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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미국, 전혀 새로운 근대 정치모델을 만들다제임스 매디슨 등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읽기 (1)
최용현 | 승인 2015.12.07 09:23

1776년 모국인 영국의 식민정책에 맞서 전쟁을 시작한 아메리카인 들은 1783년 모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을 승인 받았습니다. 모국의 국왕과 총독이 사라진 신생 미국은 정치적 무(無)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여야 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머리를 맞대고 향후 어떠한 헌정(憲政)질서 즉 어떠한 정치체제와 질서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가 고민하고 토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생 미국은 홉스 로크 루소 등 근대 정치사상가들이 前정치․사회 단계로서 학문적 가상으로 상정한 ‘자연 상태(state of nature)’에서, 지난 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였던 롤즈(John Rawls, 1921∼2002) 교수가 불편부당한 이성에 입각한 토론과 합의로 사회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하여 역시 학문적 가상으로 상정한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전혀 유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57∼1804)은 그 인류 역사상 초유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사회가 인간의 행동과 모범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선택에 따라 훌륭한 정부를 세울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인간이 그들의 정치체제를 위해 끝없이 우연과 무력에 의존해야 하는 운명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우리 국민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만일 이 주장이 진실이라고 조금이라도 인정된다면, 지금은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할 시대로 보아야 하며, 우리가 그릇된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전 인류의 불행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서 초안.

인류 초유의 상황에 처한 신생 미국  

독립을 선언한 13개 주(洲)는 1781년의 연맹 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에 따라 느슨한 형태의 연합을 구성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각 주는 독자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세금과 관세를 부과하고 심지어 외국과 외교 관계마저 맺을 수 있었습니다. 각 주가 하나의 국가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각 주들간 또는 외국과 분쟁이 생겼을 경우 이를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1787년 각 주의 대표들로 구성된 헌법제정회의가 열려 각 주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강력한 연방 국가를 설립하는 헌법 초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헌법은 13개 주 중 9개 주 이상의 비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당시 13개 주 중 뉴욕 주는 헌법 초안에 반대하고 주의 독립성을 옹호하는 여론이 높았기에, 당시 새 헌법 비준에 찬성하는 연방주의자(Federalist)였던 해밀턴,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 제이(John Jay, 1745∼1829)는 1787년 10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뉴욕 주의 신문에 새 헌법 비준을 설득하는 총 85편의 글을 기고하였는데, 그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 바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입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신문에 칼럼 형식으로 기고한 단문들의 모음집이고 더욱이 3 사람에 의하여 쓰인 만큼, 중복된 부분도 많고 다소 일관되지 못하고 모순된 내용까지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정치 팜플렛 정도일 것이라는 오해하면 안됩니다. 또한 이를 강력한 하나의 연방 국가의 필요성이라는 당시의 미국적 문제에 국한된 논의라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저자들은 당시 신생 미국의 정치를 주도하던 유력한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독립전쟁과 헌법제정과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고 독립 이후 각 주의 대표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나중에 해밀턴은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 되어 미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였고(현재 미화 10달러에 있는 인물이 바로 해밀턴이기도 합니다), 매디슨은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되는 제퍼슨과 함께 민주공화당(현재 민주당의 전신)을 설립하고 제퍼슨 밑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후 4대 대통령이 된 인물이고, 제이는 미국의 초대 대법원장이 되어 미국 사법제도의 근간을 설계한 인물입니다.

이들은 유력한 현실정치인이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정치철학적 지식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세기 민주주의에 관하여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저서를 다수 썼던 달(Robert Alan Dahl, 1915∼2014) 교수는 저자 중 한명인 매디슨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학자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저도 이에 반(半)은 공감합니다. 나머지 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학자 중에는 달 교수 자신도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여느 정치고전 만큼의 이론적 깊이를 갖춘 것은 물론, 여느 정치고전과 달리 실천적 가치를 동시에 갖춘 매우 특별한 정치고전이 되었다.

그들은 이 저서에서 당면한 국내 문제를 넘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 등 이전의 정치사상가들의 고민과 성찰을 연구하고, 고대 아테네와 로마는 물론 당대 유럽의 여러 정치체제의 장단점을 비교 검토하여, 영토적으로 거대하고 경제적으로 상업적이고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함을 특징으로(이것은 신생 미국의 주요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는 ‘근대’에 적합한 정치모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 그는 미국 헌정체제와 정치질서를 구축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인이다. 그는 헌법제정을 주도하였을 뿐만아니라, 이후에는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민주공화당(현재의 민주당의 전신)을 창당하여 미국 정당정치의 시작을 열고, 제퍼슨 정부시절에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제퍼슨 이후 미국 4대 대통령이 되었고, 반민주적 요소를 내포한 미국의 정치질서의 민주화를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다.

