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읽기

근대를 상징하는 이념은 개인의 자유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자유주의’입니다. 흔히들 이러한 자유주의와 그것의 정치적 구현물인 대의제도․권력분립․국가권력의 범위와 기능의 제한 등에 관한 ‘원리’를 최초로 밝힌 사상가는 로크(John Locke, 1632∼1704)이고, 이를 ‘제도’로써 보다 체계화한 사상가는 몽테스키외(Montesquieu,1689∼1755)라고 합니다. 그에 비유하여, 자유주의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초보적 원리를 최초로 밝힌 사상가가 로크라고 한다면, 그것의 기본적 체계와 운용을 제대로 풀어낸 사람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라고 할 것입니다.

스미스를 대표하는 단어가 무엇인가 물으면, 모두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의 경제적 조화와 번영은 군주의 의도된 명령이나 의회의 적극적 개입과 같은 보이는 손에 의하여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시장과 가격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조정 기재에 의하여 달성된다는 스미스의 기본 논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위 단어는, 1천 여 쪽이 넘는 분량인 그의 대표적 저서인 ≪국부론≫에서는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습게 표현하면,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은 ‘보이지 않는 손’

우리는 스미스를 경제학의 창시자로, 그의 ≪국부론≫을 경제학의 효시라고 합니다. ≪국부론≫이 출간된 1776년은 공교롭게도 미국의 독립선언이 있었던 해입니다. 그 해는 경제학 독립의 해이고, ≪국부론≫은 그 독립선언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경제를 논한 사상가나 경제이론가가 없었을까요?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철학자들도 경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고, 스미스 직전에도 많은 중상주의, 중농주의를 주장한 이론가와 정책가들이 있었는데, 왜 경제학이 스미스의 ≪국부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까요? 그것은 그 무렵부터 시민들에게 경제적 자유가 주어졌다는 점과 스미스가 그렇게 새롭게 변한 시대에 그 경제사회에 작용하는 근본 원리를 철저히 논파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조상과 부친의 신분과 직업에 의하여 자신이 어떠한 일에 종사할 것이며 무엇을 얼마만큼 소유할 수 있는지 이미 정하여져 있었고, 또한 어떠한 품목을 얼마만큼 생산하고 그것을 누구와 교환하고 그 거래에서 얼마만큼의 이익을 올려도 되는지 등 거의 모든 경제문제에 대하여 기존의 관습이나 국왕, 귀족의 명령에 의하여 그 해답이 정하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경제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운영되어지는 것인가라는 고차원적 질문부터 내일은 물건들이 제대로 팔릴까라는 현실적 불안까지 경제에 대한 각종의 고민은 필요치 않았고, 그러하기에 하나의 학문으로서 경제학이 필요치 않았던 것입니다. 경제학사를 가장 쉽고 재미있게 서술한 것으로 평가받는 ≪세속의 철학자들≫의 저자인 하일브로너(Robert L. Heilbroner)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세계(중세)에는 토지와 노동과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시장이 없었다. 시장이 없었기에 - 물론 다채로운 시골시장과 박람회는 있었지만 - 사회는 지방적 수준의 명령과 관습으로 움직였다. 영주들은 명령을 내렸고 생산은 그에 따라 증가하기도 감소하기도 했다. 명령이 없을 경우 사람들의 생활은 고정된 궤도를 따랐다. 애덤 스미스가 1400년 이전에 살았다면 그도 정치경제학 이론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중세사회를 서로 묶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는 뚫고 들어가야 할 아무런 신비도 없었고 질서와 계획을 발견하기 위해 파고들어야 할 장막도 없었다……책을 펴고 보는 시험처럼 장원과 교회 및 도시의 법률과 평생토록 변함없는 관습 속에 세계에 대한 모든 설명이 있는데, 누가 수요공급이나 비용이나 가치라는 추상법칙을 찾아 헤매겠는가?

이렇듯 기존의 신분제적 관행이나 종교적 혹은 세속적 권위체의 명령으로 경제가 운용되던 중세시대가 끝나고, 사적소유와 자유거래가 허용되는 상업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이를 그 근본부터 시작하여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 하였습니다. 이에 부응한 것이 ≪국부론≫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개념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을 보여주다

