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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계층만이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다”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읽기 (2)
최용현 | 승인 2015.11.02 09:15

18세기말의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을 상징하는 인권선언문과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문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은 세습 특권층이었던 귀족계급에게는 심장을 꿰뚫는 ‘총칼’과 같은 것이었고, 봉건적 신분질서에 의하여 핍박받던 민중계층에게는 자유가 흘러 넘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게 하는 ‘아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민중조차 귀족계급의 사회경제적․정치적 특권과 특혜를 당연시 하고 국가는 그런 귀족의 것이라고 인식하던 프랑스의 구체제에서, 오히려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민중계층만이 프랑스의 전부이자 프랑스의 온전한 국민이 될 수 있으며, 귀족계급은 민중계층이 갖지 못한 불평등한 지위와 특권을 가졌기에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없고 오히려 프랑스 국민의 적(敵)에 불과하다는 성직자 시에예스(Emmanuel-Joseph Sieyès, 1748∼1836)의 혁명적 발상은, 그러한 총칼과 아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습니다.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국민의회가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성직자 시에예스, 최고의 ‘총칼’이자 ‘아편’을 만들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시에예스의 주장이나 프랑스 인권선언문, 미국 독립선언문은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주장과 선언처럼, 적어도 백인 성인남성들은 혁명 이후, 모든 분야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아무런 차별 없이 동등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까요?   
 
영국의 청교도․명예혁명, 미국 독립전쟁과 건국, 프랑스 대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을 우파처럼 자유주의 혁명으로 이해하든, 좌파처럼 부르주아 혁명으로 이해하든, 아니면 수정주의자들처럼 자유주의와 부르주아는 단지 그 결과일 뿐이라고 이해하든, 이러한 근대 시민혁명 과정에서 성장하여 그 혁명의 과실(果實)을 최종적으로 전유(專有)한 자들은, 근대 자유주의적 엘리트들과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점에는 모두들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근대 시민혁명을 전후하여 등장한 이들 근대의 새로운 지배층들의 새로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만든 근대의 정치와 사회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요?

그들 근대 엘리트들은 1) 모든 백인 남성(그들은 항상 ‘모든 인간’이라고 선언하지만, 각론에서는 항상 여성, 노예, 유색인종은 제외되었습니다. 근대에는 이들도 백인 남성과 동등한 독립적 인격체라는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은 자연적으로(혹은 천부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며, 사회적으로도 그러한 존재로 취급되어야 하고, 2) 이러한 시민의 자연적․사회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치권력은 시민의 대표에 의하여 견제와 제한을 받아야 하되, 3) 다만 여기서의 시민의 대표는 단지 상징적․의제적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모든 시민의 실질적 참여와 동등한 기회 부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4) 나아가 오히려 정치적 참여와 기회에서 차별 내지 제한을 두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며 정의에 보다 부합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 2)가 사회적 요청으로 자연적․사회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권력의 범위와 기능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신념이라면, 3) 4)는 정치적 요청으로 국가권력을 누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성적 차원의 문제라고 할 것이고, 전자가 자유주의적 차원의 문제라면, 후자는 민주주의적 차원의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가끔씩 위 양자가 혼돈되기도 하고 실제 자유주의 원리에 기인한 사상․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이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것처럼 서로 혼융되기도 하지만, 양자는 명백히 구별되어지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적인 그러나 反민주주의적인

민주주의의 기본 신념은 모든 인간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또한 그렇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정치적 평등’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대의 새로운 지배층들의 후자와 같은 인식은 명백히 ‘反민주적’입니다. 전자는 자연적․사회적(신분적) 평등을 주장하지만, 후자는 정치적 불평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히 이율배반적입니다. 자연적․사회적 평등이 정치적 평등(민주주의)으로 연계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정의에 부합할 것입니다.

