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읽기 (1)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와 함께 쓴 겨우 50쪽 정도의 팜플렛에 불과한 ≪공산당 선언≫은 물론 그들의 수많은 저작들 중 단 1편도 읽지 않았어도, 심지어 그들의 사상에 대한 아주 작고 조잡한 해설서조차 읽지 않았어도, 우리들은 이미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비판자들입니다.

음담패설과 구타 등 反윤리적 행동을 일삼던 중고교 윤리선생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마뜩치 않게 바라보며 ‘데모하는 놈들은 모두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대학교수로부터, 위에서 주어진 교재만을 달달 외워 녹음기처럼 풀어놓던 정훈장교로부터, 우리는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능숙한 비판자로 양육되어 왔습니다.

과거에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주체사상만 공부하였음에도 지금은 종편에 수시로 출연하여 마치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의 전문가인양 행세하는 회개한 종북주의자로부터, ‘국가보안법과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종북과 테러를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는 지금도 매일 매일 그런 능숙한 비판자로 양육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좌)와 엥겔스.

우리는 이미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능숙한 비판자

국가기구․법제도․종교․윤리․예술과 같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단지 경제․기술․계급과 같은 토대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위가 계급적․계급투쟁적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의 가족에 대한 사랑,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아름다운 시, 모든 인간의 평등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가르침, 가난한 이웃에 대한 봉사와 기부, 국가의 경찰이나 소방 활동 등 경제적․계급적 토대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소유욕과 이기심은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심성인데, 이를 부정하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기획이란 몽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몽상이 아니더라도, 내가 10여년을 열심히 일하여 마련한 집도, 내가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자동차와 가재도구도 내 것이 아니고, 심지어 나와 사랑으로 맺어진 배우자도 나만의 배우자가 아니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나의 소유물과 배우자는 나의 정당한 노동과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인데, 이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고 하면, 이것은 강도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소멸과 공산주의의 도래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하였는데, 결국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이라는 것은 세속화된 섭리론이나 맹목적 숙명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는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와 실천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공산주의가 역사적 필연이라면 왜 공산주의자들은 그 실현을 위하여 폭력혁명 선동하고 피를 흘리며 무장투쟁을 하는가?

모두가 평등하고 함께 소유하는 공산주의는 말은 좋은데, 그것이 현실화될 때는 구소련과 북한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는 말살되고 남는 것은 독재와 학살뿐이지 않은가? 1989년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기획이 터무니없는 사기였음을 입증하지 않았는가? 공장매연과 블루칼라 노동자로 상징되는 19세기의 암울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마르크스의 비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탈산업화․정보화 시대인 현대에도 그의 이론이 유효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처럼 우리의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목록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능숙한 이러한 비판의 대상이 ‘실제’ 마르크스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때론 폄하․과장된 때론 왜곡․조작된 마르크스나 공산주의의 ‘유령’에 불과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이 모든 것이 ‘유령’일 뿐이라면?

마르크스가 속물적인 토대결정론자․계급환원론자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와 실천․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자율성․도덕적 가치와 문화예술적 감성 등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이를 중시하고 누구보다도 그 의미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정치사상가였다면 어떨까요?

