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디슨 등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읽기 (2)

신생 미국인들은 당대의 유럽이 갖지 못한 많은 행운을 갖고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분쟁과 전쟁이 일상화된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더불어 가까운 거리에 그들을 위협할 만한 강력한 국가도 없었습니다. 또한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있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풍족한 영토와 많은 자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근대 유럽의 발목을 붙잡던 군주와 귀족계급도 없었고, 유럽의 봉건적 제약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지식인과 하층민들로 인하여 자유와 평등, 개척 정신이 넘쳐났고, 더욱이 영국의 식민치하에서도 그들은 타운회의 등을 통하여 자치의 경험도 누적해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사회적 행운을 넘는 그들의 더 큰 행운은, 아마도 그들이 현명하고 덕망을 갖춘 정치지도자들을 가졌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승만과는 전혀 다른 심성을 가진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가졌고(미국 제헌헌법에는 대통령이 임기제한이 없었고, 워싱턴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종신 대통령이나 국왕이 될 수 있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바라기도 하였지만, 그는 임기를 채운 후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에 못지않은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과 같은 출중한 능력과 인격을 갖춘 정치인들을 건국의 아버지로 가졌습니다.

이들 건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은 신생 미국은 ‘공화정(共和政, Republic)’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화정은 군주나 귀족계급의 정치적 특권이 인정되지 않고, 통치자나 시민의 대표는 시민의 선출에 의하여 임명되는 자이어야 하고, 그 통치자와 대표는 일정 기간만 그 지위를 차지하고 정기적으로 시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체제, 즉 ‘민주적 대의정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적 대의정부 즉 대의민주주의는 지금 보면 너무나 평범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대의제’를 연계시켜 헌정질서를 만든 것, 그것도 작은 도시국가의 수준이 아니라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거대국가의 수준에서 이를 연계시켜 정치체제를 디자인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1789년 4월 30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워싱턴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대의제 + 민주주의, 인류 초유의 정치제도 디자인

