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넘친다

―거짓말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거짓말은 악폐입니다.
좋은 나라는 거짓이 없는 
정직한 나라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위(魏·BC770~220)나라 혜왕(惠王)때 얘기입니다. 위나라의 태자가 이웃 조(趙·475~221)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자 혜왕은 태자의 수행원으로 중신 방총(龐蔥)을 따라 가게 하였습니다.

방총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으로 떠나기 전 왕을 알현하고 하직 인사를 올렸습니다. “대왕, 지금 누군가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호랑이는 웬 호랑이? 물론 믿지 않지.” “그럼, 조금 뒤에 다른 사람이 똑같이 말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 반신반의 할 수 있겠지.” “그러면 뒤이어 세 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오.”

방총은 간곡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대왕,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연이어 같은 말을 하니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었습니다.(夫市之無虎明矣·부시지무호명의 然而三人言而成虎·연이삼인언이성호). 이제 태자를 수행해 조나라로 떠나면 신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게 어찌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대왕께서 두루 살펴주시옵소서.”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 아니나 다를까, 예측대로 그를 중상 모략하는 자들이 온갖 괴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 뒤 볼모로 잡혀있던 태자는 무사히 돌아 왔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위나라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당대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내용,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나타난다는 고사(故事)입니다. 사실이 아닌 거짓말일 지라도 여러 사람이 말을 맞춰 퍼뜨리면 사실이 된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는 옛 이야기입니다.

1970연대 ‘카더라 통신’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슬이 퍼렇던 유신독재시대 언론 자유가 극도로 제한돼 신문·방송이 제대로 기사다운 기사를 쓰지 못 하던 시절, 근거도 확실치 않은 정보들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그렇다고 하더라”하던 것이 소위 ‘카더라 통신’의 원조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었던 터라, 제법 ‘뉴스행세’를 했던 게 사실입니다.

당시 ‘카더라 통신’은 야당을 음해할 목적으로 정보기관에서 만들어 퍼뜨린 것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당연히 “아무, 아무가 뇌물을 먹었다더라,” 아니면 “당 간부 아무개의 여자관계…”를 폭로하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대중들이란 누군가로부터 한마디 들었다하면 무조건 받아들이고 바로 옮기지 않으면 못 배기는 것이 속성인지라 소문은 살이 붙고 돌고 돌아 또 다른 소문이 되어 사회를 어지럽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정치 후진국 일수록, 순진한 국민들일수록, 집권자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 정해진 공식인 것입니다.

한 수 더 뜬 노회(老獪)한 권력자들은 언론을 앞세워 민심을 회유하는 일이 능사(能事)였습니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 언론이 앞장서 거짓말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던 못된 행태를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을 가리켜 “단군이래의 성군”이라거나 1980년대 전두환 소장이 실권을 잡자 “민족의 태양이 떠올랐다”고 극존대를 하던 일도 어렵잖게 보았습니다. 그런 찬탄을 아끼지 않던 이들이 중용되어 최고의 영화를 누린 것은 물론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가 맞아 보니 안심해도 된다”고 접종 소감을 밝혔다. /청와대 제공

누군가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이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재력가도 있고 언론인도 있고 학자도 있습니다. 재력가는 자금을 대고 언론인은 대국민 나팔수가 되고 학자는 통치논리를 개발해 봉사합니다. 자연히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거짓말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우리 국민들은 역대 정권의 위정자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거짓말에 속아 왔습니다. 오늘 우리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어제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1948년 정부 수립이후 권력자들은 그때마다 자신의 편의대로 말을 만들고, 약속하고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국민들을 농락해 왔습니다,

거짓말이 어찌 위정자들만의 전유물이겠습니까. 정치인에게서 오염된 거짓말은 국민들에게 물이 옮겨 들기 마련입니다. 친일 행적으로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춘원(春園)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첫째 항목은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라는 것입니다. 뒤에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민족 개조론’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분석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에도 ‘거짓말’은 우리 민족이 고쳐야 할 첫 번째 악습으로 인식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춘원보다 훨씬 먼저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것은 도산 선생이었습니다.

거짓말은 나라를 뒤흔드는 재앙이 됩니다. 그것은 동과서가 다르지 않습니다,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사퇴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은폐한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이 인턴직원 르윈스키와의 성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것도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이든 일반 시민이든 거짓말은 개인은 물론 사회를 병들게 하고 결국은 나라를 망칩니다.

그런데 이번 4월 7일 치러지는 서울, 부산의 보궐 선거는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은 뒷전으로 밀리고 “거짓말 했으니 사퇴하라”는 논쟁만이 두 지역에서 같이 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생방송까지 해가며 공개적으로 팔뚝에 주사를 맞는데 바꿔치기를 했다고 낭설을 퍼뜨리는 해프닝을 보면서 “야, 아무리 불신 시대라 해도 이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심한 것이 아닌가, 통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고는 해도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갈리고, 좌우로 갈려 사분오열되어 있다 해도 거짓말은 지양해야 할 악폐(惡弊)에 다름 아닙니다.

거짓말은 안 됩니다. 가족이 사랑대신 거짓으로 맺어져 있다면 가정이 평안할 수 없고, 사회 구성원이 거짓으로 남을 속여 개인의 이득을 취한다면 분쟁이 일어나고, 정치가 정도를 버리고 권모와 술수로 대결을 일삼는다면 정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짓말은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건강한 사회는 거짓이 없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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