근대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이를 어떻게 정당화하였을까요? 그들은 이러한 모순 내지 이율배반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교사들에게 의존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바탕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훌륭한 인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소수의 엘리트들, 즉 위대한 교사들이 말하는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갖춘 엘리트들이 정치를 전담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엘리트들을 ‘자연귀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연(natural)’은 중세의 ‘세습’귀족과 대비되는 말입니다. 그들은 중세의 귀족들을 몰아냈지만, '귀족'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들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나 봅니다.

그들이 빌린 것은 위대한 교사들의 이상적 정의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위대한 교사들이 그러한 反민주적․엘리트주의적 정치를 만들기 위하여 구상한 정치제도와 질서도 빌려왔습니다. 그들은 국가내에서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여 국가의 안위에 중대한 관심이 있거나 상당한 세금을 납부하여 국가에 기여하는 부유한 시민들만 정치적 권리를 갖고 정치적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정의 관념을 바탕으로, 인민들로부터 분출하는 정치참여 욕구(민주주의)를 억누르고 기만하기 위하여, 엘리트들만이 대표와 정치적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선거에 의한 대의제도를 창안하고, 부유층만이 선거․피선거권을 갖는 선거제도를 법제화하였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선언으로 시작한 혁명은, ‘부유한 자’는 귀족과 동등하게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으로 귀착되었습니다. 강력한 물리력을 독점하고 든든한 사회경제적 배후를 가진 귀족계급에 대항하기 위하여 근대 엘리트들은 민중계급을 혁명전선에 동원하였지만, 혁명 이후 자신들만의 정치권력과 사회경제적 지배권을 위하여 민중계급을 배제하고 억압하고 학살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민중을 기만하는 것이고, 혁명의 결과를 탈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만과 탈취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시에예스입니다.

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시에예스, 근대혁명의 기만과 탈취의 상징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출간되었던,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킨 대표적 소책자 중 하나였던 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철학자가 진실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가 너무 멀리 나아가는 것을 비난하지 말라. 그의 직무는 ‘목적지’(따옴표 강조는 필자)를 알려주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목적지에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한다……그와 반대로 행정가의 의무는 문제점들의 성격에 따라 그 추진 방법을 연구하고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철학자가 목적지에 있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행정가가 목적지를 보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시에예스는 혁명 이전에 이미, 정치적 격변을 선동하고 그 격변을 주도하는 실천적 철학자가 되고, 격변 이후에는 새로운 체제와 질서의 수립을 주도하는 정치적 행정가도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리고 나중에 보지만 실제 그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단순한 권력과 출세에 대한 욕망만은 아닙니다. 그가 ‘목적지’라고 지칭한 것처럼 그는 궁극적인 정치적 이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혁명 이전에 상상하였던, 그리고 혁명 이후에 실제 그가 제도화하였던 ‘목적지’는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그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는, 귀족계급의 심장을 꿰뚫는 ‘총칼’처럼, 구체제의 특권층이었던 귀족계급에 대한 조롱․야유․비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조롱․야유․비난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 뿐입니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혈통과 세습에 의한 귀족 지위의 전승, 귀족만이 정치적 대표가 되고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있다는 법규과 관례, 귀족의 면세특권 규정, 처벌에서의 사실상의 귀족의 특혜 따위입니다. 그러한 외형상의 특권과 특혜의 원천이 되는 ‘부(富)’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플라톤 이래 모든 사상가들은 부 혹은 재산이 권력과 권위의 원천이 되고, 인간 사회 갈등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의 힘은 귀족 신분만큼 눈에 명백히 띄지 않지만, 신분과 마찬가지로 세습되고, 신분에 따른 특권과 특혜 이상으로 막강한 사회경제적 지배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시에예스에 의하면, 눈에 보이는 봉건 인습적인 특권과 특혜만 갖고 있지 않다면, 귀족보다 더 많은 재산과 더 큰 경제적 지배력을 가졌거나 귀족의 명목적인 지위보다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상인․수공업자․부르주아일지라도, 그들은 절대다수의 무산자계급과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제3신분으로 분류될 뿐입니다. 