민주주의에 너무나 충실하였던 고대 아테네인들도 대의제와 그의 핵심 제도인 선거와 의회제도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고, 실제 이를 일부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장군직, 회계직과 같은 특별한 능력이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공직의 경우 선거로 선출하여 임명하였고, 비록 무작위 추첨의 방식일지라도 시민의 대표들을 선출하여 평의회와 시민법정을 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통상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정치방식은 대의제가 아니라 ‘자치’였습니다. 자치방식이 가능하였던 것은 그들이 소규모 도시국가 규모의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 중세와 근대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소규모 도시국가들, 그리고 근대 입헌군주정을 확립한 영국도 선거와 의회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로크 몽테스키외 등 근대의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선거와 의회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사회적 신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편적인 선거에 기반하고 군주와 귀족계급의 정치적 특권을 완전히 배제한 의회제도를 구상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대의제는 귀족적․反민주적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당대의 유럽과 달리, 방대한 영토와 인구를 갖고 전승된 군주와 귀족계급이 없고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넘쳐나고 자치의 경험마저 풍부한 신생 미국에서, 이러한 대의제를 민주주의와 연계시킨 것, 즉 민주적 대의정부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시민들의 폭넓은 자유를 허용하는 부드러운 군주정을 만들 수도 있었고(사실 몽테스키외 루소 등 기존의 많은 정치사상가들은 광대한 국가에서는 군주정이 적절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상 자신들과 같은 부유층과 지식인들이 월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는 귀족정을 만들 수도 있었고, 자치를 행하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을 느슨하게 연결한 연맹체제로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실제 그러한 주장을 한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치제제는, 이후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그리 오래 가지는 못 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공화정 혹은 민주적 대의정부가 외부 환경에 의한 필연이거나 현실적 한계나 이익을 고려한 선택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정치철학이나 정치에 대한 신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상당히 진보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는 신생 미국의 헌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정치체제와 질서를 구축하는데 기본적 이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미국 헌법의 근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자유주의는 홉스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 등 근대 계몽주의자들을 통하여 개발되고 성장한 이념으로, 개인의 천부적 자유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여, 정치권력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타고난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고,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정치권력의 행사는 통제를 받고 정치권력의 범위는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정치이념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하여 공화주의는 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공화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로마의 폴리비우스, 키케로, 그리고 근대의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 등을 통하여 발전한 이념으로, 개인의 非지배 상태(non-domination, 혹은 脫예속적 상태)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집단․계급의 정치참여와 권력분점 그리고 그들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일방적․자의적 지배를 예방하고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통합을 달성하려는 정치이념을 의미합니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국가에 대한 배제적․제한적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신조인 반면, 공화주의는 오히려 정치 참여와 권력 분점 등 정치와 국가에 대한 구성적․형성적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신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국가의 정당성과 권위는 시민과 시민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고, 그 권력의 행사와 범위는 시민과 시민사회의 통제와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와 같은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시민 개개인이 직접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지만, 신생 미국과 같은 대규모 국가에서는 그러한 시민의 직접 참여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신생 미국과 같은 혹은 근대에 일반화된 거대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요청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시민의 대표를 선출하여 정치권력을 통제, 견제, 제한토록 하는 방법이외에는 없습니다. 다만 시민의 대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몽테스키외가 분류했듯이 귀족적 방식(귀족과 평민 계급을 분류하여 별도의 자격요건을 부과하고 별도의 선출 절차를 구비하는 방식)과 민주적 방식(계급을 분류하지 않고 보편적 선거에 의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인데, 신생 미국은 후자를 따랐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민주적 대의정부는, 신생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근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대의제의 장점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고대 아테네적인 ‘자치’ 방식(시민이 직접 모여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 매디슨은 이를 ‘순수한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라고 표현)이 아닌 ‘대의’ 방식(시민이 대표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케 하는 방식, 매디슨은 이를 ‘공화국’이라고 표현)으로 구성할 때, 자치 방식이 결코 따라오지 못할 몇 가지 커다란 장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대의 방식은 자치 방식의 규모의 한계 문제는 극복할 수 있고, 둘째 대표라는 매개체를 둠으로써 인민들의 무지․편협한 이해․무분별한 열정 등으로부터 일정 정도 벗어날 수 있고, 셋째 대표들의 현명함․사려 깊음․신중함 등 그들의 탁월함을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공화국, 즉 대의제도가 행해지는 정부는 (순수한 민주주의)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리가 추구하는 해결책을 약속한다……민주주의와 공화제간의 가장 큰 두가지 차이점은 첫째 공화국의 경우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정부를 위임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공화제는 더 많은 수의 시민들과 더 넓은 범위의 국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차이점의 효과는 한편으로 대중의 의견을 선출된 시민집단이라는 매개체를 통과시킴으로써 이를 정제하고 확대시키는 것이다. 선출된 집단의 현명함은 자국의 진정한 관심사를 가장 훌륭하게 분별할 것이고 그들의 애국심과 정의에 대한 애정은 그들의 국가를 일시적 또는 부분적 이유 때문에 희생시킬 가능성을 가장 낮게 해 준다……또 다른 차이점은 민주주의 정부보다 공화주의 정부는 훨씬 더 많은 시민과 지역을 통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직접 입법의 기능을 하고, 그들의 정기적인 토의와 일치되는 방법의 무능으로 인해서 행정부 관리들의 야망어린 음모에 끝없이 노출되는 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전제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염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행정부의 관리들의 권력의 범위와 기간이 적절히 제한되고, 대중의 대한 영향력과 자신의 힘에 대해 자신을 가지는, 그리고 다수를 움직일 수 있는 열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로 구성되지만 이성이 지시하는 수단에 의해 그것이 가지는 열정의 목표를 추구할 수 없을 정도로는 수가 많지 않은 의회에 의해서 입법부의 권한이 생사되는 대의제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입법부에 대해서 모든 경계심과 주의를 소모할 필요가 없게 된다. 

