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느림'의 미학

 

국제적 명성마저
얻고 있는 '빨리 빨리'병.
도대체 무엇이 한국인들을
그처럼 조급하게

만드는 것일까

 

국토가 작고, 크기 때문일까, 한국인과 중국인은 같은 동양인이지만 의식구조와 기질은 많이 다른 듯 합니다. 우리 한국인은 매사에 ‘빨리 빨리’라는 조급증이 있는 반면 중국인은 ‘만만디(慢慢的:천천히)’라는 느긋한 여유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북한을 합쳐 22만3348㎢(남한 10만210㎢)에 불과한 한반도. 그에 비해 43배가 넘는 959만6960㎢의 광활한 대륙 중국. 마치 토끼와 코끼리 같다고나 할까.

몇해 전 한국인 신부 한 분이 유럽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긴 시간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해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니 운전기사가 대뜸 “안녕, 빨리 빨리!”하더랍니다. 뜻밖의 한국말 에 놀란 신부가 “왜, 빨리 빨리라고 하느냐”고 웃으며 묻자 “한국 사람들은 빨리 빨리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입니다.

근년에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태국의 관광지 식당에 가면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빨리 줘?”하고 미리 묻는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 여행객들의 습관적인 ‘빨리 빨리’성화에 길들여진 종업원들의 재치있는 서비스인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빨리 빨리’병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옛날 중국에 게를 잘 그리는 추앙추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추앙추는 12명의 시종과 집 한 채, 그리고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5년이 흘렀으나 그는 아직 그림을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추앙추는 5년을 더 달라고 했고 황제는 이를 승낙했습니다.

10년이 거의 될 무렵 추앙추는 홀연히 붓을 들어 먹물을 찍더니 한 순간에 단 하나의 선으로 이제까지 그렸던 것 중 가장 훌륭한 게 를 그려내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그림 밖으로 기어 나갈 듯 했습니다. 황제는 무릎을 치면서 “기다림이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 구나”하고 감탄을 했다고 합니다.

여유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린 밀란 쿤테라의 작품 ‘느림’의 뒤표지에 소개되어 있는 글입니다. 과장된 것이긴 해도 중국인들의 굼뜬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 설화(說話)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빨리 빨리’병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려져 하나의 문화로 굳어진지 오래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빨리 빨리’ 재촉은 “빨리 일어나!” “빨리 밥먹어!”, “빨리 학교 가!”로 계속되고 출근길도 '빨리 빨리', 업무도 '빨리 빨리'해야 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된 ‘빨리 빨리’증후군. ‘토끼와 거북’의 우화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 뉴시스

엘리베이터를 타도 단 2, 3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버튼을 누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몇 계단씩 펄쩍펄쩍 건너뛰고 버스가 서기도 전에 먼저 내리려고 몰립니다. 그 뿐인가. 비행기에서 조차 기체가 멎기도 전에 우르르 일어나 짐을 챙기느라 수선을 떱니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는 이제 고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의 1분당 보행 수는 유럽인들에 비해 열다섯 걸음정도 많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도쿄(東京)의 번화가에서 걸음걸이가 빠른 사람은 십중팔구 한국인이라는 색다른 식별법을 말하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한국인들은 왜 그처럼 매사에 조급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에 쫓겨 그토록 여유를 갖지 못하고 허둥지둥 서두르는 것일까. 학자들은 어느새 다가오고 훌쩍 지나가버리는 사계절의 기후와 연관 짓기도 하고 역사상 수 많은 외침(外侵)에서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파종과 수확의 적기(適期)를 놓치면 자칫 농사를 망치는 긴장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외적의 침략과 식민지치하의 쫓기기만 하던 일상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럽인들 가운데는 고춧가루 때문에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색다른 해석도 합니다. 1980년대 차범근 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질풍같이 내 달리는 것을 보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빨리빨리 병’이 건성건성 대충주의가 되어 급기야 사회전반을 부실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온다는데 있다하겠습니다. 1970년대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을 비롯해 신행주대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대형 사건들은 하나같이 ‘빨리빨리’가 빚어 낸 결과임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해 있었던 세월호 참사 역시 대충주의, ‘빨리 빨리 병’의 소산임을 누가 부인 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교통사고 또한 더 빨리 가려는 조급증에서 빚어지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만만디'를 삶의 덕목으로 여기고 매사 여유롭게 생활을 합니다. 한국인들의 눈에는 서두르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하는 그 모습이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개방이후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앞을 다퉈 중국으로 몰려갔지만 거의 다 실패를 하고 만 것은 조급증으로 만만디를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는게 중론입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급박한 세상 느긋하게 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슬로비(Slobbie)운동’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시간 늦추기회’라는 이들 단체들은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먹는 소위 ‘천천히즘’을 즐기고 있다는데 많은 시민들이 이 운동에 호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빨리 빨리병’이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경제발전도 이루고 민주화도 달성한 것은 국민들의 ‘빨리빨리’ 기질이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지만 “그럼, 만만디 중국의 급성장은 뭐냐”는 반론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 사회도 이쯤 됐으면 '빨리 빨리' 증후군에서 벗어 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성장도 좋지만 너무 서둘러 가려 하다가는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能事)가 아니요, 천천히 가는 여유도 미덕(美德)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속도(速度)의 시대’라도 삶이 스포츠가 아닌 이상 빨리 가야 할 때 빨리가고, 천천히 가야할 때 천천히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급처사완(急處思緩). 급할 때 일수록 천천히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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