그가 신분을 능가하는 재산의 이러한 부정적 힘에 대하여 무지하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는 재산이라는 것이 귀족의 봉건적 특권에 기여할 여지도 있지만 “재산의 영향력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는 재산의 과다와 그에 따른 권력의 차이는 응당 자연과 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선천적 능력과 후천적 능력에 의하여, 다소간 유리한 우연들에 의하여, 융성한 운명과 보다 풍성한 일거리가 증가시켜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만 자신의 재산을 부풀리고, 또 법적인 지위를 벗어남이 없이, 자신의 취향에 가장 적합하고 욕망에 가장 어울리는 행복을 마음 속으로 꾸며보고 키워가는 것은 법률이라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다. 법률은 모든 시민의 공통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각 시민의 권리행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기 전까지는 가능한 모든 범위내에서 각 시민을 보호한다.

그는 재산의 이러한 부정적 힘에 대하여 무지하였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목적지는 재산이 지배하는 세상, 즉 귀족을 대신하여 새로이 사회경제적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던 상인․수공업자․부르주아들에게 재산축적과 착취의 자유를 무한히 허용하는 사회경제질서였던 것입니다. 

누가 제3신분의 대표가 될 수 있나

시에예스는 눈에 보이는 특권을 가진 귀족을 제외한, 공통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제3신분은 하나의 완벽한 국민이고, 그러한 제3신분의 대표만이 전 국민의 대표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 제3신분의 대표가 될 수 있을까요? 그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때때로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정치적 권리를 갖고 정치적 대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외침의 유효 범위는 정치적 특권의 지속을 주장하는 귀족을 비난할 때까지만입니다. 시에예스는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애매모호하게, 지적 엘리트와 사회경제적 지배층만이 제3신분의 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영역에서든 한계가 없는 자유나 권리는 있을 수 없다. 모든 국가에서 법률은 일정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누구도 선거권자나 피선거권자가 될 수 없다……유랑인이나 거지에게 인민의 정치적 신임을 부담시킬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하다.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모든 사람과 하인, 귀화하지 않은 외국인이 전체 국민의 대표자들에 끼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까? 따라서 정치적 자유에도 공민적 자유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

제3신분 중에서 자유로운 계층을 고려해보자. 나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일종의 여유로움으로 자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교양을 함양할 수 있고 마침내 공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계층을 자유로운 계층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계층은 여타 인민의 이익과 다른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자유로운 계층은 모든 점에서 전체 국민의 훌륭한 대표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교육 받았고, 정직하고 품위 있는 시민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혁명 이후 시에예스는 이러한 은밀한 생각을 실천에 옮깁니다. 헌법학계에서 ‘헌법학의 아버지’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법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탁월한 지적 능력이 여기서 십분 발휘됩니다. 혁명이후 선거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시민을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으로 구분하여 능동적 시민에게만 선거․피선거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최소한 3일치의 노동임금에 상당하는 직접세를 납부하지 못하는 절반에 가까운 민중계층이 수동적 시민으로 분류되어 일체의 선거․피선거권을 박탈당하였고, 선거 자체도 3개의 단계를 거치도록 하여 상위 단계에는 더 높은 납세 능력을 부과하였고, 의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그보다 훨씬 높은 납세 능력을 부과하여 가난한 이들이 의원이 될 수 있을 길을 원천 봉쇄하였습니다. 심지어 가난한 이들이 무기를 갖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여 국민 방위대의 입대 자격도 재산이 있는 능동적 시민에 한정하였습니다.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것은 유럽대륙과 미국 모두 동일하였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신분’ 대신 ‘재산’이 지배하는 세상, 즉 귀족을 대신하여 새로이 사회경제적 지배자로 등장한 상인․수공업자․부르주아들이 ‘정치’마저 지배하는 체제였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나폴레옹의 대관식.