저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사실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근대의 로크, 몽테스키외 등 자유주의 사상가들에게 까지, 심지어 19세기 중엽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정치사상가라고 할 수 있는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과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에게 이르기까지,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인민은 무지와 탐욕에 가득차고 음모와 선동에 휘둘리기 쉬운 존재들이었고, 그들이 직접 정치를 수행하는 것(인민자치 혹은 직접 민주주의)은 언제라도 인류의 고귀한 성취와 이상을 말살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류가 보다 훌륭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갖춘 엘리트들이 정치를 전담하거나 일반 시민보다 높은 정치적 지위와 주요한 정치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형성된 인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편견이 2천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파벌, 정치의 근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중 한 명인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은 이러한 인민, 민주주의의 단점과 대표, 대의제의 장점을 독특하게 ‘파벌(faction)’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매디슨이 쓴 10번 칼럼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매디슨은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인간을 본래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이성적인 존재로 간주합니다. 더불어 그는 마키아벨리와 홉스적 전통에 따라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합니다. 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성이라는 선함을 갖추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기심이라는 사악함을 갖추었기에 이견과 이익에 따른 갈등과 적대, 그에 따른 파벌 형성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정치적 분쟁과 혼란의 주요 인자로 파벌을 들고, 파벌을 스스로 정의해 놓기도 하였습니다(“파벌이란, 전체의 다수이건 소수인건 다른 시민의 권리 또는 지역사회의 영구적이며 전체적인 이익에 역행하는 어떤 공통된 열정 또는 관심의 충동으로 단결되어 행동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인간사회의 영원한 분쟁의 근원인 인간의 사악함, 그리고 그 결과인 파벌의 폐해를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까요? 그는 인간 이성이나 시민 덕성과 같은 인간의 선함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이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이성이나 덕성의 필요성과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사악함은 사악함으로 파벌은 파벌로 서로를 통제케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그의 사고는 공화주의 특히 고대 로마적 공화주의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파벌의 해를 고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 영향을 조정하는 것이다. 파벌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은 다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파벌의 존재에 필수적인 자유를 아예 없애거나 시민들 모두 같은 의견과 열정, 관심사를 갖게 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 치료법은 질병 자체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고……두 번째 방법은 실행 불가능한 것이다……파벌의 잠재적인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심어져 있고 그것은 시민사회의 환경에 따라 여러 행위에 반영되는 것을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다……따라서 우리의 결론은 파벌의 원인은 제거될 수 없고 오직 파벌의 영향을 조정하는 방법에 의해서 치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임스 매디슨.

파벌과 탁월함, 그리고 ‘규모의 정치(politics of scale)’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매디슨는 마키아벨리의 ‘저변이 넓은 혼합(공화)정체’(이에 대하여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읽기를 참조)와 유사한 주장을 합니다. 즉 그는 소규모 국가 보다는 대규모 영토와 인구를 가진 공동체 즉 '거대한 공화국(extensive republic)'이 오히려 파벌의 난폭함(개인의 독재, 특정 파벌의 전횡이나 다수의 전제를 의미)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순수한 민주주의, 즉 직접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소수의 시민으로 구성된 사회는 파벌의 악영향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전체의 다수는 공통된 열정과 이익을 가지고 정부형태 자체로 인해 협의와 협조가 이루어질 것이며 약한 정당이나 역겨운 개인을 희생시키는 성향을 저지할 수단이 전혀 없다. 따라서 그러한 민주주의는 언제나 소란과 분쟁의 연속이었고 개인의 안전과 재산권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 생명도 짧았다.

민주주의 정부보다 공화주의 정부는 훨씬 더 많은 시민과 더 넓은 지역을 통치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공화주의 정부는 파벌의 형성을 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가 작을수록 사회를 구성하는 이권과 정당의 수는 더 적을 것이다. 개별 정당과 이권 수가 적을 수록 더욱 자주 같은 정당에서 다수가 형성될 것이고, 다수를 구성하는 개인이 적을수록 그리고 그들의 관할구역이 적을수록 더욱 쉽게 그들은 전제의 계획을 모의하고 실행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관할 구역의 범위를 넓히면 훨씬 다양한 정당과 이권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자 하는 다수의 공통된 동기를 더욱 불가능하게 만들고, 만약 그런 공통된 동기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파벌의 영향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공화국이 갖는 이점은 작은 공화국보다는 큰 공화국이 가지고 있고, 따라서 연맹을 구성하는 주보다는 연맹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규모의 장점은 파벌의 형성․내부 단합․충동적 행동 등을 어렵게 하는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규모의 장점은 대표의 탁월함에도 적용이 됩니다. 매디슨은 보다 거대한 규모의 공화국일수록 보다 탁월한 대표를 선출할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의문은 공공복리의 올바른 수호인을 선출하기 위해 작은 공화국과 넓은 대규모 공화국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두 가지 명백한 이유로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우선……대표자의 비율이 같다면, 큰 공화국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더 적절한 인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다음으로 큰 공화국에선 각 대표가 훨씬 더 많은 시민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자격 없는 후보의 선거에 흔히 따르는 부도덕한 술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리고 국민의 투표는 보다 자유로워지고 가장 매력적인 공적과 안정된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규모’와 관련된 기존의 전통적 사고에 대한 혁명적 전환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정치사상가들이나 기존의 근대 정치사상가들은 소규모 공동체가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제대로 보장하고 정치권력의 전횡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매디슨은 이와 정반대로 사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규모의 정치(politics of scale)’ 이론은 현실적으로는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미국적 필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권력분립, 천사가 아닌 인간을 위한

