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읽기 (4)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자유’와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라고 합니다. 토크빌은 1) 개인의 자유에 최우선적 가치를 부여하였고, 2) 그러한 자유는 평등과 대립관계에 있음을 누구보다도 명확히 인식하였고, 3)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평등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도록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로 제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 그가 말하는 자유란 어떠한 의미일까요? 그가 말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였을까요? 그의 자유는 인류의 보편타당한 도덕률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계급적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그의 말대로 자유는 평등과 기본적으로 대립․갈등관계에 있을까요? 아니면 평등한 자유, 자유의 평등처럼 자유와 평등은 기본적으로 보완․상승관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3) 그의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처방은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한 고언(苦言)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의 처방은 反민주적 함의를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그의 자유와 자유주의에 숨겨져 있는 계급적․反민주적 본성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토크빌.

귀족주의자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란?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스스로 자유가 무엇인지 정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추상적․비유적으로만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의 자유 관념은 ‘귀족계급’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귀족주의 시대가 이미 지나 갔고 그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귀족계급의 존재 가치와 그들의 지적․윤리적․실천적 탁월함을 무수히 예찬하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인에서 영국인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겨서 세계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거의 모든 국민들은 귀족제도의 다스림을 받았다”, “귀족들은 결코 사라져버릴 수 없는 확고하고 지혜가 쌓인 집단이다”, “귀족정은 민주정치와는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입법에 관한 한 능란하고, 일시적인 흥분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주는 자제심을 갖추고 있고, 장기적인 계획을 만들어서 유리한 기회가 올 때까지 결실을 맺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심지어 “귀족정체에서 귀족의 타락에는 (민주정체에서의 권력자의 타락과 달리) 일종의 귀족적 세련미와 장대한 풍모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귀족계급에 대하여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공적 결정에서의 사려 깊음, 업무수행에서의  능숙함, 부패의 세련됨과 장대함(?)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귀족계급에 대하여 제일 찬양하고 있는 것은 “자유의 옹호자”로써의 그들의 가치와 역할입니다.

귀족주의 시대에 개인의 독립을 보장하는데 가장 공헌한 것은 바로 최고의 통치권자가 그 사회의 정치와 행정을 독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기능을 귀족계급이 담당하였다. 그래서 통치권은 항상 분산되었고 억압적이지 않았고, 개인에게도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오늘날에는 이러한 방법에 의지할 수 없지만, 이것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어떤 민주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귀족사회를 다시 건설할 수 있느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신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이 민주적인 사회상태에서 자유가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데 있다.

귀족계급이 자유의 수호자였다? 귀족계급의 존재로 인하여 통치권은 억압적이지 않았고 개인들은 자유를 누리고 크게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다?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요?

근대의 대표적인 구호와 이념은 자유와 자유주의입니다. 그 자유와 자유주의는 중세 귀족 질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한 자유의 저항에 맞서 귀족계급이 수호하고자 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反자유적인 ‘특권’이었습니다. 토크빌은 중세 귀족의 특권과 그에 대한 집착, 예컨대 귀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특권과 사회경제적 지배권으로 군주와 권력을 분점(分店)하여 대다수 인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한 것을, 오히려 자유의 시원(始原)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인식의 궤변이며 역사의 날조입니다.

자유주의자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란?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귀족적 취향으로 인한 오염과 귀족의 역사에 대한 왜곡을 제거한 후 얻을 수 있는, 근대적 자유주의자로서의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란 어떠한 것일까요?

근대적 자유주의자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는 너무나 난해하고 고상한 개념이라고들 합니다. 우선 그에게 자유는 도덕적인 자율(自律), 즉 개인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그러나 고상하고 경건한 이성에 근거한 결정과 그에 따른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자유가 이런 윤리적 맥락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자유는 사유재산과 그에 근거한 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가 “다수의 권력 자체는 무제한한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있는 윤리계에는 인간성, 정의 및 이성이 있고, 정치계에는 기득권이 있다”라고 말했을 때, 인간성(또는 정의, 이성)은 전자의 자유를, 기득권은 후자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너무나 추상적이라, 그의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이해하기 어렵죠?

그의 추상적․현학적 자유에 구체적․현실적 옷을 입혀봅시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더욱이 고상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자유는 누가 가질 수 있을까요? 자유재산과 그에 근거한 권리로서의 자유는 누가 갖고 있을까요? 이러한 자유와 대립하며 현실에서 이를 억압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이러한 자유는 어떠한 체제․이념․가치․경향에 의하여 침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미국의 민주주의≫ 이후의 정치인 토크빌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신생 미국 정치엘리트들이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수용하되, 실질적으로는 反민주적으로 운용되는 효과적인 정치체제를 수립하였고,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우려와 두려움을 하찮은 기우에 불과하게 만들 정도로 탁월한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파도는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이 구축한 反민주적 방파제를 언젠가는 넘어설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양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 제도상에 존재하는 反민주적 요소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들의 정치적 투쟁이고, 또 하나는 민중들 사이에서 민주화와 평등화가 사회적․경제적․문화적․심리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가 그렇습니다.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민중들은 보통선거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게 되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익 요구와 하층민들의 사회경제적 형평 요구가 점점 높아져 갔고, 그러한 민중들의 정치적․사회경제적 불만은 1848년 혁명을 통하여 극적으로 분출되었습니다.

