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의 ≪통치론≫ 읽기 (2)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최초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밝힌 것은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통치론≫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치론≫은 근대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최초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밝힌 ‘경제’고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근대 자유주의의 정치적 기본 원리를 규명한 사람이 로크라면, 그러한 자유주의에 그에 합당한 정치제도와 조직 원리에 대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입니다. 그에 비유하여, 근대 자유주의에 합당한 경제이념․경제제도․경제정책․경제관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라고 한다면, 그러한 근대 자유주의적 경제 원리를 최초로 철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은 바로 로크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최초의 근대 경제고전으로서의 ≪통치론≫을 읽는 시간입니다. 그의 이러한 경제철학은 ≪통치론≫중 제5장 소유권 논의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로크의 <<통치론>>, 흔히 <<통치론>>으로 알려진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통치에 관한 두 논문>>입니다. 이는 원래 각기 다른 시기에 쓰여진 두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논문은 "제1 논문 : 로버트 필머 경 및 그 추종자들의 잘못된 원칙과 근거에 대한 지적과 반박", 두번째 논문은 "제2 논문 : 시민 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시론"입니다. 출간될 당시에는 위 두 논문이 모두 실려 있었으나,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에서 출간될때는 제2논문만 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치론≫은 최초의 근대 경제고전?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된 인류의 지성사에서 ‘소유’의 문제만큼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인류의 지성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각주(角柱)에 불과하다는 말과 같이, 소유에 대한 논쟁도 그들에서부터 비롯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유의 문제가 인간 사회의 모든 대립과 갈등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인간들의 욕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대립과 반목으로 인하여 인간 사회가 끈임 없이 분쟁과 갈등을 겪는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정반대입니다. 플라톤은 그 해결책으로(비록 통치계급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적소유가 폐지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이상국가를 주장합니다. 이에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이상국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그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소유욕이 없었다면 가족․부족․ 공동체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며, 문제는 사적소유를 원천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어떻게 적절히 제한하고 통제할 것인가 라는 점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사적소유를 옹호하였지만, 그가 말하는 사적소유는 공동체에 의하여 철저하게 제약되고 결박 지어지는 사적소유였습니다. 이 둘 간의 공적/사적소유 논쟁은 이후에 전개되는 무수한 소유 논쟁의 원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적소유 관념, 즉 공동체적 권위와 필요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 소유 관념은 이후 고․중세를 관통하는 지배적 소유 관념이 됩니다. 예컨대 중세 봉건지주는 자신의 마음대로 영지를 처분하거나 소작민을 농지에서 내쫓을 수는 없었고, 상인도 자기 마음대로 업종을 바꾸거나 가격을 정할 수 없었고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소유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경제활동 모두 공동체의 전통적 관습이나 공적 권위에 의하여 주어진 규율, 또는 공적 필요와 유용성 등에 철저히 복종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공적 권위와 필요에 결박된 소유 관념은 16세기 상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서서히 해체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16세기의 엔클로우저 운동입니다. 유럽에서 모직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하면서 봉건지주들은 무단으로 소작민들을 내쫓고 그 농지에 울타리를 치고(enclosure) 양들을 키웠습니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이를 “양들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봉건지주에게 토지는 이제 더 이상 소작민도 아우르는 공동체적인 장원(莊園)의 근간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이 소유하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상품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었고, 기존의 전통적 관습과 규율에 의하여 어느 정도 보호를 받던 소작민은 하루 아침에 뿌리 뽑힌 무산자(無産者) 계급이 되었던 것입니다.  

17, 8세기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공적 권위와 필요에 결박된 소유 관념은 완전히 폐기되고, 사적소유 관념이 전면적으로 등장합니다. 근대 시민혁명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봉건적 규율과 군주의 절대권력으로부터 사적소유의 보호를 향한 일대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건적 관습과 규율을 받지 않는 사적소유가 철저히 보장되고, 공적 권위나 필요에 의한 제한 예컨대 군주의 조세부과와 징발 등에 의한 사적소유의 제한은 일정한 근거와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는 사고가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상업사회의 도래와 근대 시민혁명으로 이제 새로운 근대적 사적소유 관념이 등장하는 것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로크의 ≪통치론≫입니다.  