그들의 모델은 현대 정치의 원형

그들이 헌법제정과정을 통하여 주조하고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통하여 정당화하려 한 그 근대적 정치모델은, 이전에 실천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정치 모델이었고, 그리고 그 모델은 현대 정치의 원형이 되고 그 모델의 기본 원리는 이후 현대 정치 원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의 기고의 근본 목적은 그들이 제정한 헌법의 비준을 설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고문들의 많은 부분은 제정된 헌법의 정당화를 위한 정치철학적 연원, 역사적 근거와 실천적 합리성 등을 홍보하고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속에 내재된 그들의 새로운 정치철학을 읽기 전에, 먼저 그들이 제정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생 미국의 기본적인 정치체제와 운영원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자들이 헌법제정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지만, 신생 헌법이 온전히 그들만의 작품은 아닙니다. 그들이 완전한 무(無)의 상태에서 완전한 독립적 지위에서 신생 미국의 헌법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 신생 미국의 역사적, 정치적 제약과 타협 속에서 탄생된 것입니다. 예컨대 신생 미국의 헌법은 연방 제도를 채택하고, 노예제를 존치시키고, 상원에서 주의 동등대표(주의 크기와 관계없이 각 주가 동일한 수의 상원 의원을 연방에 파견하는 제도)를 채택하였는데, 이는 기존의 13개 주 체제에 따른 불가피한 요구였고, 노예제에 기반을 둔 남부 주와 인구 규모가 작은 주들과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연방제도, 노예제 존치, 동등대표가 없었다면 많은 주들이 이탈하여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약과 타협 속에서 여러 대표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고 할 때, 제일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어떠한 헌정체제를 만들 것이냐 입니다. 헌법제정을 위하여 모인 주의 대표들은, 물론 군주정이나 귀족정을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국인 영국의 군주를 몰아내었고 신생 미국에 귀족계급 제도 자체가 없기에, 거의 모두들 오직 ‘공화정(共和政, Republic)’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787년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미국헌법 초안을 작성한 필라델피아 회의 장면.

그들이 선택 가능한 것은 ‘공화정’ 뿐

공화정?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근대의 정치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기본적인 정치체제 분류방식은, 군주정․귀족정․민주정 3분류 방식이었습니다. 공화정(혹은 공화국)은 이러한 전통적 정체분류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공화정이란 단어를 신생 미국의 정치인들이 창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공화정이라고 호명한 최초의 정치인들도 아닙니다. 공화라는 관념 혹은 공화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로마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이고, 고대 로마인들을 물론 중세와 근대 유럽의 일부 소규모 국가들도 자신들의 정체를 공화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공화주의 혹은 공화정을 이야기하며 추구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통적으로 공화주의는 군주․귀족계급․민중간의 권력 분점과 서로간의 견제를 통하여 정치적 안정과 사회통합을 달성하려는 정치이념이었고, 공화정은 이러한 3계급이 권력을 분점하는 혼합정체를 의미하였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귀족계급의 지위와 이익을 위한 이념이고 정체였습니다. 귀족계급은 공화정을 통하여 한편으로 군주의 독재와 절대 다수인 민중의 횡포를 예방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경제적 지배계급이었던 자신들의 정치적 특권을 지속시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공화정의 정의에 대한 의미 있는 변화는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에서 나타납니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정체를 군주정, 공화정, 전제정의 3가지로 분류한 후, 군주정과 공화정은 전제정과 달리 법에 의하여 통치되는 제한 정부(moderate government)의 성격을 갖고 있고, 이중 군주정은 1인이 법에 의하여 다스리는 정체인데 반면, “공화정은 국민 전체 혹은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라고 정의하고, 공화정을 다시 국민 전체가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정과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귀족공화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족이었던 그것도 억세게 운이 좋은 귀족이었던(하급귀족이었던 그는 자손이 없었던 백부의 작위와 땅을 물려받아 남작, 고등법원장, 대지주가 되었습니다) 몽테스키외의 궁극적 희망은 전통적 공화주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귀족계급을 군주와 인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추로 보고, 군주․귀족계급․민중이 조화를 이룬 혼합정체 혹은 귀족 중심의 군주정을 최상의 정체로 보았습니다.

결국 몽테스키외를 포함하여 기존의 모든 공화주의 사상가들이나 정치인들이 희망하던 ‘공화정’은, 그것이 자유의 보장으로 표현되든 인간 본성의 실현으로 표현되든 사회적 조화의 달성으로 표현되든, 그 핵심에는 귀족계급의 사회경제적 지배권과 정치적 특권을 지속시키는데 있었고, 그것을 위하여 민중계급의 수적 우위와 실제적 힘을 제어하고 통제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신생 미국의 헌법제정자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은(특히 매디슨) 이러한 공화정의 역사를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매디슨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39번 글에서 공화정이라는 단어의 실태를 언급하면서, 당대의 네덜란드․베니스․영국 등은 세습군주나 세습귀족이 지배함에도 자신들의 정체를 공화국이라고 호칭한다며, 공화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된 답은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화정’ 이란?

