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디슨 등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읽기 (3)

전회에 이야기한대로, 신생 미국인들은 당대의 유럽이 갖지 못한 많은 행운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분쟁과 전쟁이 일상화된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그들을 위협할 만한 강력한 국가도 없었고, 풍족한 영토와 자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행운은 그런 지리적, 물리적 여건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더 큰 행운은 식민치하에서도 타운회의 등을 통하여 수년간 자치를 경험하고 상업․무역업과 개척정신으로 활기 넘치는 시민들과, 근대 유럽의 진보를 가로막는 군주와 귀족계급 대신 현명하고 절제 있고 덕망을 갖춘 근대적 정치엘리트들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을 비롯한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당대 유럽의 정치엘리트들보다 훨씬 진보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군주의 신성함․절대성과 신분에 따른 정치적 차별․특권을 부정하고, 정치적 권위는 오직 시민의 동의에 의해서만 정당화 되고, 정치 권력은 군주나 귀족계급이 아닌 시민들의 손으로 선출된 대표들에게 주어져야 하고, 그 대표들간에 권력이 분점되어 서로 견제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념을 실천에 옮겨 ‘대의제’와 ‘권력분립’에 기반을 둔 ‘공화국’을 창설하였고, 그 공화국은 당대의 어느 유럽 국가보다 민주적인 체제였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공화국을 대의제와 권력분립에 기초를 둔 것은, 위로는 근대 유럽에서와 같은 군주나 귀족들의 독재나 전횡의 부활을 막고, 아래로는 무지하고 탐욕스런 다수 민중의 전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주와 귀족계급이 없는 반면, 자치․독립전쟁․개척의 과정에서 활성화된 민중부문을 가진 신생 미국에서, 정치엘리트들의 근본적 의구심과 우려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주적인 공화국을 열망한 정도만큼, 빈민과 노동자 등 사회의 절대다수였던 무산자(無産者) 계급으로부터 자신들의 공화국을 보호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고, 그들이 구상한 대의제와 권력분립에 그러한 의도를 곳곳에 숨겨놓았습니다.  

1787년 헌법제정회의에 참석하는 대표들, 오른쪽 모자를 든 사람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고, 그 옆의 사람이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反민주적’ 정치기획으로서의 대의제

