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매카시 망령

 

“21세기 백주대낮에
웬 공산주의 타령인가?
60년 전의 '매카시 망령'이
이 땅에 온 것인가?
제발 '색깔론'은 이제 그만

 

한국에서 6ˑ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때아닌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이 재현된 듯 한 회오리바람이 토네이도가 되어 몰아친 것입니다. 이른바 ‘매카시 광풍(狂風)’입니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며 4년동안 이어진 파동은 공화당 소속의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에 의해 촉발됩니다.

매카시는 1950년 2월 공화당의 당원집회에서 “지금 국무부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폭탄선언을 하고는 “나는 그 리스트를 갖고 있다”며 “미국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사건은 시작됩니다.

미국사회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으며 엄청난 충격에 휩싸입니다. 신문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매카시의 발언을 연일 대서특필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부어댔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로 의심 받은 수만 명의 각계 인사들이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공무원, 예술인, 작가, 교육자, 노조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당했습니다.

‘매카시광풍’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이 공산주의의 맹주가 되고 중국이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공산화 되면서 미국 안에 일고 있던 ‘적색공포’와 맞물려 급속한 확산을 불러왔습니다.

사건은 공화당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민주당 소속 의원들마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관계없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매카시에 동조함으로써 사건은 일방적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일개 무명 정치인에 불과했던 매카시는 경력위조, 명예훼손, 뇌물수수, 음주추태 등 온갖 추문에 연루돼 정치생명이 위태롭던 때라 충격적인 이슈가 없이는 명예를 회복할 수없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공산주의사냥’에 불을 질렀던 것입니다.

이 광풍으로 수백 명이 수감되었으며 1만 2000명이 직업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심지어 동성애자마저 공산주의 혐의자로 몰려 공격대상이 되었고 특히 헐리웃에서도 많은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고되었습니다. 영화배우 찰리 채프린, 극작가 아서 밀러,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등 평소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은 모두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 말고도 대학을 비롯한 교육계, 문화계는 물론 3000여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났습니다.

물론 동조자들도 있었습니다. 뒤에 대통령이 된 영화배우 로널드 레이건,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월트디즈니 등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들로 매카시를 도왔습니다.

조지프 매카시 의원. /백과사전

그러나 ‘매카시광풍’은 그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에서 조차 비판론이 일어나고 사회가 이성을 되찾음으로써 점차 진정이 됐습니다. 드디어 매카시는 상원청문회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고 자신이 극단적 반공주의자라는 사실만을 확인시켰을 뿐 아무런 근거나 증거를 체시하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죄로 풀려났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몇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매카시는 자신이 야기한 이 사건으로 한 때 정계의 유력자가 되는듯 했으나 미국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씻을 수 없는 ‘악명’을 남긴채 1958년 49세로 사망했습니다. 해프닝치고는 너무나 큰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에 ‘매카시 망령’이 다시 나타난 것인가? MBC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이사장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단정한데이어 노무현 전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고이사장은 그에 그치지 않고 김문수전경기지사, 이재오새누리당의원을 가리켜 “전향한 공산주의자”로 평하고 “사법부에도 김일성장학생이 있다”는 말까지 거침 없이 쏟아 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의아합니다. 그렇잖아도 얽히고 설켜 조용한 날이 없는 정치권에 무슨 꿍꿍이속으로 뚱딴지같은 괜한 소리로 분란을 일으키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좌경화 증세가 심해지면 백약이 무효라서 걱정하는 것”이라고 해명인지, 역성인지 편을들고 나서고 있지만 새정치연합의원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공산주의자라 단정 짓다니, 당장 사퇴하라”며 “매카시가 아니라 고카시가 나타났다”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이제 또 한바탕 소란을 치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잖아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정치권이 소용돌이 치는 마당에 공직기관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이 시점에서 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에게 무차별 공산주의 색깔세례를 퍼 붓고 있는지, 그 저의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국민의 선거에 의해 당선되고 임기를 마친 전직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운운하고 엄연한 제1야당의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마구 지껄이는 것을 옳게 볼 수 없습니다. 개인의 소신이라면 개인이 가지고 있으면 될 일이요, 그것도 국정감사장에서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될 극언을 마구 내 뱉는 것은 잘못 돼도 많아 잘못 된 망발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찍은 국민들은 모두 공산주의자에게 투표한 이적행위자들이란 말인가.

같은 민족이라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를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소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거나 체제에 비판적이라고 해서 공산주의자로 몰거나 색깔을 덧씌우는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날 우리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공산주의자는 발본색원, 철저히 가려내되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정치성향이 다르다고 억지로 범법자로 만들어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6ˑ25전쟁을 치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습니까.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그들은 시대를 잘못 만난 죄로 억울하게 죽어 간 것입니다.

이제 나라가 이쯤 되었으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작은 나라에서 네편, 내편으로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편협한 사고라면 경제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사상누각(砂上樓閣)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나라는 편 갈라 싸우지 않고 차별 없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루려면 사회지도층의 그런 분별없고 무책임한 망발을 버려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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