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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절제·신중…이게 保守의 얼굴이라고요?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 읽기
최용현 | 승인 2015.11.09 10:35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는 일반적으로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는 정치적 신념’을  말합니다. 이러한 보수주의는 자유주의․공화주의․사회주의․무정부주의 등 여타 정치이념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보수주의는 여느 정치적 이념과 달리 추구할 가치의 내용이 선험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에, 사회주의가 사회적 연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념인 반면, 보수주의는 ‘보수(保守)’라는 단어처럼 전통과 관습 자체의 수호를 주장하지만, 수호하여야 할 전통과 관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원적․원론적 기준이 없고, 보수주의자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전통과 관습은, 도전하는 정치세력이 어떠한 이념을 신봉하느냐 그리고 그들이 기성의 것 중 어떠한 것을 공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정치이념을 개괄하고 있는 책들.

그러한 측면에서 어떤 학자들은 보수주의는 스스로 규정한 이상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고도의 이론 체계인 이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심리적 정향의 한 양상에 불과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수호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때 그때 달라지는 상황적(situational)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보수주의를 이념이 아니라, 정치적 변화에 대한 하나의 심리적 정향 즉 변화를 대하는 태도 내지 정서를 의미한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에서 보듯이 사실상 정치사상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보수주의적 면모를 갖고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보수주의도 비록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할지라도 하나의 이념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이념으로써 즉 하나의 정치적 입장과 운동으로서 보수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념으로써의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시작된 이듬해인 1790년에 출간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담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이하 ‘≪성찰≫’이라 함)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성찰≫은 당대의 중대한 사건이었던 프랑스 혁명과 직접적 관련이 있을 뿐이고, 버크 스스로도 시공간을 초월한 보수주의 철학의 일반적 토대를 구축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그는 보수주의라는 단어 자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찰≫은 보수주의자들의 영원한 경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후 200여년 동안의 보수주의는 그가 ≪성찰≫에서 내세웠던 기본적 교리를 세련되게 다듬고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보수주의 이념에서 그의 공헌은 지대합니다. 따라서 ≪성찰≫을 읽으면, 수많은 시공간에 존재하였던 그리고 현대에도 새로이 변색하고 위장한 채 수시로 등장하는 수많은 다종다양한 보수주의자들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

≪성찰≫, 보수주의자들의 영원한 경전

≪성찰≫의 원제는 ‘프랑스 혁명 및 이에 대한 런던의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 Relative to)입니다. 제목처럼 ≪성찰≫은 자유와 평등, 인민주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과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당대 영국의 지식인과 시민단체를 비판하고 이들에 대하여 성전(聖戰)을 벌일 것을 촉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버크의 눈에는 최악의 프랑스 舊체제는 최상의 훌륭한 체제로 보였고, 이를 뒤엎고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프랑스혁명은 무지한 선동과 폭력으로 비쳤으며, 이를 추종하는 영국의 지식인들은 존엄한 세습왕위와 귀족제도라는 영국의 전통을 훼손하는 폭도들로 보였습니다.

(프랑스 구체제는) 자유로운 헌법, 강력한 왕정, 규율 있는 군대, 개혁되고 존경을 받고 있는 성직자, 덕을 북돋고 온화하고 활기에 넘치는 귀족, 귀족을 본받고 또 그 보조자가 되기도 하는 자유로운 계층, 보호되고 충족돼 있으며 근면하고 순종하는 민중까지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참된 도덕적 평등은 이러한 미덕 속에 있지, 수상쩍은 허구(프랑스혁명기의 자유와 평등 주장을 의미) 속에는 없다. 그런데도 그 수상쩍은 허구가 부지런한 노동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도록 정해진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고와 무익한 기대를 불어넣고, 그 허구로는 결코 제거할 수 없는 현실의 불평등—비천한 처지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될 사람에게도……똑같이 도움이 되도록 이 세상의 생활규범이 정한 불평등—을 증대해 더 견디기 어렵게 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성찰≫을 직접 읽어보면, ’성찰‘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위와 같은 온갖 모함․왜곡․선동․궤변․억지 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성찰≫속에서 성찰이라고 할 만한, 보수주의의 경전으로서 오늘날 다시 음미하여 볼 만한, 보수주의의 기본적 인식론과 정치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주의’에 기반합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근간이 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철학의 인간․이성․진보관과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자유주의 이념은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가졌기에 역사의 진보에 신뢰를 보내지만, 보수주의는 인간의 이성은 불합리성이 있고 그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가정하기에 역사의 진보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이성이나 추상적 사고, 연역적 추론 보다는 누적된 역사적 ‘관행’이나 ‘경험’을 우선시합니다. 그리고 수세대에 걸친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하여 올바른 지혜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 지혜의 결과가 현재의 제도와 질서라고 봅니다. 버크는 이렇게 수세대에 걸친 경험과 관행으로부터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터득한 지혜 또는 통찰력을 ‘편견(prejudice)’으로 표현하고(이는 우리가 ‘편견’을 일상적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에 비하여 독특한 사용법이긴 합니다), 이를 이성보다 신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복잡한 인간 본성 속에서 이성은 연약하며, 이성은 오히려 감상과 감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반면에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해 온 기존 제도와 관념은 지혜의 보고일 뿐 아니라 국가체가 영원한 연합으로서 신이 마련한 제도이다.