혁명을 기만하고 탈취한 시에예스, 혁명을 뒤엎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라는 희망으로 민중들은 혁명에 참여하였지만, 종국에 부유층만이 정치적으로 귀족과 동등하게 되었고, 귀족을 대신한 상인․수공업자․부르주아에 의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착취 메커니즘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귀족을 대신하여 엘리트들과 부유층들이 정치적 지배자로 올랐을 뿐입니다. 혁명에 참여하고 동원되었던 민중계층은 여전히 정치적 피지배 신민(臣民)이었고, 여전히 사회경제적 착취의 대상에 불과하였습니다. 이것이 시에예스의 ‘목적지’였습니다.

그러나 혁명과 민중은 그가 의도한대로 그가 주도한 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시에예스 등 프랑스의 근대 엘리트들과 사회경제적 지배층은 이제 혁명은 끝났다고 선언하였지만, 배신당하고 도둑질당하고 지배하는 주인만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은 민중은 다시 봉기를 하고, 파리코뮌(여기서는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전 후 임시로 수립된 역사적으로 유명한 민중들의 반란정부가 아니라, 1792년 의회에 맞서 대안 정부 역할을 했던 혁명기의 파리코뮌을 말합니다)이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서 보듯, 근대 지배층의 정치경제는 언제라도 뒤엎어질 정도로 위태롭기만 하였습니다.

혁명의 변덕과 민중의 각성에 대한 두려움, 안정적이고 견고한 엘리트들과 사회경제적 지배층에 의한 통치체제에 대한 욕망이 시에예스로 하여금 나폴레옹을 끌어들여 혁명을 뒤엎게 만든 것입니다. 근대 정치엘리트들과 부르주아계급에게 정치는 오직 그들만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정치로 한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와 민중은 오히려 독재자보다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시에예스는 삼부회 소집에 동의하였던 귀족계급이 이를 기화로 서서히 목소리를 높여가는 제3신분을 보고는 황급히 이를 차단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자, 그리고 대귀족으로부터 차별받던 중소귀족들이 대귀족을 비난하고 제3신분을 편드는 척 하며 제3신분을 대표하는 대표자가 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자, 이렇게 비난합니다. 

자기들의 특권을 그렇게 열렬히 옹호하며, 제3신분이 이 영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그렇게 신속하게 차단하는 이러한 특권 신분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특권 신분들은 우리가 환상을 품고 있는 쇄신을 자기들은 위한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항상 불행하기만 한 인민을 그들의 귀족 정치의 확립과 확장을 위한 맹목적인 도구로 사용하기만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것은 평등으로 가져가기를 대단히 열망하며, 그래서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들보다 하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동일한 원칙을 보게 되면 철학자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지긋지긋한 것이 된다.

로베스피에르, 그는 공포정치 시대를 열었지만, 모든 성인남성의 동등한 선거권과 피선거권 제도를 수립하는 등 누구보다도 민주주의자였다.

귀족을 닮은 시에예스, 인간은 닮은 돼지

시에예스가 혁명 이전에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하였던 이러한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귀족의 모습은, 혁명 이후의 시에예스 자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시에예스의 논리와 행보는 이율배반적입니다.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며 불평등한 특권을 가진 자는 프랑스 국민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정치적 불평등을 당연시 하고 부유층에게만 온당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불평등한 정치적 특권을 가진 부유층은 프랑스의 국민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농장의 돼지들은 인간의 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한 농장을 만들자며 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선동하여, 폭군이었던 인간 주인을 쫓아내고 동물들이 주인인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돼지들은 새로운 농장의 지배자가 되어, 이전의 인간과 똑같은 억압과 착취의 체제를 만들어냈습니다. 호화스런 저택에서 이웃 인간들과 파티를 하다가 만취하여 아귀다툼을 벌이는 돼지들을, 창밖에서 훔쳐보던 농장의 나머지 동물들이 본 진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창밖에 있는 동물들은 돼지를 보았다가 인간을 보았다. 또 인간을 보았다가 돼지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돼지를 보았다가 인간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중

최용현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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