그렇다면 그가 완성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떠한 것일까요? 그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였던 근대 상업경제사회의 근본원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유주의’를 제시합니다. 근대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만인의 평등․개인의 사상과 행동의 자유․개인의 자율과 책임․외부적 규제의 배제 등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스미스도 이러한 자유주의의 신봉자였습니다. 그의 ≪국부론≫은 이러한 근대 자유주의의 ‘경제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치고전을 이야기 하면서도 경제고전인 그의 ≪국부론≫을 읽어보아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이기심에 호소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일 뿐이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의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촉진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그는 다만 자신의 이익만을 의도할 뿐이며, 이러한 경우 그는 많은 다른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손’(따옴표 강조는 필자)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추진하게 되는 셈이다. 그것이 그의 의도 속에 없었다는 것이 사회에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실제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여기가 딱 한번 등장한다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스미스의 사고는 기존의 전통적 사고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사상가들은 개인의 이기심과 무절제함, 무계획성은 사회적 부조화와 혼란을 낳기에, 그것은 공적 권위나 명령(보이는 손)에 의하여 억압되고 조화를 이루도록 강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은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는 인간의 행복 실현을 위한 필수적 요소이며 동시에 비효율과 불합리를 제거하는 요소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각자의 이기심과 이해관계는 자유로운 시장을 통한 경쟁과 가격기구(보이지 않는 손)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조화와 공공의 이익을 낳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스미스를 이를 ‘자연적 혹은 완전한 자유체계’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증진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생각은 스미스의 독창적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18세기 초반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꿀벌의 우화≫에서 “모든 부분이 악으로 가득 찼지만 전체는 낙원이었다……각자의 죄들이 어우러져 그들을 위대하게 했다”며, 이기심과 탐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공동체에 더 많은 행복을 가져옴을 우회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중농주의자들은 그러한 사고를 경제에 접목시켰습니다. 우리가 지금 흔히 사용하는 'laissez faire(레자 페레, 자유방임)’은 그들의 유명한 정책구호였습니다.

국가의 부(富)를 보여주다

≪국부론≫의 원제는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규명(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입니다. 이처럼 ≪국부론≫의 본래 주요목적은 앞서와 같은 근대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부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증대시키는 방법이 무엇이고, 국가는 그러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규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국부의 원천은 ‘중상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무역 차액이나 식민지 착취로 벌어들인 귀금속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비록 전회에 살펴본 로크가 근대적 노동과 소유 관념을 새롭게 규명하였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중상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중상주의자들의 이론대로라면, 신대륙 착취의 선봉에 섰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식민지에서 과다 유입된 귀금속으로 인하여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회복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또한 그는 국부의 원천을 유통이나 귀금속이 아닌 ‘생산’에서 찾는 프랑스 ‘중농주의’의 주장은 옳지만, ‘농업’에서만 국부의 원천을 찾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습니다. 당시 상업적 열기로 가득하였던 영국 출신의 스미스가, 농업이 주축이었던 프랑스의 이론가들의 농업 편향적인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토지에서 일하는 노동만이 유일하게 생산적인 노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을 지칭)의 주장은 너무 편협하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부가 화폐라는 소비할 수 없는 귀금속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노동에 의해 해마다 생산되는 소비 가능한 물품으로 구성된다고 점에서, 그리고 완전한 자유는 이런 매년의 생산을 가능한 최대로 하기 위한 유일한 효과적 수단이라고 이해하는 점에서, 이 학설은 모든 점에서 정당하다.

스미스는 가치의 원천은 농업 노동을 비롯한 모든 생산적 노동이며, 국부는 그 노동 생산물의 총합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국부론≫의 맨 처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여기서 현대의 우리가 사회전체가 생산한 생산물의 양으로 국민총생산(GNP)을 계산하여 그 나라의 부유함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의 원형을 보게 됩니다.

모든 국민이 해마다 하는 노동은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필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원천이며, 이 생필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 연간 노동의 직접적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물품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 생산물 또는 그 생산물로 구입하는 물품과 그것을 소비하는 인구의 비율에 따라, 그 국민은 필요한 모든 필수품과 편의품을 충분히 공급받기도 하고 부족하게 공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비율은 어떤 국민에게 있어서도 두가지 사정에 의하여 규제된다. 첫째로 국민의 노동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때의 솜씨․숙련도․판단력에 의해, 둘째는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 수의 비율에 의해 규제된다.

결국 국부는 생산에 의하여, 생산은 노동의 양(“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과 질(“노동에서의 솜씨․숙련도․판단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의 질 즉 노동생산성인데, 스미스는 그 폭발적 증대를 낳은 것이 바로 ‘분업’이라고 보고, ≪국부론≫에서 나중에 유명하게 된 ‘핀 제조업’ 사례를 언급한 것입니다. 다소 진부하고 식상한 사례로 보이지만,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인류역사에 남을 만한 전혀 새롭고 혁명적인 문장 자체였습니다.