국가는……일시적이며 사라져버릴 성질인 저차원의 동물적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물자에 관련된 동업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학문에서의 동업이다. 모든 기예에서의 동업이며, 모든 도덕과 모든 완성에서의 동업이다……그 동업은 단순히 살아 있는 자들 사이의 동업으로만 그치지 않고,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그리고 장차 태어날 자들 사이의 동업이 된다.

더 오래 지속된 편견일수록. 더 만연되어 있는 편견일수록,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편견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는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 자신들의 사적인 이성에 입각해 살고 교류할까봐 두렵다. 왜냐하면 각 개인이 가진 이성의 양은 적기 때문에 오랜 세대에 걸쳐 축적된 국민 전체의 은행과 자본을 각자가 이용함으로써 더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론은 정치적 보수주의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기존 제도와 질서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지고, 사회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려거나 단기간에 급격한 진보를 이루려는 시도에 대한 거부로 연결됩니다. 버크가 프랑스 혁명을 거부하고 이를 추종하는 영국의 지식인들을 비판한 것은 이러한 인식론에 기반한 것입니다. 버크는 국가를 권위의 상징인 부친에 비유하며 개혁가는 국가의 잘못을 시정함에 있어 부친의 상처를 대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임하여야 하며, 단기간의 급진적 개혁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는 자는 “무모하고 성급하게 연로한 부친을 조각조각 잘라내고 그런 다음 독초와 광포한 주문의 힘으로 부친의 체질을 재생시키고 그 생애를 혁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마법사의 냄비에 던져 넣는” 부친 살해범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그렇다고 버크가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버크는 이에 대하여 “변화의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국가는 자신의 보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버크는 기존 전통과 관행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기존의 제도와 질서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오지 않는 소극적이고 점진적인 변화 혹은 기존 체제의 역사적․사회적 기초를 현명하게 보존(conservation)하고 잘못된 부분만을 조심스럽게 교정(correction)하는 신중한 개혁에 대하여는 긍정적으로 평가를 합니다(대학시절 정치사상을 담당하던 모 교수는 이를 “保守는 補修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예로 버크는 영국의 명예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을 들고, 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윌리엄공 부부.