우선 그들 공화국의 2대 지주 중 하나인 ‘선거’에 기반을 둔 ‘대의제’ 정치모델 자체가 그러합니다. 물론 대의제가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근대국가라는 물리적 여건의 변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고, 군주와 귀족계급의 정치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선거와 의회제가 민주적 성격도 갖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신생 미국 정치엘리트들의 민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아테네적 민주정치를 무지한 빈민에 의한 중우(衆愚)정치로, 인간의 모든 고귀한 성취와 이상을 말살하는 혐오스럽고 두려운 정체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치는 개인들의 고귀한 사회적 성취물인 ‘신분과 재산’으로 제약되고, 고귀한 정치적 이상인 ‘탁월함’으로 지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민회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추첨에 의한 대표 선출 대신에, 선거제도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갖춘 사회경제적 지배층과 지적 엘리트들을 대표로 선출하고 이들로 하여금 정치를 전담케 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선거를 차등화하여 각 선거마다 별도의 신분과 재산 자격 요건을 부과하거나, 귀족과 부유층만으로 구성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별도의 대의체(귀족원 혹은 원로원의 설치)를 둘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불평등 요건을 부과하지 않더라도 즉 평등한 선거와 단일한 대의체를 통해서도 민주주의를 제어하는 효과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인식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선거와 이에 기반을 둔 대의제 정치모델 그 자체를 귀족주의, 엘리트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反민주적 제도로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선거와 대의제가 反민주적 정치기획? 오히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우리에게 상식화된 구호는 잘못된 편견일 뿐입니다. 초등학교의 반장선거부터 공직선거까지 모든 선거는 귀족주의적, 엘리트주의적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우리의 대표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요? 그들의 8-90%는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지적 최상층 출신들입니다. 정치적 평등은 법으로 보장되지만,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등 일반인이 생계문제를 팽개치고 막대한 선거비용을 감당하면서 대표로 나서는 것이 가능할까요? 대표들은 우리 사회의 실제 모습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모두 대규모 농장과 노예를 소유한 지주였거나, 상업과 무역업으로 막대한 부를 획득한 상인이었거나, 언론과 출판으로 사회적 명성을 얻은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신생 미국을 지배하던 ‘자연(natural, 非세습의 의미)’ 귀족계층이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민중과 민주주의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성공한 소수의 사회경제적 지배층과 엘리트들의 정치주도권을 갖는 정치체제를 열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생 미국은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당대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도 민주적 환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물리력과 경제적 특권을 가진 군주와 귀족계급이 없는 반면, 자치․독립전쟁․개척의 과정에서 활성화된 민중부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생 미국의 자연 귀족들이 이러한 민중부문을 무시하고, 이전의 선배들이 제안하였던 귀족과 부유층만이 시민 대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선거 제도를 채택하거나, 귀족과 부유층만이 세습적․종신적으로 회원이 될 수 있는 별도의 원로원을 설치하거나, 그 귀족원에 평민회의 결정을 취소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 등을 채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시민들의 평등한 선거와 신분적 특권이 배제된 의회를 가진 ‘민주적’ 대의제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선거와 대의제 자체는 귀족적․엘리트적․反민주적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대로 혼합된 혼합정체는 민주정체의 요소와 과두정체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그중 어느 쪽 요소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외형적으로는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그 실질은 귀족적 본성을 갖는, 대중들이 입헌자의 귀족적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고 이리저리 얽혀 복잡한 혼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생 미국의 민주적 대의제 정치모델은 이러한 의도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 그는 초대 워싱턴 정부에서 초대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경제질서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미화 10달러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정적인 애런 버(3대 제퍼슨 정부시절 부통령이었다. 그는 명사수로 유명했다)의 권투결투 신청에 마지못해 응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속의 귀족주의자, 해밀턴 

실제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도 선거와 대의제의 귀족적․엘리트적․反민주적 본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민주공화국을 설계하며 그러한 본성의 실현을 욕망하였습니다. 특히 공동저자 중 한명으로 귀족주의적 성향이 풍부하였던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57∼1804)은 이러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의 말입니다. 

어떤 계층의 감정과 관심사가 보다 잘 이해받고 처리되기 위해서, 대표기구에 그들 계층을 대표하는 구성원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되어 있는 체제에서 그런 일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체제에 대표기구는 예외없이 정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주, 상인, 지식인들로 구성될 것이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민계층의 이익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돌보지 못하리라는 위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시민들 돕는 지원자이며 자신의 명예를 지속시키기 위해 동료시민들의 선출에 의지해야 하는 그러한 대표들이 시민들의 성향과 경향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노력한다면, 당연히 시민들은 그의 행위에 적절한 영향력을 갖도록 허용할 의사를 갖지 않겠는가?……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이익과 의견의 ‘자연스러운 작용’(따옴표 강조는 필자)에 의해, 그 수에 관계없이 대표들은 대부분 다른 모든 사회적 이익과 의견을 진실로 대표할 수 있는 지주, 상인, 지식인층으로 구성될 것이다.

