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
새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세계 평화와 한·미관계의
돈독한 발전을 기대합니다―

2021년 1월 20일 전 세계의 시선이 일제히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로 쏠렸습니다. 이날은 미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는 조 바이든(Joe Biden·78) 제46대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는 날입니다.

오늘 날 전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없을 만큼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초강대 국가인 만큼 모든 시선이 워싱턴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미국은 232년 만에 마흔 여섯 번 째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2017년 “아메리카, 퍼스트!”를 아이들 동요 부르듯 연호하며 대통령직에 올랐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한 채 바이든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는 몽니를 부리며 전임 대통령들이 모두 함께한 취임식 참석도 거부하고 심술궂은 뒷모습을 보이면서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권력의 종말이 냉엄하고 허망한 것임을 미처 몰랐던 듯합니다.

미국의 역사가들은 몇 해에 한 번씩 대통령직을 지낸 사람들의 업적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통령 평전’인 셈인데 책이름은 ‘대통령들 (The presidents)’입니다.

2017년 91명의 대통령학 연구자들과 대통령직 전문 관찰자들은 대통령 리더십에 관한 10개항의 자질에 대하여 질문하여 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이들이 선정한 상위 10명은 ①링컨 ②워싱턴 ③프랭클린 루즈벨트 ④테오도르 루즈벨트 ⑤아이젠하워 ⑥트르만 ⑦제퍼슨 ⑧케네디 ⑨레이건 ⑩린든 존슨 순입니다.

그런데 그 여러 인물가운데 단연 1위는 링컨이었습니다. 링컨은 위기관리 리더십, 아젠다(의제) 설정, 공정성 추구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첫 손가락에 꼽혔습니다.

1809년 2월12일 켄터키주의 하젠빌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링컨은 8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책읽기를 좋아해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고 세상을 배웠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점원, 막노동, 선원, 측량사, 프로레슬러 등을 경험했으며 열심히 독학을 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주의원과 연방하원의원에 한차례씩 당선했으나 잇따른 사업 실패와 두 차례의 상원의원 낙선 등 산전수전,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집념 끝에 186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드디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켄터키 시골의 이름 없는 소년이 독학으로 세상을 익히고 배워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그의 나이 51세 였습니다.

하지만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6일 뒤인 1865년 4월 14일 밤 워싱턴의 포드극장에 연극 관람을 갔다가 남군 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의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암살 당 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재임기간은 1861년3월부터 1865년 4월 15일까지 4년이었습니다.

미국 사우스 다코다주에 위치한 러시모어 산 화강암 조각상.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시어도어 루즈벨트(26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등 대통령 4인의 거대한 얼굴이 새겨져 있다. 18m의 높이로 조각된 이들 대통령은 각각 미국 건국, 정치철학, 미국의 보존, 영토 확장과 국가수호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 석상은 거츤 버글럼의 지휘하에 1927년 작업이 시작되어 1941년에 완성되었는데 매년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링컨을 얘기하려면 게티즈버그 연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진 사흘 동안의 치열한 전투에서 숨진 병사를 위한 국립묘지 헌정식에 참석했는데 이날 연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중의 하나이자 에이브러햄 링컨의 가장 위대한 연설로 꼽힙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세구절의 명문장은 그 뒤 전 세계인의 인용구가 되어 오늘까지 전해 져 오며 애용되고 있습니다.

링컨의 가장 큰 공로는 분열된 미국을 남북전쟁으로 통합하여 하나의 미국으로 만들었으며 흑인노예해방을 선언해 사실상 현대적의미의 통합된 나라 미국을 만드는데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그의 노예해방 선언이야말로 인류사의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F·케네디는 1917년 5월 29일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라인의 가톨릭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1940년 하버드대에서 수학하고 2차 대전 중에는 해군에 입대해 태평양에서 참전했습니다. 1946년 민주당소속으로 하원의원에 출마해 세 차례 연속 당선 됐으며 1952년, 58년, 두 차례 상원의원에 당선됨으로서 정계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의회에서 각광을 받던 케네디는 이윽고 1960년 민주당후보로 공화당의 닉슨후보를 누르고 제35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의 나이 43세. 미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습니다. 그가 취임식에서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는 명연설은 전 미국인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케네디가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것은 1961년 1월 20일부터 1963년 11월 22일까지 불과 2년 10개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케네디는 뉴프론티어(새로운 개척자)정신, 흑인민권운동, 쿠바미사일 위기, 서베를린 방문 등을 통해 미국인들을 열광시켰습니다.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대 진영으로 갈려 냉전을 벌이던 당시, 젊고 신선한 케네디의 등장은 미국은 물론 서방 세계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1962년 10월 14일 소련의 SS-4탄도미사일을 쿠바 건설현장으로 수송하던 소련 화물선을 공해상에서 막아 되돌려 보낸 일은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소련을 굴복시킨 초대형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는 케네디와 후르시쵸프의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한국에서 마저 전군에 비상이 걸릴 정도로 위기일발의 위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결과는 소련이 화물선을 철수시킴으로써 미국에 승리를 안겨주었고 케네디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으며 미국인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였습니다. 케네디는 이듬해인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 주 댈러스 시내에서 부인 재클린 여사와 함께 오픈카에 나란히 앉아 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건너 편 빌딩에서 날아 온 괴한 오스월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의 나이 46세. 케네디가 대통령직에 있었던 기간은 1961년 1월 20일부터 암살당한 1963년 11월까지 2년 10개월이었습니다. 케네디의 죽음으로 미국인들은 희망을 잃었고 오스월드는 왜, 총격을 가했는지,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지, 설만 무성한 채 사건의 진상은 역사의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된 워싱턴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로 삼엄했습니다. 축제가 되었어야 할 대통령 취임식을 무장 군인과 경찰의 철통 경비 속에 진행하는 삼엄한 모습은 일찍이 볼 수 없던 미국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일성으로 “우리는 돌아왔다”면서 ‘미국인의 단합’을 역설했습니다. 선거로 갈려 분열된 나라를 다시 하나로 묶는 일이야말로 새 대통령의 과제임이 명백합니다. 바이든의 첫 번째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지구상의 200개가 넘는 인종이 모여 가꿔 온 미국은 ‘신이 만든 나라’라고 할 만큼 전 세계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바라건대 바이든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세계 평화는 물론 한·미관계가 더욱 돈독히 발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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