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줄타기외교

 

힘센 자의 말은 옳다.
그것이 정글의 법칙.
우리는 힘센 자의 말이
정의인 세상을 살고 있다.

라퐁텐의 우화처럼

 

어느 날 목이 마른 어린양이 갈증을 풀려고 골짜기 물가에 입을 담갔습니다. 그런데 때 마침 어디선가 커다란 늑대가 불쑥 나타나 “여기는 내 땅인데 물을 흐리게 하는 네놈은 누구냐?”하고 호통을 칩니다. 깜짝 놀란 어린양은 벌벌 떨면서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물을 먹겠습니다”하고 사정을 합니다.

그러나 늑대는 막무가내로 눈을 부라리며 “네 이놈, 작년에 내 험담을 하고 다닌 놈이 바로 너였지?”하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겁에 질린 어린양은 “저는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늑대는 “그렇다면 네 형인지, 어미인지, 어떻든 너의 집안 식구임에 틀림없어!”하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린 어린양을 숲속으로 끌고 가 잡아먹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17세기 프랑스의 서정 시인이었던 장 드 라퐁텐(Jean de La Fontaine)의 우화집(寓話集)에 나오는 ‘늑대와 어린양’의 줄거리입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다던 ‘태양왕’ 루이14세 치하에서 그 위세를 업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던 힘없는 민중의 삶을 우화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가장 힘센 자의 말은 언제나 옳다’는 격언으로 바뀌어 오늘에 전해져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진 힘 있는 부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그 힘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합니다. 당연히 그들의 주장은 언제나 옳고 정의(正義)가 됩니다. 이론가들은 정의라는 것에 대해 온갖 논리를 쏟아 내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약자들을 지배하는 힘센 자들의 주장이 언제나 정의라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군주론(君主論)’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누구나 권력의 화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작든, 크든 권력을 갖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다큐멘터리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동물의세계가 적나라(赤裸裸)하게  전개됩니다. 그곳에서는 ‘늑대와 어린양’처럼 힘이 곧 법이고 정의입니다. 아무리 덩치가 크건, 몸매가 아름답건, 성질이 유순하건 약한 놈은 힘이 센 놈의 밥이 됩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그것이 ‘정글의 법칙’인 것입니다.

라퐁텐의 ‘늑대와 어린양’이 시대를 넘어 오늘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은 동물의 세계처럼 인간의 세계 또한 힘을 가진 자가  사회를 좌우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묘기.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가 바로 이 줄타기와 같다고 합니다. /뉴시스

요즘 와서 우리나라의 외교가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줄타기 묘기를 보는 것과 같아서 하는 걱정들인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경제이건, 안보이건 독자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형편에 어느 나라가 됐건 멀리할 수 없는 상황이기 까닭입니다.

1990년 소비에트연방, 즉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공산권의 맹주 소련은 뒤로 밀려났고 세계는 미국의 독주를 바라봐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구 13억5000만의 중국이 용틀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사이 중국은 독일,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했고 미국과 함께 G2(Group of Two)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경제력만이 아니라 군사력, 과학기술력 또한 크게 발전해 인공위성까지 쏘아 올려 성공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코앞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분석가들 중에는 2022년이면 중국의 국력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이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군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막강합니다. 고성능 최신무기로 무장한 군사력은 전 세계 59개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을 정도이며 매년 175개 나라에서 군사훈련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5대양 6대주를 주름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이제 “할 말은 한다”며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대대적인 전승절 행사로 전 세계에 군사력을 과시한 것도 사실은 과거의 중국이 아님을 보여준 미국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시진핑(習近平)주석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눈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엘리자베스여왕이 직접 황금마차로 극진한 접대를 한 것도 오늘 중국의 위상과 무관치 않습니다. 중국은 이미 과거의 중국이 아닌 ‘신중국’(新中國)이 된 것입니다.

미국은 1945년 해방이후 줄곧 우리의 안보를 지켜준 맹방입니다. 6ˑ25전쟁에서 우리를 구해준 것도 미국이요, 최빈국의 가난에서 벗어 나 오늘 이처럼 살만하게 된 것도 사실은 미국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신의(信義)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중국은 제1의 교역국으로 우리경제를 지탱시켜주고 있는 이웃입니다. 우리 한류스타들이 드넓은 중국 땅을 헤집고 다니고 우리 자동차가 수도 베이징(北京)의 공인택시가 되어 거리를 뒤덮을 만큼 큰 시장이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생활필수품은 거개가 중국산이요, 그것을 싼값으로 사서 쓸 수 있는 것도 중국 덕분입니다. 중국은 결코 가벼이 할 수없는 불가분의 동반자가 되어있습니다.

그처럼 미국과 중국은 지금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ˑ중 두 나라가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기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 되었으니 어찌 난감하지 않겠습까. 고래싸움의 새우 꼴이 되어 이쪽저쪽 눈치를 봐야하는 형편인즉 줄타기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크게 보도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야 이쪽저쪽 다 필요한 만큼 균형있게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쪽과 가까워지면 저쪽의 비위를 건드리는 꼴이 되니 말입니다.

지난 9월 중국전승절 행사에 박근혜대통령의 불참을 미국이 총용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일이고 곧장 특별한 현안도 없이 미국으로 날아가 불편한 심기를 달래고 온 것도 우리는 눈으로 보았습니다. 힘센 나라 사이에서 작은 나라 처신하기가 어렵다는 걸 보여 준 또 한 번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1950년대 유행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 지금 우리나라가 꼭 그 지경이 되었습니다. 옆집 잔치에 간 것이 꼬투리가 되어 뒷집 영감이 시샘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맞습니다. 줄타기외교 맞습니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외줄을 타는 묘기가 어렵듯 줄타기외교가 쉬울 리 없습니다.

하지만 옛 속담에도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습니다. 관건은 국민통합, 국민을 하나로 묶는 정치력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