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는 까닭은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나.
즐기기 위함인가, 취하기 위함인가.
‘누구는 백약의 으뜸이라 하고 
누구는 만병의 근원이라 하네.
코로나여 물러가라. 에라, 만수!―

1960년대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한국에 와 있던 젊은 미국인이 자신이 느낀 한국인의 술 문화를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데 참으로 핑계가 많다”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술을 마시는 것이 신기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술이 떨어지면 안주가 남았으니, 술 한 주전자 더 가져 오시오”하며 술을 시키고, “안주가 떨어지면 술이 남았으니 안주 좀 더 가져오시오”하고 계속 구실을 달아 술자리를 이어간다”고 우리 술꾼들의 음주문화를 꼬집은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한 잔 하는데도 이런 저런 이유가 따릅니다. 기쁜 일 이 있으면 기뻐서 한잔,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서한 잔, 화나는 일이 있으면 홧김에 한 잔, 좋은 일이 생기면 좋아서 또 한잔, 출출하면 출출해서 한잔, 이래 한잔, 저래 한잔 습관처럼 술을 마십니다.

지난 연초 코로나19가 들어 온 이래 일부나마 우리 국민들의 음주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직장에서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삼삼오오 음식점으로 몰려가 벌이던 술자리가 줄어들자 곧장 집으로 들어가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는 ‘혼 술’, ‘홈 술’ 문화가 새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부터 한국인들은 술은 여럿이 어울려 서로 잔을 돌려가며 왁자지껄 마시는 군음(群飮)습관이 관행이었는데 이제 그것을 못하게 되니 습관이 바뀌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와 서양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그 본질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면서 술을 마시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 빨리 술을 마십니다. 서양 사람들은 분위기 좋은 카페나 바에서 남녀가 함께 정담을 나누면서 즐겁게 술을 마시는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남성들끼리 집단으로 마시는 것이 그들과 다릅니다. 근년에 와서 대유행을 하고 있는 폭탄주(爆彈酒)문화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음주문화의 하나입니다.

중국의 옛 시에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노인이 취하는 까닭은 술에 있지 아니하다”는 뜻인데 글의 출전은 멀리 1천여 년 전 송(宋)나라로 거슬러 올라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사람이었던 구양수(歐陽脩)의 글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유래합니다.

저주(滁州)의 태수(太守)로 있던 구양수는 지천(智遷)이라는 스님이 자신을 위해 서남쪽 낭야산에 정자를 지어 주었는데 정자의 이름을 취옹정이라 짓고 자신의 호 또한 취옹이라 하였습니다. 태수는 가끔 가까운 이들과 정자에 모여 술을 마시곤 했는데 일행 중에 나이도 가장 많아 술을 조금만 마셔도 바로 취하곤 해 애를 먹었습니다.

그가 역작 ‘취옹정기’를 지은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 재호산수지간야(在乎山水之間也) 산수지락(山水之樂) 득지심이우지주야(得之心而寓之酒也)― 술을 마시는 것은 술에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산수를 감상하기 위한 것으로서, 술기운을 빌려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속으로 느끼며 즐겁게 한다는 뜻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어느덧 겨울이 눈앞에 와있다.억새군락이 유명한 경주 무장산에 젊은이들이 찾아 와 사진을 찍고 있다. /경주=Newsis

애주가 중에는 “인류의 발명 중에 가장 위대한 발명은 술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술이야 말로 기나긴 세월 동서고금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슬픈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술의 기원을 9000년 전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전설이 있고 보면 그 오랜 기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술로 하여 웃고 울었는지는 상상으로 짐작이 되긴 합니다.

술은 적당히만 잘 마시면 몸과 정신에 이로울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의서에도 ‘적량음주(適量飮酒)는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하였습니다. “적당히만 마신다면 백가지 약 가운데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적당한 양을 넘어 과음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불경에는 술에 관한 이런 경고가 나옵니다. 초측 인탄주(人呑酒), 차측 주탄주(酒呑酒), 후측 주탄인(酒呑人).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세속이 아닌 청정한 사찰에서 스님들이 술은 마시지도 않을 터인즉슨 왜 경서에 술의 폐해를 적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신도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짐작은 됩니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그야말로 애주가 였습니다. 그는 ‘음주팔선인(飮酒八仙人)’에서 ―한 말의 술에서 시 백편을 짓고(斗酒詩百篇·두주시백편) 장안의 저잣거리 술집에서 잠을 자네(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天子呼來不上船·천자호래불상선) 스스로 술 취한 신선이라 부르네 (自稱臣是酒中仙·자칭신시주중선)―라고 술을 즐기며 시를 썼습니다.

또 술이라면 이백과 시로 쌍벽을 이룬 두보가 있습니다. 이백과 술친구였던 두보는 시성(詩聖)소리를 듣긴 했으나 여기 저기 관복을 잡혀 외상 술값이 널려 있었을 정도로 애주가였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그 유명한 시가 바로 작품 ‘곡강(曲江)’중 한 구절입니다. ―조정에서 일이 끝나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매일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온다(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기), 외상술값은 가는 곳마다 있고(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인생이 칠십을 살기 어려운데 무엇을 걱정하는가.(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물러가야 다시 도시가 살아나고 골목상권이 활기를 되찾아 옛날처럼 음식점에 주당들이 몰려들어 소주잔을 부딪치며 “위하여!”를 외칠 날이 돌아 와야 하겠습니다.

추적추적 늦가을 가을비가 땅을 적십니다. 자연은 그처럼 때맞춰 대지의 생명이 있는 것들을 위해 제 역할을 합니다. 바야흐로 시절은 만추(晩秋)이나 겨울의 시작인 입동을 지나 첫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이 22일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을 맞이합니다. 이때면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고 음산한 날씨는 겨울이 왔음을 알립니다. 이제 앞으로 두서너 달은 추위를 견뎌야 하겠습니다. 바라노니 제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국가 사회가 편안해 국민 개개인이 아무 탈 없이 겨울을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술을 즐기는 애주가들을 위한 이런 시도 있습니다.

―슬퍼하지 말라. 백 년 동안 천 번을 취하리라(百年莫惜千回醉·백년막석천회취).

한 잔술에 능히 만고의 시름을 씻으리니(一盞能消萬古愁·일잔능소만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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