의 권위자인 교토대 야스히로 다케몬 교수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인 오경섭(지리학과)교수도 “수변의 버드나무류는 재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모래톱을 잡아주어 하중도의 유실을 막고 플랑크톤을 생성하는 등 순기능적 요소가 더 많다”고 한다. 국내 최고의 모래하천인 미호천의 모래톱을 유지시키는 것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갈수기 모래 사이에 저장된 물을 흘러내려 댐의 역 할을 하고 있다. 70년대 만들어진 하천 방재에 대한 법규를 적용해 하천의 나무를 마구 베에 내는 것은 현재 진행되는 경관 및 생태 환경에 역행하는 처세이다.

하천둑에 마구 잘라 버려진 아카시 나무.

국립산림과학원은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산림의 가치를 126조원으로 평가했다. 이는 국내 총생산(GDP)의 8.5%에 해당하며 국민 1인당 249만원의 혜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능별로는 토사유출방지기능이 18.1조원으로 총 평가액의 14%를 차지했으며 산림휴양기능 17.7조(14%), 수원함양기능 16.6조(13%), 산림경관 16.3(13%), 산소생산 13.6조(11%), 생물다양성 11.1조(9%), 토사붕괴 방지 7.9조(6%), 온실가스 흡수 4.9조(4%) 등으로 조사됐다. 이는 산림이 차지하는 공익적 가치 및 공공재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공공재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자원으로 사적이익에 우선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재로서의 산림과 하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공재로 산림과 하천이 부각되는 이유 살펴보면 환경기능에서는 맑은 공기의 생산, 수자원의 확보 및 농업용수의 확보, 토사유출 및 붕괴방지, 온실가스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휴양, 경관 등이다. 문화기능에서는 토속신앙 및 민속, 문학, 역사, 예술, 생활영역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중요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잊고 산다. 주인이 없는 것이라고 관심과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빨리 미호천이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고 중요성을 홍보하고 계도하여야 한다.

모래와 수변의 나무가 어우러진 미호천.

중산리 드넓은 백사장에 중대백로와 왜가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평화롭게 봄기운을 즐기고 있다. 중산리에는 1930년부터 60년까지 황새가 서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산리 벌판 중복(中湺)마을 이창순(李昌淳 72세)씨 댁 뒤뜰의 미류나무에 정월 대보름 날 그림처럼 황새 한 쌍이 날아와 둥지를 트고 살았다. 황새가 오고 나서 마을엔 풍년이 들었다. 알을 품지 않는 해는 흉년의 징조였다. 마을 사람들은 길조로 여겨 황새를 기히 여겼다. 초가 50여 채가 있는 황새마을 입구에는 ‘진천황새번식지’란 나무표지석이 있었다.(1964.7.27. 경향신문)

중산리 미호천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탐사대원.

지금은 표지석도 미루나무도 사라졌지만 이곳 미호천에 먹잇감이 있었기에 황새의 서식이 가능했다. 1920~1940년대에는 중복개를 중심으로 한 들판 가운데 시베리아 방면에서 재두루미가 수천마리씩이나 날아와 장관을 이룬 일이 있다. 천연기념물 13호로 지정되었으나 지금은 해제됐다. 예전의 모습은 따라 갈 수 없지만 지금도 새 발자국이 모래사장을 모자이크 할 정도로 복원은 가능성은 남아있다. 미호천은 스스로 소와 사행천을 만들어 정화를 한다. 이제 모래와 수초 그리고 숲이 어우러지는 미호천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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