태초에 ‘소유’가 있었다

전회에 살펴본 것처럼, 로크는 공동체(사회)와 정치권력(정부)이 있기 이전인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개인들이 있었고, 공동체와 정치권력은 바로 이러한 개인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와 정치권력이 있기 이전에 개인들의 ‘소유’가 있었고, 자신의 소유물을 자유로이 모으고 처분하고 상속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와 정치권력은 이러한 소유와 그와 관련된 자연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사회에 들어가는 커다란 목적은 그들의 재산을 평온하고 안전하게 향유하는 것이며……최고의 권력도 어떤 사람으로부터든 그의 재산의 일부를 그의 동의 없이 취할 수 없다. 재산의 보존이 정부의 목적이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 인간이 사회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인민이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또 당연히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로크가 공적 권위나 필요에 의하여 사적소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로크에게 우선적 가치를 갖는 것은 사적소유입니다. 사적소유가 공적 권위나 필요에 선행하는 가치를 갖는 것이고, 공적 권위나 필요는 사적소유를 보호하는 목적에서 존재가치를 갖는 것이므로, 사적소유를 제한하더라도 보다 고차원적인 사적소유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엄격한 요건과 절차 하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공적 권위․필요 vs 사적소유의 우위관계는 로크에 이르러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태초에 소유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유를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존의 정치사상가들은 소유는 신, 자연 혹은 그 대리자인 군주의 권위에 의하여 정당화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고․중세인들은 소유는 신이나 자연에 의하여 부과된 것이라고 보았고, 홉스와 동시대의 절대주의자들은 그것은 군주에 의하여 부여된 특권이나 묵인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로크가 이들처럼 소유의 정당성의 기초를 신, 자연, 군주로부터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소유는 그것에 선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소유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은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로크의 혁명적 사고를 보게 됩니다.

19세기의 지주의 착취와 탐욕을 풍자한 그림.

최초로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다

로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물건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로, ‘노동’을 내세웁니다. 로크에 의하면, 태초에 신이 이 세상을 인간에게 공유물로 주며 쓸모 있게 사용토록 하였는데, 인간이 숲에서 열매를 따거나 울타리를 치고 경작을 하는 등 이 공유물을 개인적으로 쓸모 있게 사용하고자 자신의 ‘노동’을 가미하면, 그 열매와 토지는 그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이 소유의 근원이라는 로크의 사고는, 이후에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되는 고전경제학과 사회주의경제학의 핵심 전제인 ‘노동가치론'의 원형입니다.

비록 대지와 모든 피조물은 만인의 공유물이지만……그가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 둔 것을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 그럼으로써 그것을 그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서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며,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타인의 공통된 권리가 배제된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소유권의 주된 대상이 대지에서 나오는 과실이나 거기 사는 짐승들이 아니라, 대지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 대지에 대한 소유권도 전자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획득되는 것이 명백하다. 한 인간이 개간하고 파종하고 개량하고 재배하고 그 산물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토지가 그의 소유이다. 

노동이 소유의 근원이 된다는 사고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하여 식상해 보일 정도지요? 그러나 로크 이전에는 누구도 소유를 노동에 근거지울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놀랍게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정치사상가들에게 노동과 소유는 (로크와 정반대로) 오히려 서로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노동은 노예․가사․생계․가난 영역의 단어로서 저급한 동물적 인간계의 언어였고, 반면 소유․재산․여유(노동하지 아니함)는 자율적 인간과 공동체 시민이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재산을 세습 받아 땀 흘려 노동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여유시간이 많아 교양을 제대로 쌓을 수 있는 자만이 이성과 책임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고,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직공도 시민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최선의 국가라면 직공을 시민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공을 시민으로 받아들인 국가라면 우리가 앞서 말한 시민의 탁월함은 모든 시민이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동에서 해방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다……절대적으로 정의로운 이상적 정체를 가진 국가에서는 시민들은 분명 직공이나 상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그런 삶은 천하고 탁월함에 반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되어야 할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서도 안된다. 탁월함의 계발을 위해서도 정치활동을 위해서도 여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직공 집단은 국가에 속하지 않으며, 탁월함을 창출하지 못하는 다른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이상국가의 원칙에서 나온 결론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소유를 물리적 한계가 있는 노동에 연계시키는 로크는 필연적으로 소유의 한계를 인정하게 됩니다. 인간의 노동은 시간적․육체적 한계가 있고, 필요 이상의 노동은 무의미하기에 당연히 소유도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크의 다음의 말은 흡사 열정적 사회주의자를 연상케 할 정도로 놀랍기만 합니다.

만약 대지의 도토리나 다른 과실 등을 주워모으는 것이 그것들에 대한 권리를 준다면, 누구든지 그가 원하는 만큼 많은 양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 하겠다……그러면 신은 우리에게 얼마나 주셨는가? 즐길 수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그것이 썩기 전에 삶에 이득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주셨다. 곧 그가 자신의 노동에 의해 자신의 소유로 확정할 만큼 주셨던 것이다. 그것보다 많은 것은 그의 몫을 넘어서며, 다른 사람의 몫에 속한다……그가 소유하게 된 것들이 적절히 사용되지 않고 상하게 되면, 곧 그가 소비하기 전에 과일이 썩거나 사슴고기가 상하게 되면, 그는 공통의 자연법을 위반한 것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는 이웃의 몫을 침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에게 삶의 편익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질 권리를 결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를 노동에 연계시키고, 필요 이상의 축재(蓄財)는 절․강도행위라는 로크적 관점은, 평생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유산자(有産者)계급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크는 어느 누구보다도 유산자계급 중심의 정치경제를 체계화하고 강조한 사상가입니다. 이런 문제를 로크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그의 노동과 소유에 ‘도덕’은 없다