오늘날 핀 제조업이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작업 전체가 하나의 독자적 작업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작업으로 분할되어 있고, 그 분할된 작업 또한 하나의 독자적 작업으로 되어 있다. 한 사람은 철사를 잡아 늘리고, 다음 사람은 그것을 곧게 펴고, 세 번째 사람은 그것을 자르고, 네 번째 사람은 그것을 뾰족하게 갈고, 다섯 번째 사람은……이런 식으로 핀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약 18개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나는 이런 공정을 열 사람이 나눠 하는 작은 공장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한 사람이……하루에 평균 4,800개의 핀을 생산했다. 만약 이 모든 공정을 혼자 한다면……하루에 핀 20개는커녕 단 1개도 만들기 힘들 것이다.  

국가, 당신은 우리를 그냥 자유롭도록 내버려두면 돼

그렇다면 국가는 이러한 국부의 증진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여기서 앞서의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철학과 그에 기반한 전혀 새로운 경제정책이 등장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그는 ‘자연적 혹은 완전한 자유체계’, 즉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쟁체제가 최대의 사회적 효율과 균형을 낳고,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케 한다는 경제철학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국가의 올바른 경제정책은 그러한 개인들의 사적소유와 자유롭고 경쟁적 거래를 보장하고 보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는 노동자의 이동의 자유나 동종업자의 경쟁을 막는 길드제․도제제․빈민정주제와 같은 봉건적 유제를 철폐하고, 역으로 국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독점체제를 유지하거나 특정 부문의 왜곡적․기형적 성장을 낳는 중상주의적 식민지 무역독점․수입억제․수출장려․임금억제 정책 등도 폐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한정된다고 할 것입니다.

자연적 자유체계에 의하면, 주권자가 유의해야 할 의무는 3가지뿐인데……첫째는 다른 사회의 폭력과 침입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 둘째는……엄정한 사법제도를 확립해야 할 의무, 셋째는 개인적으로는 그 설립과 유지가 이득이 되지 않는 특정한 공공사업과 특정한 공공기관을 설립해야 하는 의무……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자연적 자유체계를 유지하고 보조하는 수준의 국방, 사법, 최소한의 공공사업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대 자유주의의 국가론인 ‘야경국가(夜警國家)’ 이론입니다. 다만 야경국가는 스미스나 근대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한 개념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독일의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인 라살레(Ferdinand Lassalle)가 근대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비판하며 사용한 것입니다.

≪국부론≫에는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훨씬 풍부한 경제학적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경제행위자인 제조업자․노동자․상인들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이후 자본주의 경제학의 핵심적 주제가 되는, 노동가치․노동소외․화폐수량설․차액지대․이윤율저하 등 수많은 테제들이 등장합니다. 경제학사야말로 ‘≪국부론≫의 각주(角柱)’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특히 분업의 찬양자였던 스미스의 다음과 같은 정반대의 우려는, 그로부터 1세기 후의 정치경제학자인 마르크스의 노동소외론을 연상케 합니다.

분업이 진전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노동은 한두 가지의 극히 단순한 작업으로 한정된다. 그러나 그 결과란 것이 거의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것이나 다름없는 한두 가지의 단순작업을 수행하는데 전 생애를 보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독창성을 시험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연히 그러한 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대의 우둔함과 무지함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경제학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 책들.

그의 예리한 눈, 그러나 그가 볼 수 없었던 것

이렇듯 ≪국부론≫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와 그 작동원리에 대하여 설명하면서도, 그 책에는 정작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고요? 자본주의는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어느 시대부터 자본주의 시대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이는 14-5세기경 출현한 상업시대를 그 시작점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17-8세기경 중세의 농노가 임금노동자로 전환한 공장제 수공업(manufacture, 매뉴팩처)시대를, 어떤 이는 18세기후반 기계와 대규모 공장이 도입되는 산업혁명 이후를 그 시작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중상주의는 처음의 시기를 대변하고, 스미스는 (그가 살았던 18세기 중반은 산업혁명 이전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 시기를 대변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주된 관심사항은 시장의 원리이지 자본의 원리가 아니었고, 그의 주된 분석대상은 소규모 생산․교환 중심의 시장체제였지, 기계화․공장화로 인한 대규모 생산과 대규모 노동자계급으로 상징되는 본격적인 자본주의체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의 양극화와 갈등․노동의 소외와 궁핍화․자본의 과잉에 따른 주기적 공황 등의 문제에 대한 분석을 통한 자본주의의 본질과 문제점, 모순에 대한 규명 책임은 그 다음 세대인 리카도, 맬더스, 밀, 마르크스 등에게 넘겨진 것입니다.

