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갑시다”

―민주주의의 모범국 미국,
그 나라가 추태를 보입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간데없고 
외나무다리에 선 권력.
그 끝이 허망합니다―

 

미국에서 서부개척이 한창 이던 1800년대 중반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라는 전설적인 총잡이가 있었습니다. 21살에 죽을 때까지 그의 총에 희생된 사람은 모두 21명. 서부 사에 전해 오는 최고의 살인 기록입니다.

1859년 뉴욕에서 출생한 그는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어머니를 따라 멀리 남부 뉴멕시코로 이사했는데 마을 불량배가 어머니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분개하여 흉기로 그를 찔러 죽임으로써 복수를 합니다. 당시 빌리의 나이 12세. 그의 화려한 살인 시리즈 첫 번 째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카우보이가 된 빌리는 그때마다 총싸움 경력을 쌓아가면서 점점 살인기술자가 되어 일약 서부에 그 명성을 날립니다. 하지만 그 역시 죗 값을 피하지는 못하고 젊은 나이에 총탄을 맞고 최후를 마칩니다.

1950~60년대 국내 극장가에서 가장 인기를 끈 영화는 단연 서부활극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먼지를 일구며 광야를 내 달리면서 통쾌하게 악당을 처치하는 주인공이야말로 그대로 히어로(Hero)가 되어 관객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과 인간애를 소재로 한 서부극은 보안관이나 판사와 같은 법의 수호자들이 은행이나 열차 강도, 힘없는 주민들을 착취해 재산을 쌓은 악당들과의 대결을 벌여 마지막에 이들을 일망타진 하는 것이 정해진 줄거리입니다.

미국 문화는 서부영화를 통해 그렇게 먼저 한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풍전등화가 된 나라를 구해주었기에 우리 국민들에게 미국은 바로 정의의 수호자로 평화의 사도였고 은인이었습니다. 그런 국민 정서에 악을 물리치는 서부영화가 박수를 받고 인기를 누린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정통서부활극에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1대1로 대결을 할 때는 일정한 거리에서 마주보고 순간적으로 총을 뽑아 상대를 쓰러뜨리는 룰(규칙) 말입니다. 정정당당 누가 먼저 총을 뽑아 쏘아 맞추느냐 이지, 절대로 뒤에서 쏘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신사적인 대결이었던 셈입니다. 그런 장면을 보고 관객들은 “역시 미국 사람들은 신사적이구나”하고 감탄을 하며 무릎을 쳤고 “싸워도 우리와는 다르다”고 부러워했습니다. 당시엔 신사의 나라하면 영국이 첫 손가락이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영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이후 하나에서 열까지 미국식 교육, 미국식 문화를 그대로 받아 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미국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우상(偶像)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세계 제일의 강대국인데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었기에 많은 국민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그곳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것을 배워 오는 것은 미덕이 되었습니다.

1952년 한국전쟁을 취재하러 왔던 영국 ‘더 타임’지의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보도했습니다. 1948년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이 임기를 목전에 두고 재선이 불안해지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군경을 동원해 강제로 국회의원들을 연행하고 구속하는 것을 본 기자가 본사에 타전한 내용입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더 퀸 극장에서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공중보건 전문가와 과학자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든 마스크를 써 달라”라고 강조했다. 윌밍턴=AP/뉴시스

그 뒤 ‘쓰레기통 장미꽃’은 군사 독재가 계속된 1990년대 초까지 해외 언론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깎아 내릴 때 약방에 감초 쓰듯 인용하는 불후의 명문이 돼 왔습니다.

이번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68년 전 그 기억을 떠올리는 까닭은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를 전해준 모범국인 미국이 부정선거 시비로 험악하게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미국은 과거 부정 선거로 얼룩졌던 1950, 60, 70, 80년대의 한국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집권당이 부정을 저지르고 야당이 항의투쟁을 했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거꾸로 권력을 가진 현직 대통령이 몽니를 부리고 투쟁을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으니 좀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미국이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것을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미국 선거에는 1억5980만 명이 투표에 참여해 120년 만의 최고투표율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의 인구가 3억3013만 명이라니 전 국민의 절반이 투표를 한 셈입니다. 그 중 7,568만 명(50,6%)이 바이든을, 7,126만 명(47,6%)이 트럼프에게 표를 찍었습니다.

부정선거라며 개표를 중단하라는 트럼프후보의 심술이 이어지자 ABC, CBS, NBC 등 방송들은 “거짓말만 한다”며 생중계를 중단하는가 하면 CNN은 “태양 아래 발버둥 치는 뚱뚱한 거북이”라고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는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 스웨덴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17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참, 웃긴다. 트럼프는 자신의 분노조절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친구와 좋은 고전영화를 보러가라”며 “진정해요, 도널드, 진정!”이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지난 해 12월 미국의 타임지에 툰베리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을 두고 “참, 웃긴다. 친구와 좋은 고전 영화나 보러가라”고 빈정댄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습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내 발로 걸어서 백악관을 나가느냐, 아니면 군대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가느냐 중 하나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무소불위, 권력의 끝이 허망합니다.

조 바이든 당선인은 “분열된 미국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겠다”면서 “국민 통합을 이뤄 미국정신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또 “미국을 세계에서 다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과거 세 차례나 한국을 방문한 친한파입니다. 상원의원이던 1998년, 그리고 2001년 8월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했는데 이때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넥타이를 바꿔 맸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기간 중 국내 언론에 기고문을 보내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구호인 “Katchi Kapshida”라고 영어 철자로 ‘같이 갑시다’를 써 한·미간의 친선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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