재산과 위계, 보수주의의 정수

버크의 인식론 즉 인간의 이성과 진보에 대한 회의, 경험과 관행에 대한 신뢰, 급격하고 졸속적인 조치에 대한 거부라는 그의 태도만으로 그의 이념적․정치적 색(色)을 제대로 규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변화의 ‘속도’에 대한 하나의 정서 정도에 불과하지, 이를 통하여, (변화를 도모하건 변화 자체에 반대하건 혹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자건) 변화의 ‘목표’ 혹은 ‘방향’에 대한 이념적․정치적 속내를 읽을 순 없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문제 삼는 것도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오히려 변화의 목표 내지 방향 이었습니다. 버크에게도 이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변화의 시류에 맞서 버크가 수호하고자 한(혹은 변화의 올바른 목표 내지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설정한) 누적된 지혜의 결과물인 제도와 질서는 무엇이었을까요? 버크는 그러한 것으로 ‘재산’ 제도와 ‘위계’ 질서를 내세웁니다.(물론 그는 그 외에 종교제도, 전통적 결사체 등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버크에게 재산(사유재산제도)은 자유의 기초이며 사회 안정의 기반이 됩니다. 즉 재산은 개인의 자유의 기반이 되며 또한 그것의 결실이기도 할 뿐더러, 또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화시키므로 사유재산제도가 사회의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자유와 사회적 안정의 기초로 보는 것은 버크에게만 특유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플라톤 이래 지속된 관념이고, 근대의 자유주의자들도 역대 어느 정치적 조류보다도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크의 재산에 대한 인식에는 그들과 다른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의 재산과 자유에 대한 중시는 당대의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방임주의자들의 태도와 유사하지만, 그가 말하는 재산과 자유의 의미는 그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버크에게 재산과 자유는 근대 시민혁명의 선언문들처럼 개인의 천부적․절대적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대헌장 이래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의 전통에서 전승된 제도적․상대적인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주장하고 요구할 때 그것을 조상들로부터 비롯해 우리에게 이르고 나아가 우리 자손에게까지 전해지는 상속재산으로 이해하는 것, 이를 일반적 권리나 선행하는 권리 따위와 결부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 대헌장에서 시작해 권리선언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정의 불변한 방침이었고……우리는 상속해야 할 왕위와 상속해야 할 귀족을 지니고, 또 오랜 세월에 걸쳐 조상들의 계보로부터 소극적, 적극적 특권 및 자유를 상속하고 있는 하원과 민중을 지니고 있다.

재산을 전통과 연계시킨다? 1215년의 영국의 대헌장과 (여느 근대 시민혁명보다도 보수적으로 귀결되었던) 17세기의 청교도․명예혁명에서 제일 중요한 주제는 ‘귀족 계급’의 특권과 재산의 보존이었습니다. 버크는 ≪성찰≫에서 계속적으로 귀족 계급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그들의 세습적․前근대적 특권과 재산을 옹호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역사 인식에 기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플라톤 이래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들은 사유재산제도와 그로 인한 재산의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그 만큼 그 해악과 그 해악을 방지할 방안에 대하여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크는 오히려 그러한 불평등의 ‘장점’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러한 불평등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정당한 사회적 차별과 위계를 낳는 훌륭한 기초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획득 및 유지라는 복합적 원리로 형성되는 재산 특유의 본질이란 그것이 불평등하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부러움을 자극해 약탈을 부추길 정도로 많은 재산은 위해의 가능성이 미치지 않는 곳에 놓여 있어야 한다……우리의 재산을 우리들 가족의 손 안에서 영속시키려는 힘, 이 힘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 중에 하나고, 사회 그 자체의 영속화 방향으로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힘이다. 그것은 우리의 약점을 미덕 아래 엎드리게 하고 탐욕에조차 선의를 접목시킨다……이들 대 재산소유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반열에 들 기회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도 국가라는 대 선박을 지탱하는 바닥짐이 될 것이다.

버크에게 반드시 수호해야 할 인류의 누적된 또 하나의 지혜는 ‘위계’ 질서입니다. 그는 인간은 소질과 능력, 지위와 재산에서 서로 차이가 있기에, 이러한 차이에 따라 위계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통치는 능력과 덕망을 갖추고 일정한 신분과 재산을 가진 계층이 전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차별과 위계에 반하는 평등주의적 조치나 민주주의는 자연에 거스르는 不정의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에게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평등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위계는 정의로운 것이며 민주주의는 부정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적․위계적 세계관은 플라톤 이래 주류적 정치사상가들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버크에게 차이가 있다면, 이러한 교리에 대하여 의구심이 점증하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그러한 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평등을 추진하는 인간은 결코 평등을 가져오지 못한다. 무릇 다양한 종류의 시민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어떤 계급이 최상위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평등주의자들은 사물의 자연적 질서를 바꾸고 왜곡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셈이다……완전한 민주정치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파렴치의 극치다. 

(프랑스의 삼부회의 제3신분원의 대표들이 하급법조인, 시골사람, 상인, 의사 등으로 구성되었음을 한탄하며) 그런 자들로부터 대국의 이익에 대한 지식이나 배려, 또 일반적인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고려 따위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통솔자가 아니라 보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들이다……거기에는 우리가 국토의 자연적인 토지 소유계급으로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데 있어서 재산과 함께 능력도 대표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적절한 대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능력이 활기 있고 행동적인 원리인데 비해, 재산은 조용하고 운동성이 없고 소극적인 원리이므로, 재산의 경우 그 대표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균등하게 우세로 해두지 않으면, 능력의 침해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또 그것은 커다란 축적량으로 대표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정당하게 보호되지 않는다.