공산주의가 실제는 당신의 집․자동차․가족을 빼앗기는커녕 당신의 그러한 소유와 선택을 열렬히 옹호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공산주의가 독재와 폭력을 찬양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라면 어떨까요? 오히려 당신의 소유물을 빼앗고 가족을 해체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실제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면 어떨까요? 칙칙한 19세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종국적 승리를 선언하고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바로 지금이, 오히려 마르크스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공산주의의 실현을 다시 숙고할 때라면 어떨까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들이. 정권을 잡은 자들로부터 공산주의적이라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 또한 좀 더 진보적인 당이나 반동적인 적들에게 공산주의라는 비난의 낙인을 되돌려주지 않는 야당이 어디 있겠는가?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출간하면서, 당시의 공산주의를 ‘유령’에 비유하였습니다. 누구도 공산주의의 정확한 의미와 실제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또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비난하고 적대하기 위하여 좌우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공산주의자로 호명하는 현실을 빗대어 공산주의 유령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공산주의 유령에 맞서 실제 공산주의를 보여주고자, ≪공산당 선언≫을 말 그대로 전 세계에 공공연하게 ‘선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앞서의 상식도 이처럼 실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수십년간 권력자들이 만든 과장되고 조작된 유령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닐까요? 마르크스가 실제 공산주의를 보여주겠다는 ≪공산당 선언≫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와 공산주의가 실제인지 유령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은 저 유명한 “이제까지의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생산과정에서 맺는 사회경제적 관계(그는 이를 생산관계라고 표현)와 그것의 법적 표현인 소유관계를 둘러싸고, 인류는 노예주와 노예․영주과 농노․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나뉘어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끈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계급’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었거나, 인간 사회와 역사의 본류를 ‘계급투쟁(또는 소유를 둘러싼 분쟁)’으로 인식한 최초의 정치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밀의 ≪대의정부론≫에게 이르기까지 지금껏 읽은 모든 정치고전은, 인간 사회의 모든 분쟁의 근원에서는 소유의 불평등과 그것을 둘러싼 계급이나 정치세력 간의 갈등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자는 정치사상가로서의 자격조차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기존의 정치사상가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기존의 정치사상가들은 소유를 포함한 생산관계와 이것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인간 사회 모든 분쟁의 근간임을 인정하였지만, 그러한 대립과 갈등이 자연히 소멸되거나 인위적으로 폐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그러한 대립과 갈등의 적절한 조화 내지 타협을 도모합니다. 정신적 탁월성의 정도에 따른 정치권력의 배분이나, 소유와 계급적 차등에 따른 정치권력의 배분 체제가 그들이 제시한 이상적 해결책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기존의 정치사상가들과 달리, 인간 사회 모든 분쟁의 근원인 소유, 생산관계와 계급투쟁의 문제를 날 것 그대로 대면하고, 그 자체의 종식을 대안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소유와 계급이 종식된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를 최초로 생각한 정치사상가는 아닙니다. 비록 통치자 신분에 한정된 것이지만 플라톤은 사적소유가 폐지된 정치계급을 상상하였고, 모어도 사적소유와 계급이 폐지된 유토피아 세계를 상상하였고, 마르크스가 태어날 무렵인 19세기 초반에 많은 공상가들이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설계하고 자신의 공장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를 직접 실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특유성은?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이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마르크스는 이들과 달리, 소유와 계급의 종식을 이상적 설계도나 도덕적 호소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는 소유와 계급 분쟁, 그리고 그것의 종국적 소멸을 역사의 전과정을 지배하는 필연이자 현실적․실천적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 정치사상의 핵심인 ‘역사 유물론’입니다. 그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이러한 사적 유물론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데 필연적이면서도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일정한 관계들을 맺게 된다. 즉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맺게 된다. 이들 생산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로서 사회의 현실적 토대를 형성하며, 이 위에 하나의 법적 또는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 이 토대에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가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일정한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면 그때까지 그 내부에서 운동해 온 기존의 생산관계, 또는 그것의 법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소유관계와 모순을 일으키게 된다. 이들 관계는 생산력 발전의 형태로부터 그 질곡으로 전화하게 된다. 그때부터 사회혁명의 시기가 시작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천천히 또는 급격히 변혁된다.

다분히 추상적으로 설명되어 있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가요?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러한 역사 유물론에 입각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중세 봉건제의 소멸과 근대 자본주의 등장과정을 설명하고, 이후 그 상부구조로서의 정치적 변화 과정과 사회문화․의식 등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래 문장들을 읽고 위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역사 유물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산력 → 생산관계 → 정치적 상부구조 →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중세의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자유민이 생겨났고, 이 시민층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초기 요소들이 발전하였다. 아메리카의 발견과 아프리카 회항로의 발견은 대두하는 부르주아지에게 신천지를 열어주었다. 동인도와 중국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들과의 교역, 교환수단 및 상품 일반의 증가는 상업․해운․공업에 전례없는 활력을 안겨주었으며, 그럼으로써 붕괴되어가던 봉건 사회 내부의 혁명적 요소를 급격히 발전시켰다. 지금까지의 봉건적․길드적 공업 경영 방식은 새로운 시장과 함께 증대된 수요를 더는 충족시킬 수 없었다.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가 그것을 대신하였다. 길드의 장인들은 매뉴팩처 공업에 종사하는 중간계급에 의해 밀려났으며, 서로 다른 길드 사이의 분업은 개별 작업장 자체 내의 분업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시장은 계속 성장했고,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제 매뉴팩처로도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증기와 기계가 공업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매뉴팩처의 자리를 현대적 대공업이 차지하고, 공업에 종사하는 중간계급의 자리를 공업 백만장자들, 대공업 군대의 우두머리들, 현대적 부르주아들이 차지했다.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발전 단계들에 발맞추어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진전이 수반되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영주의 지배 하에서는 피억압자의 신분이었고, 중세의 도시에서는 무장을 갖춘 자치단체였다.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인 도시공화국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군주국가에서 납세의무를 진 제3신분이었다. 그러다가 매뉴팩처의 시기가 오면 부르주아지는 귀족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 신분제 군주국가나 절대 군주국가에 봉사하면서 사실상 군주의 초석 역할을 하였다. 대공업과 세계시장이 형성된 이후 부르주아지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마침내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가부장적․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사람들을 타고난 상하관계에 묶어놓았던 온갖 봉건적 속박들을 가차 없이 토막내버렸으며,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계산 이외에는 어떠한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가치로 해체시켰으며, 특허장에 의해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정치적 환상에 의하여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자본주의도 중세 봉건제처럼