얼핏 보면, 로크가 ‘땀 흘려 일해서 얻은 것은 그의 것이다’라는 인류의 영원한 도덕률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노동과 소유는 철저히 근대 유럽의 유산자계급의 인식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는 노예․하인․노동자의 노동과 그 노동의 결과물은 그의 것이 아니라, 주인과 고용주의 노동이 되며 그들의 소유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노예나 노동자처럼 누구에게 예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노동과 소유는 로크적 노동과 소유에서 배제됩니다. 로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들의 대지에서 사냥을 하고 열매를 채취하고 있더라도 그들이 (그가 직접 획득한 사냥물과 열매를 넘어) 그 대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근대 유럽적으로 대지를 구분하여 점유하지도 않고 근대 유럽적으로 효율적으로 대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크에게는 근대 유럽의 유산자계급에 합당한 필요와 욕망에 따른 사용과 노고만이 가치가 있는 노동이고, 소유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근대 유럽인 중 누군가가 그곳에 들어가 자신들의 방식대로 대지에 울타리를 치고 이제 이 대지는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선언하면 그때부터 진정한 소유가 시작되는 것이고, 수천년간 그 대지를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였던 인디언들은 이제 남의 소유를 침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총칼로 약탈하다가 이제는 돈을 주고 대지를 매입하겠고 제의하는 근사한 양복을 입은 유럽인들에게, 우매하고 무식한 시애틀(Seattle, ?∼1866) 추장은 ‘대지는 모든 인간의 공유물이며 모든 조상들과의 추억이며 모든 동식물과 소통하는 장이고 인간들은 잠시 그곳에 머물 뿐인데, 어떻게 이를 사고 파냐‘고 폐부를 찌르는 성찰적 화두를 던지지만, 썩은 폐부는 전혀 아픔을 모릅니다. 

프랑스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이러한 로크적 소유 관념을 재미있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그는 로크적 소유는 오히려 인류사회의 악의 근원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음의 풍자를 루소의 소유에 대한 기본 관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루소는 이렇게 풍자를 하면서도, 로크와 마찬가지로 사적소유제도는 인간의 가장 신성한 제도중 하나이며 문명사회의 근간이라고 주장합니다. 근대 유럽인이 인디언들에게 한 것처럼 기만과 강탈, 도둑질로 시작된 소유에게 그 원초의 죄악을 추궁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것입니다. 

한 필지의 대지에 울타리를 치고는 “여기는 이제 내 소유다”라고 선언하면 사람들이 단순하게도 그 말을 믿어버린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 그 사람이야 말로 문명사회의 진정한 창립자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나서서 그 말뚝을 뽑고 도랑을 메워버리며 동료 인간들에게 “이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세요. 대지의 결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대지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라고 외쳤다면, 인류는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등의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애 아테네의 화폐, 동전의 앞면에는 아테네의 상징인 아테나를, 뒷면에는 올빼미와 올리브 가지 등을 새겨 넣었습니다.

‘썩지 않는 물건의 발견’이 ‘탐욕에의 합의’라고?