이 사회라는 조합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지만 사물에 대해서는 아니다. 조합에 5실링을 출자한 사람은 5실링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고, 500파운드를 출자한 사람은 더 큰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공동자산에서 생겨난 것도 양자가 똑같이 배분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당대의 영국은 대의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고, 버크도 대의제도에 대하여 찬동(그 자신이 하원 의원이었습니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의제도에 찬동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사회적 차별과 위계를 보존하고 지속시키는데 유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대의 영국의 민중들은 선거․피선거권이 없었고, 극소수의 귀족과 부유층만 그러한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당대의 진보적 사상가들은 참정권을 확대하고 균등화하는 정치개혁을 주장하였지만, 버크는 이에 대하여 철저히 반대하였습니다. 

버크 이후로 나찌즘․파씨즘의 공모자, 제3세계 군사쿠데타와 독재 정권의 협조자, 1960년대 이후의 종교적 우파를 거쳐, 현대 미국의 지배층인 네오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보수는 反종교적인데 반하여 어떤 보수는 종교적 광신도에 가까웠고, 어떤 보수는 시장의 우선성을 주장하는데 반하여 어떤 보수는 시장에 대하여 부정적이었고, 어떤 보수는 강력한 권력과 권위를 주장하는데 어떤 보수는 시민사회의 자율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다종다양한 보수주의자들에게서 공통된 정치적 지향을 찾는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버크가 말하는 ‘재산’과 ‘위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사유재산 제도와 그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을 옹호하고, 평등주의적 사고와 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한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와 외양에서 이러한 反인간적․反사회적․反평등적․反민주적 본색을 찾기는 힘듭니다.

코리 로빈의 <<보수주의자들은 왜?>>.

보수주의자들의 맨얼굴

교양․품위․절제․신중․관용․평화․자선․자율․책임감……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스스로 내세우는 자신들이 갖고 있다는 덕목들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최근에 번역 출간된 ≪보수수주의자들은 왜?≫(원제는 The Reactionary Mind)의 저자인 코리 로빈(Corey Robin)은, 홉스와 버크에서부터 2008년 미국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까지 300여년 간의 다종다양하였던 여러 보수사상자․정치인․선동가들을 발가벗겨,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러한 선한 덕목들 속에 잠재된, 그들의 속물 근성․비열하고 졸렬함․강자 숭배와 폭력 찬미 행태를 백일하에 폭로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요?

2014년 여름 대한민국은 문창극 총리후보자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뤘습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유력일간지 주필까지 거쳤고 서울대 초빙교수도 하였고 언론과 정치관련 학회의 회장도 역임하였던, 학력과 경력면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보수적 엘리트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총리후보로 지명되면서, 그의 이전의 칼럼과 강연이 각계각층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결국 사퇴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의 칼럼과 강연에서, 국가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니코틴 중독자로 폄하하고, ‘우리 귀를 더럽히고 격을 낮추’었다며 故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없는 유전자를 가졌다며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일제지배는 하나님의 뜻이고 일본이 이웃인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의 사과를 받을 필요도 없다고 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옹호하면서는 미국은 타국의 영토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유일한 강대국이라고 추켜세우고, 북한을 이라크에 비유하며 뜬금없이 미국과 북한 중 누가 더 나쁜가 묻기도 하고, 전교조는 학생들에게 반미․반전만 편식케 한다고 전교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를 보며 사람들은, 지식인․언론인으로서의 철학과 논리를 묻기 전에 기본적 인격이나 교양마저 의심스럽다고도 하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가득 찬 反인간적․反사회적 궤변론자 같다고도 하고, 강자에 대한 숭배와 권력에의 탐욕으로 가득 찬 기회주의자 같다고도 하고, 군사정권 시대의 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대파에 대하여 이념적 덧씌우기와 폭력적 탄압을 주문하는 선동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보수주의자, 적어도 ‘대한민국’ 보수들의 맨얼굴인지도 모릅니다.

최용현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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