매우 중요한 위임을 받을 사람을 선택하는데 시민들의 분별력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목적은 기존의 기구가 아닌 특정한 목적과 경우를 위해 선택된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선거는 후보자의 자격을 분석할 수 있는능력을 가졌으며 신중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모든 원인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해밀턴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내버려 두어도 무지하고 가난한 민중들은 시민의 대표가 결코 되지 않고, 시민의 대표기구는 예외없이 "지주, 상인, 지식인들”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자연스러운 작용“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해밀턴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작용“은 결국 선거와 대의제에 내재되어 있는 귀족적․엘리트적․反민주적 본성을 의미합니다. 해밀턴은 지주 상인 지식인 등 사회경제적 지배층이나 엘리트들만으로 구성된 시민의 대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선거와 대의제 그 자체의 귀족적․엘리트적․反민주적 본성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본성은 경향성 혹은 친화성일 뿐, 확실성을 항상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신이 대표가 되는 민회에서건 아니면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장에서건, 그들이 두려워하는 무지하고 탐욕에 가득 찬 민중의 본래의 심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민회에서 부자의 재산을 몰수하여 나누어 가질 가능성이 있는 절대 다수의 가난한 민중은, 의회를 통하여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대표에게 몰표를 줄 가능성이 여전하고, 이렇게 선출된 민중의 대표들이 의회의 다수가 되어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줄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전통적인 방법 즉 그들의 선배들이 제안하였던 방법인, 법제도로 선거에 신분과 재산 자격 요건을 부과하여 다수 민중이 대표를 선출하거나 그들 스스로가 대표가 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이 보다 확실할 것입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이 참여하고 홍보한 신생 미국의 제헌헌법은 선거․피선거권 자격에 대한 신분적, 재산적 제약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연방 헌법은 선거․피선거권 자격을 주 헌법에 위임하고 있고, 모든 주의 헌법은 (조금씩의 차이가 있고 당대 유럽보다는 개방적이었지만) 선거․피선거권 자격에 일정한 재산적 제약을 부과하고 있었습니다.

우회 · 지연 · 분리 · 견제케 하라

다수(多數)라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다수의 의지와 열정이 집적되고 집중될 때 그 힘이 진정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분할되고 파편화되고 단속(斷續)화된 된 다수는, 그냥 소수보다 많은 다수일 뿐입니다.

신생 미국 정치엘리트들의 反민주적 정치제도 디자인은 위와 같이 대의제를 채택한 것과 대의의 자격에 재산적 제한을 부과한 것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의의 범위를 조작하고 대의의 행사방법을 왜곡하고 대의에 시차를 추가하고 대의를 서로를 상충케 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수 민중의 의지와 열정이 누적적으로 집적되고 단일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의도는 권력분립 구조와 정부기구간의 견제와 균형 속에 녹아있고,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은 몇 십편의 글을 통하여 이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옹호 홍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삼권분립 헌정체제에서(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사법부입니다. 미국의 헌정체제에서 입법부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시민의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삼권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들은 단지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받아 임명할 뿐입니다. 나아가 사법부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않음에도 시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에 대하여 위헌심사를 할 수 있는 막중한 권한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에 의하여 선출되지 아니한 사회의 보수적인 원로들로 연방대법원을 구성하여 민주주의를 통제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하원과 별도로 상원을 설치한 것도 그러한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신생 미국 정치엘리트들 대다수는 정식으로 귀족원을 설치할 수는 없었지만,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귀족적이고 보수적인 의회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한 필요에 부합하게 그들은 상원 의원을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 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각주에 일률적으로(인구규모에 불비례하게) 2명씩 선출하도록 하고, 상원 의원의 임기를 6년으로 장기로 규정하고, 그러한 상원에 고위관료 임명 승인, 조약 승인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시민의 직접 선거로 구성되는 하원을 견제토록 하였습니다.