토크빌은 1835년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의 명성에 힘입어 1839년 하원의원으로 정치계에 진출하여 자유와 자유주의의 열렬한 포교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정치인으로서 토크빌은 민중들의 보통선거권과 사회경제적 권리 요구에 대하여, 자유의 정신을 터득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 민중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면 다수의 전제나 독재를 낳을 뿐이라며 적극 반대하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요구는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물질적 탐욕에 기댄 광기라고 보고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정치인 토크빌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그의 자유란 결국 이런 것입니다.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더욱이 고상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토크빌의 자유는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가질 수 있는 사회경제적 지배계급과 그들과 물리적․지적 친화성이 있는 엘리트들만이 취득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지하고 속물적인 대중은 이러한 자유를 취득하거나 향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자유는 사유재산을 보유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유재산을 갖지 못한 자 또는 자유의 정신을 취득할 수 있을 정도의 사유재산을 충분히 갖지 못한 자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무지하고 가난한 민중은 자유의 소유자나 옹호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위협하고 침해할 수 있는 혐의를 가진 자들일 뿐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1, 2>>.

토크빌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인가?

토크빌이 말하는 이러한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일까요? 근대적 의미의 자유 즉 하나의 정치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는 ‘보편성’ 내지 ‘평등성’을 갖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모든 시민의 평등하게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이 아니라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만이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특권’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는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이 귀족이건, 부르주아건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근대의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였습니다. 토크빌보다 1세대 전에 프랑스 대혁명을 선동한 시에예스(Emmanuel-Joseph Sieyès, 1748∼1836)는 이러한 자유 관념에 기초하여,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공통의 법률의 지배를 받으며 공통의 지위와 권리를 갖는 자만이 온전한 프랑스 국민이며, 공통의 법률에서 벗어나고 불평등한 특권을 가진 귀족계급은  프랑스 국민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시에예스와 토크빌도 독립적이고 고상한 사유와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적․물질적 재산을 가진 자만이 자유를 취득하고 향유하고 행사할 수 있고, 무지하고 속물적인 시민이나 사유재산을 갖지 못한 하층민들은 자유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실질적으로 보편적 의미를 갖는 자유가 아니라,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만이 갖는 특권에 불과합니다. 토크빌의 자유 관념의 문제점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보이는 토크빌의 수많은 귀족적․퇴영적 은유와 왜곡의 불쾌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의 진정한 문제점은 이처럼 고상하고 도덕적인 외향을 쓰고 있지만, 그 내면은 지독한 계급적․反민주적인 실질을 갖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유주의자 토크빌의 이후 행보는 어떠할까요? 그 이후의 토크빌의 행보는 공교롭게도 시에예스를 닮았습니다. 혁명을 선동하였다가 스스로 혁명을 배반하고 독재자 나폴레옹의 등장을 도모한 대혁명 당시의 시에예스 말입니다. 토크빌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요구하던 1848년 6월의 노동자와 민중들의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데 찬성하였고, 자유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삼촌인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독재자적 성향이 풍부하였던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eon, 1808~1873)에게 귀의하여, 비록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그의 독재정권 수립에 기여하게 됩니다. 토크빌은 자신의 계급적 지위와 이해관계가 위협을 받자, 자신의 신념이었던 자유주의마저 포기하고 독재자를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노예가 되어 전제정치를 선택한 것은 그가 비난하던 민주주의와 평등이 아니라, 그 자신과 그의 자유주의였습니다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3세), 그는 1848년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었지만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었다. 토크빌은 그가 대통령시절 외무장관을 역임하였으나 그의 쿠데타에는 반대하였다. 토크빌은 그로 인하여 구금되었지만, 단 하룻밤 구금된 후 바로 풀려났고 이후 정계를 은퇴하였다.

