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수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의 명절 설날,
숱한 수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축제입니다.
모두가 즐거운 축제가 되려면―

한 가족이라도 주소가 다르면 5인 이상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1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올 설 명절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입니다. 좀체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가 불러 온 2021년 대한민국 설 풍속도입니다.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2대 명절의 하나인 설날은 19세기 말 양력(陽曆)이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까지만 해도 한해를 시작하면서 만백성이 함께 즐기던 범민족축제였습니다.

설날의 유래는 멀리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신라 비처(毗處)왕 때인 488년 정월 초하룻날 설을 쇠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설 명절은 150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민족의 전통문화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를 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겠습니다.

설날은 한 해를 끝내고 다시 한해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설다,’ ‘낯설다,’ ‘삼가다’등 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자로는 원단(元旦), 세수(歲首), 신일(愼日)등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설날 아침에는 온 가족이 한집에 모여 조상에 차례(茶禮)를 지내고 온갖 음식을 실컷 먹은 뒤 성묘(省墓)를 하고 부모, 일가친척, 이웃어른들을 찾아 새해 인사로 절을 하고 세배 돈을 받는 것이 고유한 풍속입니다. 또 설빔이라 하여 새로 장만한 옷을 입고 남녀노소가 마당에 모여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민속놀이를 하면서 모두 함께 하루를 즐겼습니다. 사람들은 이날 설 떡국을 먹고 하루를 보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민족의 명절 설날은 불행하게도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제 이름마저 빼앗긴 채 숱한 박해와 핍박을 당해 왔습니다. 고종황제 때인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역법(曆法)을 바꿔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설날의 수난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음력은 구시대의 유물로 낙인 찍혀 달력에는 양력 날자 밑의 자그마한 보조 활자로 밀려 났고 양력 1월 1일은 신정(新正)으로,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은 이름조차 구정(舊正)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는 일찍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이 쓰는 양력을 따라 하는데서 생긴 호칭이었지만 수난은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일제의 조선 문화 말살정책으로 본격적인 탄압으로 바뀝니다. 일제(日帝)는 철저히 양력설을 강요했고 진짜 설날은 국민들이 쇠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딱한 것은 일제로부터 독립이 되고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설에 대한 탄압은 40여년이나 계속됐다는 사실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음력설을 쇠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는 해괴한 논리로 이중과세(二重過歲) 금지를 내세워 1949년 신정(新正) 3일 연휴를 법제화하여 공무원들에게 양력설을 강요했고 박정희정부 또한 설날을 공휴일에서 아예 제외시켜 학생들을 강제로 등교시키는가 하면 공장도 쉬지 못하게 하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공직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정을 쇨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은 죄나 짓는 것처럼 눈치를 살피며 음력설을 쇠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공 정권 들어와 전두환 정부는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설날 하루를 공휴일로 선포했고 1989년 노태우정부 들어와 비로소 ‘설날’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고 정식 공휴일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긴 세월 제 나라에서 이름마저 잃어 버렸던 설날은 온갖 박해와 고초 속에서도 끊질 긴 생명력으로 94년 만에 다시 정식 명절로 복권이 된 것입니다. 국민의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군사정권으로서 설날의 회생은 민심을 다독이는 데는 안성맞춤으로 좋은 메뉴였던 것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총칼로 정권을 탈취해 뒷날 옥고(獄苦)마저 치렀지만 1945년부터 37년 동안 국민들을 속박해 온 야간통행금지 철폐와 설날을 부활시킨 그 공은 평가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간통행금지란 1945년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와 밤 시간에 일반의 통행을 금지시킨 것을 시작으로 1982년까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아주 몹쓸 제도였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의 민족의 명절 설날, 설날이 되면 고속도로마다 귀성 차량들이 줄을 잇는다./도로공사충북본부

지금 전국의 고속도로는 예년 같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귀성 차량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고향 방문 자제를 권고하고 있음에도 2000만명의 국민이 설을 쇠기 위해 길을 나섰다고 하니 전통이란 그 무엇도 막지 못하는 참으로 끈질긴 존재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게 있습니다. 온 종일 공중을 날던 새들도 해가 지면 둥지를 찾아 들고 산과 들을 헤매던 크고 작은 짐승들도 제 굴로 돌아가듯, 인간들 역시 때가 되면 자신을 낳아 준 고향산천, 부모형제, 혈육들을 찾아 가는 것 역시 동물적 본능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 전 같으면 지금 전국 곳곳 고향집에는 오랜만에 만난 부모 형제, 자식들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정담으로 꽃을 피울 시간입니다. 춘하추동 낯선 타향에서 고된 생활에 부대끼다 돌아 온 이들의 화기 넘치는 모습은 아침드라마 ‘인간극장’의 정겨운 장면 그대로입니다. 본래 정에 약한 한국인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 고향에 가지도 말고, 여럿이 마주 앉지도 말라하니 그것 참, 코로나가 원망스럽기 짝아 없습니다.

그나저나 코로나19로 설분위기가 반쪽이 된 차제에 명절 문화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제까지는 전통이라면 무조건 따라하는 게 도리이고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명절 한번 쇠려면 주부들이 겪는 노고가 엄청나다는 사실은 자타가 인정하는 폐습입니다. 명절이 가까이 오면 주부들은 노이로제를 넘어 공포감마저 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명절 뒤에 이혼 건수가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입니다.

제수 준비하랴, 손님 접대하랴, 뒤처리 하랴, 그 노고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이나 풍습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21세기 현실에 맞는 새로운 명절 문화를 조성해야 합니다. 즐거운 명절을 온 가족이 심신의 부담 없이 다 같이 즐기는 것이 축제의 기본 취지일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오늘 그것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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