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앞으로 남은 임기 1년,
이제 문대통령은 레임덕 기간에
들어섰습니다. 뒤뚱 뒤뚱.
지금부터는 퇴임 준비를 
해야합니다―

내년 3월 9일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 여·야당은 똑같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4·7재보궐 선거에서 의외의 참패를 당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러다가 정권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고 예상 밖의 대승에 기세가 오른 국민의힘은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는 자신감으로 기세가 올라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의 20대국회 총선거를 위시해 2017년의 19대 대통령선거, 2018년의 전국동시지방선거, 2020년의 21대국회 총선거 등 네 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전연패의 쓰라린 패배를 당해 낯을 들기 어렵던 야당 지도부로서는 이번 선거의 압승이야 말로 당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신바람이 난 것은 지당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뜨거운 맛’을 본 민주당은 즉각 원내 대표를 교체한다, 당대표를 새로 선출 한다…등등, 지도부 교체를 통해 당의 분위기를 쇄신하는가 하면 청와대 또한 정세균 국무총리를 물러나게 하고 몇 개 부처 장관과 일부 청와대 비서관을 교체하는 등 분위기 일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4년 전인 2017년 5월 10일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허겁지겁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돼 미처 인수위원회도 꾸리지 못하고 국회 로비에서 약식으로 치른 취임식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 4년 세월이 흘러가고 퇴임 1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치학에 레임덕(Lame Duck)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단어대로 풀이하자면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인데 오리가 뒤뚱뒤뚱 기우뚱대며 걷는 모습에 빗댄 말로서 1700년대 영국에서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된 증권거래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한 것이 그 유래입니다. 그런 경제 용어가 정치적인 의미를 띄게 된 것은 1860년대로 미국의 16대 링컨 대통령 재임 당시에 임기가 1년 남은 시점에 상대편 당의 상·하의원들이 대통령의 말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레임덕은 현직에 있는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 누수 현상입니다. 즉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거나 먹혀들지 않아서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으로 달리 ‘임기 말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3선이 금지된 미국의 경우 2기째 현직 대통령의 소속 정당에서 의회를 장악하지 못했을 경우이거나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여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약 3개월 동안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정확히 2017년 5월 10일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 5년입니다. 2021년 4월 20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정확히 12개월 19일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겪는 일이지만 1년이란 시간은 시냇물 흐르듯 금방 지나갑니다. 문대통령은 이제 좋든 싫든 레임덕 기간에 들어섰습니다. 취임 초 국민 여론 조사에서 80%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토지주택공사(LH) 사건이 터진 최근의 조사에서는 임기 중 최저치인 30%대를 겨우 유지 할 정도입니다.

1948년 정부 수립이후 73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사람은 모두 12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무슨 징크스와 같은 액운이 따라 붙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임기 중 이거나 퇴임 뒤 불행을 겪는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2, 3대 세 차례 12년 동안 대통령직을 역임하면서 한때 ‘건국의 아버지’라는 일부의 과잉존대까지 받았으나 종신집권 야욕에 자유당정권의 부패로 ‘4월 혁명’이라는 국민적 저항을 불러와 권좌를 내려 올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미국의 하와이로 망명을 가 일정한 거처도 없이 요양원을 전전하다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맞아 유해만이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장장 18년 동안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절대 권력을 누렸으나 장기 집권의 과욕에 빠져 삼선개헌에 유신(維新)선포 등 무리한 독재정치를 즐기다가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당하는 처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5,6,7,8,9대, 다섯 차례 대통령을 역임하는 역사적 기록을 남겼으나 부인마저 저격을 당해 목숨을 잃는 비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비록 독재자 소리는 들었지만 긴 세월동안 오늘 대한민국의 발전을 도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레임덕. 뒤뚱뒤뚱 기우뚱 거리며 걷는 오리들. 대통령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정치 용어가 되었습니다.

박대통령의 유고로 권력의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재빨리 군사력으로 권력을 쟁취한 11, 12대 전두환 대통령은 1979년 12월 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로 체포하는 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했습니다. 1980년 체육관 선거를 통해 스스로 대통령이되었고 1981년 3월 3일 선거인단의 간접 선거를 통해 12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1988년 대통령 퇴임 7년 뒤인 1995년 구속 기소되어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항소심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1997년 12월 22일 사면 복권되었습니다. 1999년 8월 31일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로 2200억원을 선고 받았으나 “내 수중에는 29만원밖에 없다”는 유명한 넋두리를 남겨 놓고 아직 미납인 상태입니다. 전씨는 현재도 광주민주화운동의 헬기총격사건 진위를 놓고 재판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13대 노태우 대통령 역시 전두환 전대통령의 친구로 육사 11기입니다. 1995년 비자금 사건 연루, 5·18광주민주화운동 강제진압과 12·12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시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해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고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와의 외교 관계를 수립, 정치, 외교 등 나름의 업적을 쌓았습니다.

뒤를 이은 14대 김영삼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는 긍정 평가 속에 군내 최대 파벌인 하나회를 해체시키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차남의 정치 관여가 문제가 돼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을 지켜 봐하는 고역을 겪었습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나들며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자신의 말대로 인동초처럼 살아난 15대 김대중 대통령.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6·15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 정책을 내세워 지방 분권과 금권선거 추방에 상당한 공로가 있었습니다. 형님의 뇌물관련으로 고초를 당했고 도보로 휴전선을 넘어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연 사건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러나 퇴임 뒤 검찰의 수사와 함께 “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수사기관의 조작 발표에 충격을 받아 절벽에서 투신하는 비극적 종말을 실행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숨겨 놓은 회사 다스의 349억 원 횡령 및 소송비 119억 원을 삼성전자가 대납시키는 등 횡령·뇌물죄로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만원을 선고 받고 현재 수감 중에 있습니다.

18대 박근혜 대통령은 15대~19대에 이르기까지 5선 국회의원에 이어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낸 뒤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2013년 2월 25일부터 2017년3월 10일까지 4년 15일까지 재임. 최순실과의 국정농단으로 연인원 1800만 명이라는 엄청난 국민의 촛불시위로 탄핵을 당해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수감 중입니다. 혐의는 총 21개, 형벌은 총 33년형과 벌금 205억 원, 추징금 3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형량대로라면 90대 후반을 넘어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4대 윤보선 대통령은 내각책임제하의 상징적인 대통령으로 1년 7개월을 형식상 국가원수의 자리에 있었으나 쿠데타 세력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에 따라 국무총리로 대통령 직위에 오른 10대 최규하 대통령은 8개월간 재임 중 군부의 강요에 따라 대통령직을 물려주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4월 20일 기준, 정확히 1년 19일 남았습니다. 선거는 3월 9일 치러지지만 정식 임기는 5월 10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문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1년, 레임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국민적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마하니 어느 쪽에서 정권을 잡든 정치적 보복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뒤 ‘논두렁 금시계’를 조작해 발표한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미국의 어디엔가에서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숨어있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없는 일을 꾸며 정치적 보복을 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각설(却說). 코로나19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올 봄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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