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민심을 무서워하라

 

-제왕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의 이익이 중요하다.
그것이 왕도정치요,
민본주의의 기본이고
오늘의 민주주의다-

 

2300여년 전 중국 전국시대. 맹자(孟子)가 자신을 써줄 군주를 찾아 여러 나라를 헤매다가 위(魏)나라에서 혜왕(惠王)을 만났습니다.

이미 맹자의 명성을 알고 있던 혜왕은 반갑게 맞이해 말을 건넵니다. “먼 길 오셨소이다. 그러면 선생은 이 사람을 이롭게 할 무슨 계책이라도 갖고 오셨는가요?” 혜왕의 성급한 질문에 맹자가 정색을 하며 대답을 합니다. “왕께서는 어찌 군주의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제왕이 백성의 이익을 먼저 묻지 않고 어찌 자신의 이익을 말씀하신단 말입니까.”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던 전국시대 중국에서는 식견이 높은 천하의 재사(才士)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순회하면서 군주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치세(治世)의 요체(要諦)를 설파하여 발탁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맹자가 위나라를 찾은 것도, 공자가 13년 동안 제자들을 이끌고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한 것도 자신을 써줄 군주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맹자의 정치 이념은 ‘왕도정치’(王道政治)입니다. 왕도정치는 힘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패도정치(覇道政治)와 달리 인(仁)과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맹자의 치세관(治世觀)은 다스리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백성의 입장이 우선되어야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왕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의 이익이 선행되는 게 바로 인의(仁義)의 정치, 왕도정치라는 것입니다.

까마득한 그 옛날 절대군주시대에도 맹자는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임을 강조하며 제왕은 백성이 편안하고 잘사는 나라를 위해 힘써야한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오늘 날 양(洋)의 동서(東西)를 불문하고 선진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뿌리는 그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민본주의(民本主義)입니다.

새 봄을 뜨겁게 달군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숱한 해프닝을 연출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과거 1950~70년대 ‘고무신선거’, ‘3인조 5인조선거’에 ‘사전투표’, ‘개표부정’, ‘투표함 바꿔치기’, ‘돈 선거’, ‘공무원선거’ 등 추악한 선거역사를 갖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우리의 선거문화도 이제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의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훗날 역사는 이번 총선을 어떻게 기록할까. / NEWSIS

선거철만 되면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식당들은 온통 왁자지껄 먹자판이 되고 여기 저기 술 취한 사람들이 갈지(之)자 걸음을 걷는 것이 흔히 보는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밥 한 끼 얻어먹기 어려운 선거판이 되었으니 미상불(未嘗不) 선거문화가 바뀌긴 바뀐 듯 싶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여야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단속을 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진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과거 같으면 여당 후보자는 그냥 눈감아주고 야당만을 단속하곤 하던 게 관행이나 다름없었기에 말입니다. 선진국이란 경제만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국민이 그것을 신뢰할 때 비로소 들을 수 있는 호칭입니다.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1973년 봄 9대 국회의원 선거가 막 끝난 뒤였는데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압승으로 기분이 좋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여사와 국회의원 몇 사람, 지역 유지들과 옥천의 처갓집을 방문했습니다.

따뜻한 햇살아래 동동주가 나오고 분위기가 좋아 질 즈음, 한 의원이 옆에 앉은 군수에게 불쑥 한마디를 던집니다. “여보, 군수. 수고했소. 선거는 공무원이 다 해주는 거지 우리가 하긴 뭘 해. 안 그렇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여사가 나섰습니다. “의원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공무원들이 당선을 시켜주다니요. 그런 말씀 함부로 하지마세요.”

순간 좌석이 싸늘해졌습니다. 그 의원은 박대통령과 오랜 인연으로 남다른 사이라서 동석을 했고 평소에도 불쑥, 불쑥 안해야 할 말을 내뱉는 습성이 있어 ‘분수’라는 소리를 듣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당선을 시켜 줬다니, 마치 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을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이 되었던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꼴이 되자 육여사가 얼른 나서 선수를 쳤고 해프닝은 동동주 덕에 그런대로 잘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70년대 까지만 해도 공무원들이 선거에 동원되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습니다. 1960년 3·15부정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난 뒤 선거를 총지휘했던 최인규내무장관을 사형에 처했던 것도 과거의 선거가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던가를 잘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부터 이번 20대 국회까지 모든 선거를 직접 눈으로 봐 온 필자로서는 이번 선거 정도라면 선진국 문턱에는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입후보자들의 민망한  해프닝입니다. 도대체 바닥에 엎드려 “잘못 했으니 살려주세요”라는 읍소(泣訴)는 신성한 선거를 희화화(戱畵化)시킨 삼류 쇼에 다름 아닙니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좋다한들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지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다급했으면 평소에 잘 좀 할 일이지 온갖 분란으로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서는 ‘살려 달라’니 참으로 낯 뜨겁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축제는 끝이 났습니다. 온 나라가 왁자지껄 했지만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니까 이제 잔치는 끝이 난 것입니다. 당선자는 기쁨으로 환호하겠지만 낙선자는 분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룰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든 이제 후보자도, 유권자도 열을 식히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상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맹자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민심은 천심’입니다. 그런데 그 민심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릅니다. 그러기에 지난 날 명석한 통치자들은 ‘민심조석변’(民心朝夕變)의 이치를 알고 그것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명심보감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습니다. 꽃이 열흘을 붉게 피지 못하고 권세가 십년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모두들 겸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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