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속에 8월이

―두 달째 계속되는 긴 장마
지금 국민들은 지쳐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국난의 극복이 우선입니다―

일제 강점 시절이던 1925년 여름 우리나라는 역사상 가장 큰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당시 서기를 쓰지 않고 육십갑자로 해를 지칭하였기에 통칭 ‘을축년 장마’ 또는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라고 부릅니다. 홍수는 네 차례에 걸쳐 연속으로 위력을 떨쳐 한반도 전역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첫 번째 홍수는 타이완(臺灣)에서 발생한 태풍이 바다를 거슬러 올라 와 7월 11,12일 중부지방을 휩쓸었습니다. 시간당 3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황해도이남 한강과 금강, 낙동강, 만경강을 범람시켰습니다.

두 번째도 첫 번째처럼 타이완 부근에서 생성된 태풍이 비를 몰고 와 15일부터 4일 동안 누적 강수량 650mm라는 엄청난 폭우를 쏟아 부었는데 한강은 최대 13.59m의 수위를 기록 했고 제방이 무너지고 범람하여 용산 일대가 침수가 되면서 지대가 높은 남대문 앞 까지 물이 올라왔습니다. 이때 400명의 익사자를 냈고 1만2000여 호의 가옥이 유실되었습니다.

세 번째 홍수는 중국 창장(長江·양쯔강)에서 발달한 태풍이 서해를 지나 북쪽의 대동강과 청천강, 압록강을 범람하게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마리아나 제도에서 발생한 태풍이 북상하여 9월 6일 제주도와 목포, 대구를 거쳐 한반도 남부를 관통하고 동해로 빠져 나갔는데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 등이 모조리 범람하였습니다.

7월부터 9월까지 잇따른 네 차례의 홍수로 전국에서 사망 647명, 가옥유실 6000여 호, 붕괴 1만7000여 호, 침수 4만6800여 호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논 3만2000단보, 밭 6만7000단보가 유실되었습니다. 이 홍수로 피해액이 1억300만원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때 한 신문은 “아, 하늘이 조선을 아주 미워하고 저주하여 끝내 저버리려함인가!”라고 탄식조의 기사로 대홍수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당시는 하늘만 바라보고 살 때인지라 기자 또한 그 나름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피해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집중호우로 흙이 떠내려가자 지금의 송파구(松波區)에서 흙속에 묻혀있던 백제의 풍납토성과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발견됨으로써 오늘 날 귀중한 문화유적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또 홍수는 흙속의 영양분을 골고루 섞이게 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홍수는 매년 겪는 연례행사였습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에는 대수(大水), 대우(大雨)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또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기우기청제사(祈雨祈晴祭祀)의 기록에도 한강의 수위 표시인 수표(手標)의 척도가 게재되어있습니다. 이들 자료를 정리하여 편찬한 조선고대관측기록조사보에는 서울과 그 부근의 홍수가 모두 176회에 달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큰비가 자주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적 관측시대로 들어와 대 홍수가 발생한 대표적인 예는 1925년을 비롯해 1948, 1959, 1969, 1972, 1977, 1984년 등입니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그런데 홍수하면 노아의 방주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 신화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다. 세상은 속속들이 너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너는 전나무 배 한척을 만들어라. 배안에 방을 여러 칸 만들고 안과 밖을 역청(瀝靑)으로 칠하여라.”(창세기 6장11-14절)―하고 40일 주야로 비를 퍼부어 세상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성서의 이야기인즉슨 쓰인 대로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싶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 못지않은 것이 중국의 대홍수 기록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의 홍수 소식도 역대 급임이 분명합니다. 외신들은 이미 두 달째 계속 비가 내려 세계 최대 규모의 싼샤(三峽)댐이 범람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160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재민만 5,5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규모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홍수는 비교할 바가 아닌 듯합니다.

사실 중국은 국토(9,59만6,960㎢)로 보나 인구(13억7437만명)로 보나 세계 제일의 대국입니다. 역대 홍수기록을 보면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역사적으로 큰 홍수로 입은 수해 규모는 1위부터 5위까지가 중국입니다. ①1931년 중국대홍수: 400만명 사망 이재민 6천만~1억명. ②1887년 황허(黃河)홍수: 100~200만명 사망. ③ 1938년 황허 홍수 50~100만명 사망. ④ 1975년 황허 홍수. 1975년 태풍 니나의 여파로 댐62개가 연속적으로 붕괴하여 23만 명 사망. ⑤1935년 창장(長江)홍수 14만5000명 사망 등입니다.

중국의 격언에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제왕이 되려면 홍수를 다스리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속담이라고 하겠습니다.

6월 10일 제주도에서 시작된 장마가 남북을 오르내리며 장장 60일이 되도록 위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예년 같으면 6월 하순에 시작돼 7월 하순께 끝났어야하는 장마가 두 달이나 되고 있으니 자연재해도 이쯤 되면 큰 변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겹치기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연초부터 계속돼오는 코로나19가 끝이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 홍수까지 겹쳐 국민들은 너나없이 매우 지쳐 있습니다.

지금 전국에 산사태 위기경보가 심각단계에 들어갔고 9년 만에 한강 홍수주의보도 발효 중입니다. 섬진강 둑이 무너져 마을과 마을이 침수되어 물이 고여 있고 집 잃은 소떼들이 갈 곳을 몰라 물위를 방황하고 주민들이 학교 강당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우 경보가 내려진 판국에 5호 태풍 ‘장미’가 또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더 더욱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피해를 줄지, 걱정이 끝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이럴 때 일수록 하나로 마음을 모으는 국민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의 여야정쟁도 지겹거니와 매스컴의 진영 대결 논쟁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여야 정치권이나, 매스컴이나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자각하고 진영논리로 상대 쪽에 시비를 걸고 공격하는 일을 잠시라도 멈추기를 바랍니다. 홍수도 끝나고 코로나도 물러간 뒤에 다시 싸움을 하더라도 먼저 국난(國難)을 극복하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제 홍수를 잘 이겨내고 복구 작업에 나서서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국민은 위기에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