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종주국?

―각종 사건이 시한폭탄처럼
위기를 예고하고 있는 오늘,
뜬금없는 한·중 김치논쟁에 
우리는 과연 큰소리를
칠 수 있을까요―

아, 참으로 소란합니다. 한해가 저무는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에 사그라들기는 커녕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날마다 확진자가 늘어나는 코로나19. 공수처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간의 폭언과 고함.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위원회를 놓고 빚어진 폭풍전야의 긴장감. 이 시각 대한민국은 시한폭탄의 째깍대는 그것처럼 위기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수능을 치른 43만 명의 입시생들이 이 대학, 저 대학을 숨 가쁘게 오고 가며 합·불합격의 비정한 갈림길 앞에 애를 태웁니다.

한 뿌리인 법무부와 검찰이 싸우고, 검찰 안에서 검찰과 검찰이 싸우고 이명박·박근혜 실정(失政)에 대한 사과를 놓고 야당 안에서 구성원들이 싸웁니다. 온갖 파열음이 온통 나라를 뒤 흔들어 놓는 상황에 뒷조사를 당한 판사들이 대표회의를 열고, 월성원전 관련 산자부 간부들이 구속됩니다.

지금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자욱한 안개 같은 불안감은 그야말로 역대급. 민심을 수렴하여 갈등을 조정해야할 여야는 정치 대신 정쟁으로 날을 샙니다. 이 위중한 판국에 고병원성 조류(鳥類)독감까지 엄습해 이미 닭과 오리 300만 마리가 살 처분돼 매몰되고 있으니 아닌 게 아니라 설상가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희대의 미성년 성폭행범 조두순의 만기출소에 따른 주민들의 두려움 또한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외가 소란한 때를 맞춰 한국과 중국 간에 뜬금없는 김치논쟁이 벌어져 그러잖아도 짜증나는 일상에 스트레스를 더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중국김치가 국제 김치시장의 기준이 됐다”며 “한국은 굴욕을 당했다”고 보도한 것이 발단입니다.

중국은 지난 달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김치제조방식에 대한 국제승인을 받았다면서 한국의 비위를 건드린 것입니다. 당연히 한국의 언론이 들고 일어나 “무슨 소리냐”고 반박에 나서고 한·중 양국의 애국적 기자들의 논쟁이 가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ISO는 제품과 서비스 교류를 원활하게하기 위해 1947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165개국이 가입돼 있는 단체입니다.

한국김치는 이미 지난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국제 표준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이 국제 표준으로 등록된 김치는 염장 채소인 ‘쓰찬파오차이(四川泡菜)’로 한국의 김치와는 형태가 다른 식품입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식 김치와 중국식 김치를 통틀어 파오차이라고 부른다고는 합니다. 파오차이는 우리 김치와는 전혀 다른 서양의 피클과 비슷한 것입니다.

역사상 김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000년전 중국의 시가집 ‘시경(詩經)’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밭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서 저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하늘의 복을 받는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저(菹)’란 바로 김치를 말합니다. 한자의 저(菹)는 곧 ‘김치 저림’을 뜻하는 글자인데 ‘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 가면서 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지(漬)’라고 하였습니다. 고려의 문신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치 담그기를 ‘염지(鹽漬)’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가 물에 담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김치가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 온 건 삼국시대 때로 여겨지지만 문헌은 찾을 수 없고 고려 때에 와서야 비로소 기록이 보일뿐입니다.

헌정사상 초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윤총장은 10일 징계위원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NEWSIS

우리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고추가 전래된 것은 1600년대 초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613년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은 고추가 일본에서 건너와 재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1715년 ‘산림경제’에 고추를 남초(南椒)라고 하여 문헌상에 최초로 재배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600년대 말엽, 김치 가운데 고추를 쓴 것은 하나도 없고 무·배추·고사리·청대콩 등의 김치와 소금에 절인 무 뿌리를 묽은 소금물에 담근 동침(凍沈·동치미)이 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나라의 김치는 과거 지방에 따라, 그리고 각 가정에 따라 그 형태가 실로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게 되고 물자의 유통이 빨라진데다 텔레비전 등 매스컴의 영향으로 각 지역의 독특한 김치는 지역성을 잃었고 조리법이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지방에 따른 특색은 고춧가루의 사용량과 젓갈의 종류에 따라 맛이 각기 다릅니다.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는 고춧가루를 적게 쓰는 백김치·보쌈김치·동치미 등이 유명하며, 호남지방은 매운 김치, 영남지방은 짠 김치가 특색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원조(元祖)니, 종주국(宗主國)이니 하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번 한·중 김치 논쟁도 따지고 보면 서로가 종주국이라는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해마다 위생 상태가 문제가 되는 중국산 김치가 왜 문제일까. 상해(上海)에 체재하고 있는 한국 학자 한 사람에게 “왜 중국은 그런 불량 식품을 수출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 김치, 누가 만드는지 아십니까? 한국에서 온 업자가 창고 같은 곳을 빌려 적당히 만들어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역시나….” 낯이 뜨거웠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은 2017년 김치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4728만달러(520억800만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김치의 35%가 외국에서 수입되는데 그 수입 김치의 99%는 중국에서 온다고 하니 아닌 게 아니라 김치종주국 굴욕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닐 성 싶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9년 김치 수입량은 30만6050톤으로 2018년 29만 742톤에 이어 1년 만에 또 다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2009년 수입량 14만8125톤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수입김치가 중국산인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저가의 중국산 김치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입으로는 김치종주국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자국민들이 먹을 것도 제 손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국에서 수입을 해다 먹을 정도라면 ‘굴욕’이란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억울할 건 없습니다. 지금 전국의 수백만 음식점에서 식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김치가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 아십니까. 중국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직접 김치를 담그는 일이 번거로울뿐더러 경비도 더 들기 때문입니다.

반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종주국이니, 원조니 근거도 없는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맛좋은 식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 알맞게 익은 김치를 더 이상 맛이 변하지 않게 하는 제조기술을 개발해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종주국이라면서 수출을 하기는커녕 제 나라 국민이 먹는 김치마저 수입해 오는 이런 사고방식으로 남들이 뭐라 한다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 국민들만이 김치를 먹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구 13억7000만 중국인들도 김치를 먹고 1억2600만 일본인들도 형태만 다를 뿐 김치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국력에는 국방력도 중요하고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 이런 일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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