대통령의 선출도 그러합니다.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대통령의 선출을 시민의 직접선거나 시민의 대표기관인 하원에 의한 간접선거가 아니라, 별도로 구성된 선거인단으로 하여금 간접선거토록 하였습니다. “후보자의 자격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신중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모든 원인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명목으로, 사회경제적 지배계층이나 지식인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토록 한 것입니다.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시민의 대의기관을 3개로 분리하고, 그 대의기관의 임기에도 차등을 두고, 민주적 정당성을 전혀 갖추지 못한 대법원을 별도로 설치하고, 대의의 정당한 절차를 무시 혹은 왜곡하여 대통령과 귀족적․보수적인 상원을 구축하고, 이들 대법원과 상원에 막중한 권한을 부여하여 시민의 대표기관인 하원을 견제토록 한 것 등은 민중의 의지와 열정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단일하게 집적․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물론 이러한 反민주적 요소의 일부는 연방체제라는 환경적 제약에 따른 정치적 타협에서 도출된 것이기도 하고, 이에 따라 일정 변형을 거친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대의제와 권력분립은 민주적인 만큼 反민주적 욕망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미국 헌법은 몇 차례의 수정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반민주적 요소를 철폐해 나갔습니다. 권리장전을 채택하고, 노예제를 폐지하고, 참정권에서의 신분적․재산적 제약을 폐지하고, 시민 직접 선거에 의하여 상원 의원을 선출토록 하고, 투표 연령을 인하하는 등 여러 反민주적 요소들을 고쳐나가, 오늘날 보다 민주적인 헌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의제와 권력편제에 내재된 反민주적 근간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시민과 대표의 직접성과 비례성을 억제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전혀 없는 대법원 체제, 대통령 간선제, 상원의 동등대표(인구 규모와 무관하게 주 별로 2명 선출) 등을 유지하고 있고, 특히 20세기 들어 대법원과 상원의 지위와 권한은 그 이전보다 훨씬 막강해졌습니다.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민중과 민주주의는 후견(後見) 받아야 한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을 비롯한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정치에서의 신분적 차별과 특권을 배제한, 대의제와 권력 분립에 기반을 둔 보다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원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자신들의 정치체제가 민중과 민주주의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귀족적․엘리트적으로 운영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민중은 무지하고 탐욕스러워 집단적 편견과 일시적 감정에 휩싸여 잘못된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기회만 주어지면 소수자의 자유를 억압하고 부유층들의 재산을 강탈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러므로 민중은 탁월한 지혜와 사회적 덕망을 갖춘 엘리트들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어 2천여년간 지속된 것입니다.

달(Robert Alan Dahl, 1915∼2014) 교수는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이러한 귀족주의, 엘리트주의적 전통과 현대의 그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관료주의, 전문가주의를 ‘후견주의(guardianship)'라고 명명하고 이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에서는 수단적 전문지식만이 아니라 도덕적 판단 등도 요구되는데, 엘리트들이 우월한 도덕적 지식이나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는 전혀 없고, 오히려 경험적 자료에 의하면 엘리트들은 공공의 이익이란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바빴다고 논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가 어느 군주․귀족정체 또는 이에서 변용된 어느 후견정체보다도 더 정의롭고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하여 왔고, 민중이 권력을 잡았다고 하여 소수자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부유층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군주와 귀족들의 탁월성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발휘되기 보다는, 권력과 지식을 이용하여 사적 축적을 하는데 더욱 잘 발휘되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근대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에게까지 지속된, 그들의 민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은 편견이었고, 그들의 사회경제적 상층계급과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는 과장된 것이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속의 민주주의자, 매디슨

신생 미국의 헌정질서를 제도화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입니다. 학자들은 신생 미국의 정치체제를 ‘매디슨적(Madisonian)' 정치모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과 헌법제정에 참여하였고,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되는 제퍼슨과 함께 최초의 민주적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공화당(현재 민주당의 전신)을 설립하였고, 제퍼슨 밑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후 스스로 4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철학과 정치공학에도 탁월하였던 정치사상가이기도 합니다. 달 교수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학자였다”고 평가하는데,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당시 그보다 정치의 의미, 정치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상관성과 그 한계, 새로운 미국적 정치모델의 한계와 바람직한 미래 등에 대하여 더 탁월한 안목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민주주의자였습니다. 미국적 정치모델과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속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反민주적 욕망이 뒤섞여 대립하고 있는데, 해밀턴이 反민주적․귀족적 욕망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매디슨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매디슨은 미국적 정치모델의 反민주적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속에서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이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한 인물입니다.  

미국적 정치모델의 反민주적 한계는 전혀 새로운 것이며, 그와 동시에 근본적인 것이며 현대적인 것입니다. 신생 미국이 최초로 제도화한 근대적 정치체제의 2대 지주인 대의제와 권력분립을 채택하는 한(현대의 모든 민주국가도 그러한 제도를 채택), 그 反민주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선거제, 대의제,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불가피성과 그 半민주적 본성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우리의 민주정체를 보다 민주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무엇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저는 그 정답의 단초를 매디슨이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미국적인 그리고 현대에 보편화된 대의 민주주의에 내재된 근본적인 反민주적 한계 속에서, 보다 확대되고 심화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의 단초를, 그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속에서의 생각과 그 이후의 정치적 실천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민주주의자 매디슨을 만나러 가보죠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