스미스는 경제학의 시조로 추앙받지만, 그는 누구에게서 경제학을 배운 적도 없고, 평생 경제학을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전공하고 가르친 것은 도덕철학(요즘으로 치면,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었습니다. 도덕, 정치철학자로서의 스미스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애정은 무미건조하고 냉혹한 경제원리를 규명하는 그의 ≪국부론≫에도 녹아 있습니다. 그는 시민의 사상과 활동의 자유를 옹호하고,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주장하고, 식민지 주민들의 권리와 식민지 독립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들은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급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자는 아닙니다. 모든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는 민주주의 사상은 그의 사후에 등장한 이념입니다. 또한 위와 같은 진보성은 그의 정치적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근대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분석을 통하여, 위와 같은 급진적․진보적 정책이 경제적 효율과 균형에 더욱 부합하고 공공의 이익을 더욱 증진시킬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경제학자’였다고 할 것입니다.

1980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대선 승리 후 자축 파티에서 공화당원들은 모두 애덤 스미스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부규제 철폐와 공공부문의 민영화, 노동통제 및 노동유연성 강화를 주장하는 그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자들에게,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고 국가의 경제개입을 반대한 스미스는 그들의 사상적 할아버지쯤 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도 보편적 현상입니다. 조중동 보수언론과 재벌 산하의 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은 연일 행정의 과잉규제와 공공부문의 비효율 등을 거론하며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고용증진과 성장을 명분으로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 언론인, 연구원, 정치인도 아마 스미스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싶을 것입니다.

이근식 교수의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를 설명하고 있는(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는) 책들은 시중에 몇권 있지만, 그중에 이 책이 가장 돋보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스미스란?

그러나 그들의 목에 자랑스레 매어진 스미스는, 오히려 그들의 목을 죄고 싶을 것입니다. 그들의 존경대로, 스미스가 정부 규제를 반대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정부 규제를 반대한 근본 목적은 효율적인 다수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스미스가 진정으로 반대했던 것은 ‘정부 규제’ 그 자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을 지배하거나 왜곡할 만큼의 규모나 권력을 가진 소수의 ‘보이는 손’을 반대한 것입니다. 그 ‘보이는 손’이 봉건제 유제와 같이 과거의 특권에 의한 것이건, 중상주의처럼 국가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건, 그와 달리 심지어 자유경쟁을 통하여 자생적으로 성립하였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어떠할까요? 외면상 고용증진과 성장을 내세웠지만 그 시작의 실제 의도는 대부분 재벌과 대기업의 사업팽창을 위한 규제완화와 민영화이었고, 그 결과도 대부분 재벌과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가속화시키고,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재벌이나 서구의 대기업, 국제금융자본과 같은 시장의 우월적 지배자가 있다면, 스미스는 규제완화나 민영화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를 규제하고 그 통제를 강화하라고 주문하였을 것입니다. 당대의 자유주의라는 급진적 이념을 경제학적으로 재현한 스미스가, 현대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인 신자유주의자들의 목에 매여 있는 것 자체가 역사적 아이러니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예리한 정치감각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활동하던 당시는 지금과 같은 대규모 기업체나 국제적 상업․금융자본이 존재하지 않았던, 소규모 생산․판매업 수준이었음에도, 그는 상인과 제조업자들을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재벌이나 국제 상업․금융자본처럼 초과이윤을 취하고 우월적 시장지배자가 되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정치인들은 외면상으로는 고용 증진 등을 명목으로 그들과 담합하여 그들에게 특혜를 주고자 법규를 손질하고 규제를 조정하려고 한다며 그들을 항상 의심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인 철학을 소유하고 냉철한 정치감각까지 갖춘 진정한 ‘정치경제학자’였던 것입니다.

동종업자들은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해서조차 모이는 일이 드물지만, 만약에 그들이 모인다면 그들의 대화는 사회를 기만하거나 가격인상을 담합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상업상의 어떤 새로운 법률이나 규제에 대해 상인이나 제조업자에게서 나오는 제안은 언제나 큰 경계심을 가지고, 가장 면밀하게, 가장 의심 깊은 주의를 기울여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가 아니면 결코 채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 이해가 결코 공공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거나 통상은 공중을 속이고 억압하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하는 계층의 사람들, 그리고 또한 지금껏 그렇게 해온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조업자들이 우리에 대해 가진 독점권을 조금이라도 축소하려 시도하는 것은, 이제는 군대를 감축하려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이 독점이 어떠한 특정부류의 사람들을 급증시키자, 그들은 정부에 있어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상비군처럼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 입법부를 위협하고 있다. 이 독점 강화를 추구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의원은 실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명성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수와 부에 의해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큰 명성과 영향력을 획득할 것이다. 이에 반해 만일 그가 그들에게 반대한다면, 그는 욕설, 비난, 인신공격, 때로는 격분하고 실망한 독점주의자들의 거친 폭발에서 생기는 진정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입법부는 이런 새로운 종류의 독점을 확립하거나, 이미 확립되어 있는 독점을 더욱 확대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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