그러나 대의제, 나아가 광범위하고 다양한 유권자에 기반을 둔 대의제(거대한 공화국)나 탁월한 능력과 인격을 가진 대표의 선출만으로는 독재자나 다수의 전제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민의 선거로 통치자가 된 자는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또는 다른 파벌과 연합하여 언제라도 독재자가 될 수 있고,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억압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들은 독재와 다수의 전제를 억제하기 위하서는 대의제 외에도 ‘권력분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들은 시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정부 구조 내에서도 제도적으로 권력을 분립시키되, 분립된 권력들이 일정한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이 실천되도록 제도화 하여야 한다고 보고, 그 구체적 수단으로 입법․행정․사법부의 삼권 분립, 중앙․주 정부의 분립, 상․하 양원제, 행정부의 거부권, 사법부의 위헌심사, 탄핵 제도 등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여러 제도를 고안하고 제도화 하였습니다. 이러한 권력분립 제도는 대의제와 함께 거대한 공화국인 신생 미국의 핵심적인 정치제도입니다.

헌법의 규정에 따라 설립된 여러 부문들간에 권력분립을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방법에 의존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즉 이러한 모든 표면상의 규정들만으로 불충분하므로 정부를 구성하는 여러 부문들이 그들의 상호관계에 의해 서로 적절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정부의 내적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그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한 부문에 여러 권력들이 점점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부문을 관장하는 수반들에게 다른 부문의 권리행사를 저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헌법적 수단과 개인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경우에도 공격의 위험에 상응하는 방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야심에는 야심으로 대항해야 한다. 개인의 이해관계는 그의 직책의 헌법적 권한과 결부되어야 한다. 정부의 권력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한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큰 불신이 바로 정부 그 자체가 아닌가? 만약 인간이 천사라면 어떤 정부도 필요 없을 것이고, 천사가 인간을 다스린다면 그에 대한 어떠한 외적, 내적 통제도 필요 없을 것이다.

대의와 권력분립, 우리의 상식보다는 오래 된 

그러나 대의제가 저자들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아닌 것처럼, 권력분립 제도도 그들의 독창적인 창작물은 아닙니다. 이미 로크가 권력분립의 원리를 밝혔고, 몽테스키외는 이를 제도적으로 정립하였습니다. 로크가 그 원리만 밝혔을 뿐 정치권력을 조직하고 분리하는 것에 방법에 대하여 거의 기술하지 않은 반면,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상당한 열정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과 이들 간의 견제와 균형 이론을 정립하였고, 이는 미국 헌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흔히 대의제와 권력분립 제도는 근대 자유주의의 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의, 권력분립의 관념과 제도는 그보다 오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교과서들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가 모든 시민들로 구성된 민회에 전권을 부여한 완전한 ‘인민자치’ 혹은 ‘직접민주정체’였고, 권력분립도 없었던 양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그들도 우리처럼 일정한 대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고(그들은 행정기구인 평의회와 행정관, 민회의 예비심사기구인 입법위원회, 시민법정의 배심원 등 거의 모든 공직자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추첨으로 선출하였고,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는 장군과 회계직은 선거로 선출), 근대의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과 유사한 민회․평의회․시민법정의 분립 견제형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대 아테네와 현대의 민주정체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대의의 존재여부나 정부기구의 편제방식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의(정부 기구)의 구성을 시민과 엘리트 중 누구에게 의존하고, 추첨과 선거 중 어떠한 방식에 의존하였느냐에 있습니다. 현대의 민주정체의 입법과 행정부(사법부 제외)가 일반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된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반면, 고대 아테네의 민회․평의회․시민법정은 모두 ‘일반 시민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출된 자들로 구성되었고, 그리고 그 선출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인 ‘추첨’에 의하였습니다.

대의와 권력분립, 얼마나 민주적일까?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을 비롯한 신생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영토적으로 거대하고 경제적으로 상업적이고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함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국가(이것은 신생 미국의 주요 특징이기도 합니다)에 합당하고 실천 가능한 새로운 정치모델을 모색하였고, 결국 ‘대의제’와 ‘권력분립’을 기반으로 한 ‘공화국’을 구축하였고, 이는 현대 민주정체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대의제와 권력분립에 기반을 둔 공화국은 충분히 민주주의적이었을까요? 저자들은 정치에서의 신분적 차별과 특권을 배제한 민주공화국을 열망한 정도만큼, 빈민과 노동자 등 절대다수인 무산자(無産者) 계급으로부터 이러한 공화국을 보호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고, 그들이 구상한 대의제와 권력분립 제도에 그러한 의도를 곳곳에 숨겨놓았습니다. 이제 미국 헌법과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속에 숨겨져 있는 反민주주의를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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