그렇다면 매디슨 나아가 신생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공화정’이라고 호명함으로써, 그들이 실제적으로 의도하고 구성하였던 정치체제는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생 미국에는 군주도 귀족계급도 없었습니다. 물론 군주와 귀족계급을 새로이 창설할 수 있지만(실제 조지 워싱턴을 국왕으로 옹립하자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토지를 소유한 사람만을 상원 의원으로 임명하고 이를 종신직으로 하자는 정치인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군주와 귀족계급이 없는 한 혹은 이를 새로이 창설하지 않는 한, 귀족계급이 중심이 되어 군주․귀족계급․민중간의 권력분점이나 균형을 추구하는 전통적 공화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신생 미국의 공화정이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이에 대하여 매디슨은 위 39번 글에 연속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공화국이란 그 모든 권력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국민의 다수로부터 나오며, 제한된 기간 동안 기쁨에서 우러나온 선한 행동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정부는 필수적으로 소수의 구성원들이나 특권층이 아닌 그 사회의 다수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수의 전제적 귀족들이 폭정을 행하면서 동시에 공화주의자의 지위를 획득하거나 그들의 정부에 공화국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하려 할 수도 있다. 공화정부는 그것을 통치하는 사람들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국민에 의해 임명되며 정해진 임기 동안 그 직위에 머무르는 것이다……헌법제정회의가 구상한 헌법을 여기서 정한 기준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그것이 이 기준에 가장 엄격히 준거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여기서 매디슨은 공화정을 특징은 1) 모든 권력은 국민의 다수로부터 나오고, 2) 통치자는 국민에 의하여 임명되고 그 임기도 제한되는데, 3) 다만 권력을 산출하고 통치자의 임명하는 방식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불문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1) 인민이 주권을 갖고, 2) 귀족과 같이 세습적․종신적 지위를 갖는 공직자는 없으며, 3) 정책결정이나 공직선출은 직접이든 간접적이든 시민의 의사에 의한 정체가 공화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매디슨의 정의는 자신의 다른 글(10번 글)에서의 정의와 일정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공화정을 그 자신이 ‘(순수한)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체와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순수한 민주주의, 즉 시민이 직접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소수의 시민으로만 구성된 사회는……언제나 소란과 분쟁의 연속이었고 개인의 안전과 재산권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 생명도 짧았다……(이에 반하여) 공화국, 즉 대표제도가 행해지는 정부는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리가 추구하는 해결책을 약속한다……민주주의와 공화정간의 가장 큰 두 가지 차이점은 첫째 공화정의 경우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정부를 위임한다는 점, 둘째 공화정은 더 많은 수의 시민들과 더 넓은 범위의 국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는 모든 시민들이 민회에 모여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모든 시민들이 무작위 추첨에 따라 장군직과 회계직을 제외한 모든 공직을 배분받아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정치에서 고대 아테네적인 민회와 추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케 하고 사후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전자를 직접민주주의 혹은 인민자치라 부르고, 후자를 대의민주주의 혹은 선거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결국 매디슨은 전자와 후자 모두 공화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자신이 공화정이라고 할 때 보다 정확히는 ‘대의제’ 정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을 포함한 신생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고대 아테네적 민주정체는 소규모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고 인식 하였습니다. 그러한 체제는 거대한 영토와 국민을 갖는 근대국가, 특히 신생 미국과 같이 이미 막대한 영토와 국민을 갖고 또한 향후에도 계속적으로 새로운 주와 이민자들이 추가될 것이 예정된 국가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인식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실제 만든 신생 미국의 정치체제는 바로 ‘대의정부’였습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신생 공화정은 최초의 ‘민주적’ 대의정부

그들이 만든 정치체제가 결국은 현대에 흔해빠진, 선거에 의하여 시민의 대표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정치를 수행케 하고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대의정부라고 하니, 너무 진부하거나 식상해 보이지 않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의 혹은 그 수단으로서의 선거라는 관념은 신생 미국 이전에도 존재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구상한 이상국가인 혼합정체를 위하여 선거제도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고, 고대 로마공화정에서도 집정관 원로원의원 호민관들을 선거로 선출하였고, 중세의 여러 나라도 선거제도를 가미한 신분제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고, 중세와 근대의 유럽의 소규모 공동체들도 통치자나 의회의 의원들을 선거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귀족계급의 정치적 특권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자유주의자였던 로크 몽테스키외 등 근대의 정치사상가들은 대의체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회적 신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편적인 선거제도에 기반하고, 귀족계급의 정치적 특권을 완전히 배제한 몰(沒)계급적인 의회제도를 구상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주적 대의정부를 추구하지 못한 채, 그들 대부분은 개인과 시민사회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된 부드러운 군주정 혹은 귀족정에 만족하였습니다. 실제 당대의 가장 선진적이었던, 그리고 대부분의 근대의 자유주의적 정치사상가들이 가장 바람직하게 여겼던 영국 의회도 이러한 귀족주의적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생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인류가 전혀 실현하지 못하고 그리고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 모든 대표들이 시민들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고, 의회의 구성에서 신분적 차별이나 제약이 없고, 모든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민주적 대의정부’를 최초로 제대로 고안해내고 실천하였던 것이고, 그것은 현대 정치의 근간인 대의민주주의의 원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최용현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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