마르크스가 중세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현재의 자본주의도 중세 봉건체제처럼 하나의 역사적 생산양식에 불과하고, 그것은 또 다른 제3의 체제로 필연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을 은유하고자 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한다. 부르주아지를 형성시킨 토대인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은 봉건사회 안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이 특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에서 이루어지던 생산과 교환관계,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봉건적 소유관계는 이미 발전한 생산력과 더는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봉건적 소유관계는 생산을 촉진시키기는커녕 생산을 저해했으며, 그만큼 생산의 질곡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분쇄되어야 했으며, 분쇄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자유경쟁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제도와 정치제도, 즉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정치적 지배였다.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교환관계, 부르주아적 소유관계,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이 그토록 엄청난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만들어 냈지만,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사자의 힘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마법사와 같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공업과 상업의 역사는 현대적 생산력이 현대적 생산관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존립과 지배의 조건인 현대적 소유관계에 대한 저항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는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며 전체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더욱 더 위협하고 있는 상업공황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공황시에는 제조된 생산물뿐만 아니라 이미 이룩된 생산력의 상당 부분도 주기적으로 파괴된다. 공황시에는 이전의 모든 시대에는 터무니없어 보였던 과잉생산이라는 전염병이 만연하게 된다……그것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너무 많은 생활수단, 너무 큰 공업과 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생산력은 부르주아적 소유관계의 발전에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력은 소유관계에 비하여 너무 방대해져서 부르주아적 소유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제하게 된다. 그리고 생산력이 이 질곡을 극복하기 시작하면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혼란상태에 빠뜨려버리며, 부르주아적 소유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부르주아적 관계는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를 포용하기에는 너무도 협소해진 것이다……부르주아지가 봉건제도를 무너뜨릴 때 사용했던 무기는 이제 부르주아지 자신에게로 겨누어진다.

매연을 내뿜는 19세기의 공장지대.

너무나 발전해서 망한다?

기존의 생산양식은 오히려 기존 체제하에서의 생산력이 (기존의 소유와 생산관계를 질곡처럼 만들 정도로) 너무 발전해서 붕괴된다? 일견 우리의 역사상식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뭄이나 흉작에 따른 극도의 궁핍, 전쟁과 같은 사회적 위기 상황, 권력집단의 무능과 부정부패의 속출, 최고권력자의 터무니없는 대응 등에서 정치적․사회적 혁명이 발생한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상식과는 정반대로 보이지요?

그러나 실제 이러한 위기적 상황이나 우연적 사건의 병발은 근본적인 격변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입니다. 모든 것을 뒤집어엎을 화력의 근본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쌓여진 장작더미에 있는 것입니다. 중세 봉건제의 붕괴와 근대 자본주의로의 전환과정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은 사실 현대의 주류적 역사사회학자들도 모두 공유하는 것입니다. 근대 시민혁명의 근간에는 16세기부터 지속되어 왔던 상업․무역업의 활황, 분업과 기술의 발전, 시민사회의 성장 등이 있고, 이러한 경제적 실력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근대 시민혁명을 통하여 귀족 계급과 절대 군주를 몰아내고 최종적인 정치적 승리를 쟁취하였다는 것은 이제 보편적 상식입니다.

중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붕괴를 은유하는, 자본주의도 중세 봉건제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한 생산양식에 불과하고 그것도 중세 봉건제와 마찬가지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와의 모순에 의하여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설명은, 형식 논리적으로 본다면 상당히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그의 지금까지의 설명은 자본주의의 붕괴이후가 공산주의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형식 논리적으로 본다면, 봉건적 소유와 계급 사회인 중세가 붕괴되고 새로운 부르주아적 소유와 계급 사회인 자본주의로 진화된 것처럼, 자본주의가 붕괴된 후 소유와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제3의 소유와 계급이 ‘있는’ 사회로 진화된다고 하는 것이 보다 그럴듯해 보입니다.

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는 중세 이후와 다른 경로를 밟을 것이라고 보았을까요? 그는 도대체 어떠한 근거로, 자본주의 이후는 소유와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였을까요? 자신 이후가 공산주의를 가져올 정도로, 자본주의에는 기존의 노예제나 봉건제 생산양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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