‘썩지 않을 만큼’이라는 소유의 한계에 대한 족쇄는 너무나 쉽게 풀립니다. 그 족쇄를 푸는 열쇠는 ‘화폐’입니다. 로크는 인간 사회가, 곡식이나 과일처럼 일정기간이 지나면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들을 썩기 전에 타인에게 팔고 대신 그에 상응하는 증표를 받고(교환) 그리고 그 증표로 축재(저장)를 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하고, 그 증표의 수단으로서 화폐를 도입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소유의 도덕적 상한선을 없애기로 인류가 암묵적으로 합의를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에 의하면 귀족과 부유층이 평생을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현실은 전혀 비난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현실은 그들이 자신들만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모두의 합의에 기초한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의하면 오히려 그들과 그러한 현실을 비난하는 무산자계급이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묵시적으로 자발적으로 동의에 의해서 한 인간이 그 자신이 그 생산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땅을 공정하게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잉여생산물을 주고 금과 은을 받음으로써 발견하였고, 그 결과 토지를 불균등하고 불평등하게 소유하는데 합의했다는 점이 확실하다……불평등한 사유제와 같은 사물의 분배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인간이 사회의 경계 밖에서 아무런 협정도 없이 단지 금과 은에 가치를 부여하고 화폐의 사용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소유의 자격에 대해서 말다툼할 이유나 노동이 부여한 소유물의 크기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도 경제학원론 정도는 읽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준별,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 등에 대하여, 정치철학자인 로크가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 다소 놀랍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로크의 독창적 사고가 전혀 아닙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로크와 똑같은 경제학적 인식과 논리적 추론을 하고 있는 정치철학자가 그로부터 무려 2천여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중요한 지식의 토대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버트란트 러셀 교수의 말은 하나도 과장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로크가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을 빌미로 ‘축재’를 아무런 제한도 없이 풀어주어 미친 개처럼 날뛰도록 하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어도 그 미친 개 만큼은 옭아매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만큼 상업적이고 이기적인 그리고 물신(物神, 돈)이 숭배되는 시대, 바로 근대가 질주하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두 가지 용도 모두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 양상은 같지 않다. 한 가지 용도는 물건에 고유한 용도지만, 다른 용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샌들은 신는데도 사용하고 교환하는데도 사용된다. 돈이나 음식을 받고 샌들이 필요한 사람에게 샌들은 주는 사람은 샌들을 샌들로 사용하지만, 그것이 샌들의 고유한 용도는 아니다……물물교환은 모든 재물에 적용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너무 적게, 어떤 사람은 너무 많게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된다……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바로 이 물물교환에서 돈 버는 기술이 생겨났다……화폐가 도입되자, 생필품의 물물교환은 재산획득의 또 다른 형태, 즉 상업으로 발전했다……이런 종류의 재산획득 기술에서 생겨나는 부에는 한계가 없다……따라서 이렇게 보면 모든 부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재산을 획득하는 자들은 모두 자신이 화폐를 무한히 늘리려고 하기 때문이다……이렇듯 재산획득 기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사관리에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에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필요하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교역에 의존하는 후자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고리대금이 가장 심한 증오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지당한 일이다. 그것은 화폐의 본래 기능인 교역과정이 아니라, 화폐 자체에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폐는 교역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이자를 낳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너무나 계급적인, 너무나 反민주적인

로크의 경제철학, 즉 그의 노동-소유 관념은 근대 유럽의 유산자계급의 지위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그들의 끈임 없는 탐욕마저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크의 유산자계급의 경제철학적 정당화는 그들에게 독점적 또는 월등한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것마저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재산(property)’이라는 단어는, (우리는 통상 물질적 재화를 지칭하는데 사용하지만) 생명, 자유, 자산(estate) 3가지를 총괄하는 의미라고 하고, 이 3가지에 대한 권리는 공동체와 정치권력에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자연적 권리에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공동체와 정치권력에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자연적 권리에 ‘자산’을 포함시켰다는 것은, 그 액면 이상의 계급적․反민주적인 함의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로크가 자연적 권리라고 내세우는 것 중 ‘생명’과 ‘자유’는 그 범위와 정도에 있어 개개인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산’의 크기는 개개인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로크의 주장대로 자산을 포함한 자연적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보장해야 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라면, 결국 시민의 사회적․정치적 권리의 크기마저도 그 자산의 크기에 비례하여 정해질 것이고, 그것이 오히려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 됩니다. 이보다 더 유산자계급의 철학적․경제적․사회적․정치적 우위를 옹호하는 이론은 발견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명시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산을 가진 유산자계급만이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가졌다거나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로크가 명시적으로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인민이 그 계급과 자산 소유여부를 불문하고 동등하게 똑같은 정도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가졌다거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실제 근대정치가 유산자계급만이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갖도록 혹은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자들이 더 높은 정치적 지위와 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갖도록 제도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극심한 빈부격차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상파울루의 한 지역.

현대와 로크의 ‘자산(資産)의 정치학’ 

그렇다면 모든 인민들이 그 계급과 자산의 소유여부를 불문하고 동등하게 1구(口) 1표의 권리를 가진 현대의 우리는 이러한 로크적 ‘자산의 정치학’에서 벗어났을까요? 로크적 자산의 정치학은 反민주적이었던 근대의 이야기에 불과할까요?

우리의 1구 1표처럼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조중동의 사주들도 실제 1구 1표를 가졌을 뿐일까요? 그들도 실제적으로 우리와 동등한 정치적 권리와 영향력만을 가졌을 뿐일까요? 우리는 실제 우리와 닮은 대표를 갖고 있는가요? 우리의 대표라는 자들은 가진 자들의 무리에만 계속적으로 충원되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의 정치는 재벌과 보수언론에 편향적 특혜를 주고 그들의 이익과 성향에 포획되어 있지 않은가요? 우리의 정부와 언론은 그러한 편애와 포획을 우리 모두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고 우리를 기만하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의 정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만과 불평등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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