자유를 위협하는 게 평등과 민주주의?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를 신분적․계급적 특권이 아닌 보편적․평등적인 것(진정한 자유)으로 최대한 선해(善解)해 봅시다. 그러한 자유, 자유주의와 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토크빌식의 관계 설정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토크빌의 말처럼, 그러한 자유는 평등보다(혹은 평등과 동등하게) 우선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진리이지 않은가? 그러한 자유는 평등과 민주주의에 의하여 언제라도 위협받고 침해받을 수 있지 않은가? 자유가 평등과 민주주의의 과도한 침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어떠한 제한적 조치를 필요로 하지 않은가? 그러하기에 현대의 성숙한 민주국가들은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잘못된 경향에 대한 자유주의적 처방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언론과 결사의 자유 확보, 자치영역의 확대, 권력의 분산, 사법부의 권한 강화, 법치주의의 강화 등)들을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민주주의는 직접적으로든 선출된 대표를 통해서든,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고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갖고 공동체의 정책과 법률의 결정에 참여하는 체제를 의미합니다. 시민 모두가 자유로이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갖지 않고 자유로이 투표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면(자유주의적 기초를 구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동등한 자유와 권리가 없다면 우리는 그 국가를 더 이상 민주국가라고 부르지 않고, 그러한 자유가 더욱 잘 보장되는 국가를 우리는 성숙한 민주국가라고 부르고, 그리고 실제 어떠한 국가가 민주국가이기를 그만둘 때 가장 먼저 그러한 자유와 권리가 사라집니다.

토크빌은 자유와 평등이 대립․갈등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지만, 자유․자유주의와 평등․민주주의는 이처럼 기본적으로 서로 보완․상승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토크빌의 경우처럼 자유와 자유주의가 실질적으로는 특권적․계급적 본성을 가질 때, 그것은 평등․민주주의와 대립․갈등관계 이상의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토크빌이 자유주의적 처방으로 제시하였던 것들은 현대 민주주의에 필수적일뿐더러,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은 여러 의미로 설명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노동자와 서민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의사와 이익이 보다 많이 보다 적절히 정치적으로 대변될 때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약자를 위한 언론과 결사가 활발해지고, 그들이 정치․경제권력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억압되거나 지배되지 않고, 그들을 위한 정치적․사법적 구제수단이 보다 확대되고 효과적으로 정비될 때 우리는 그러한 국가를 성숙한 민주국가라고 부릅니다.

토크빌의 자유주의적 처방으로 도모하고자 한 것이 절대 이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이러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요구에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자유주의적 처방으로 궁극적으로 도모하고자 한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억압과 계급적 지배질서의 유지였습니다. 그가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기초를 놓아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에 기여하였다는 것은, 후학들의 각색에 불과한 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자유를 말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은?

그럼에도 누군가는 또 다시 반문할 수 있습니다. 토크빌의 인식처럼,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최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현실적으로 평등과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협하고 침해할 수 있지 않냐? 물론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누군가가 자유를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은 ‘누구’의 ‘어떠한’ 자유를 말하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막연히 자유를 말하고 평등이 자유를 위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무의미하고, 가끔은 진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자유’를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단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입니다. 정부가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소상공업 분야 진출 등을 제한하려는 입법을 시도할 때마다, 재벌들의 대변기관인 전경련은 항상 이러한 조치는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는 말 그대로 경제적 자유이고, 정부의 그러한 조치는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요? 

경제적 자유는 그 한 내용으로, 모든 경제 활동자들이 자유롭고 동등하고 공정한 입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 재벌 체제와 그들의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소상공업 분야 진출 등은 바로 이러한 경쟁을 억압하고 회피하는 것이고, 그러한 재벌을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경쟁과 경제적 자유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전경련이 말하였던 경제적 자유는 사실은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파괴자인 재벌의 특권일 뿐이고, 그들의 주장은 그러한 특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일 뿐입니다.

토크빌이 자유주의적 기초로 강조한 법치주의, 권력의 제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들의 시위와 분규 때마다 해당 부서 장관이나 사법기관의 수장이 등장하여 법의 준수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가 말하는 법은 누구를 위한 어떠한 법인가 물어보아야 합니다. 조중동 보수언론이 개혁적 민주정부를 제왕적 권력자로 왜곡하고 비난하며 그 권력의 제한을 주장할 때, 그 제한의 궁극적 목적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법은 때론 우리 사회의 특권과 불법적 축재만을 옹호하는 법일 수도 있고, 그가 말하는 제한되어야 할 권력은 그러한 부정한 특권과 축재를 개혁하려는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은 모두 고상하고 불편부당해 보이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대 정권 중 가장 反민주적이고 不정의하였던 전두환 독재정권의 국정 지표가 바로 ‘정의사회 구현’이었던 것처럼, 맥락이 없는 자유 등의 호명은 무의미하고, 그 맥락을 제대로 꿰뚫지 못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유해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토크빌과 재벌들을 말합니다. 자유를 위협하는 게 ‘평등’이라고.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토크빌과 재벌이 주장하는 불평등한 특권과 기득권입니다. 그러한 특권과 기득권에 의하여 우리의 보편적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침해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적어도 이게 보다 현실적입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