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 한다

―동양과 서양이 다르듯
남녀 사랑의 문화도 다릅니다.
그들은 '사랑을 사랑한다'는데 
우리는 그 염문을 즐깁니다.
또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돌연한 죽음은 서울 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평소 차분하고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으로 봐서는 천하의 양귀비가 유혹을 한다 해도 곁눈질도 안 할 것 같았는데 마음속에 숨겨 논 여성, 그것도 나이어린 시장실의 여비서가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그것, 참…”입니다.

에마뉴엘 마크롱(1977~ ). 현재 프랑스를 이끌고 있는 25대 대통령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2017년 5월. 전 세계의 관심은 프랑스 건국 이래 39세라는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점과 퍼스트레이디가 될 아내가 무려 스물다섯 살 연상인 64세의 할머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계가 이 범상치 않은 부부관계에 눈이 쏠렸음은 물론입니다. 마크롱의 별난 러브 스토리가 드라마처럼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엘리제궁의 안주인이 된 브리지트 트로뉴(1953~ ). 그녀는 마크롱이 프랑스 북부 아미앵시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문학과 연극을 가르치던 선생님 이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40, 15세. 트로뉴는 남편과 세 자녀가 있었고 그중 맏이는 마크롱과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연극연습을 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마크롱의 부모는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마크롱을 파리의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지만 그는 “반드시 다시 돌아와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결국 트로뉴는 이혼을 하고 마크롱이 29세 되던 해 결혼했습니다. 나이라기보다는 세대를 초월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신문에 자주 등장하곤 했지만 국민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남녀 관계에 의아하리만치 대범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껏 국가정상 부부로서 국내외 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프랑스의 21대 대통령으로 1981년부터 95년까지 14년 동안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오래 집권한 인물입니다. 미테랑에게는 퍼스트레이디 말고 또 한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안 팽조(1943~ ). 미테랑이 팽조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나이 46세로 사회당의 대선 후보였는데 상대는 19세의 여고생이었습니다. 고향 친구의 딸로 27세나 연하였습니다.

미테랑은 당시 레지스탕스(대독저항운동) 동지였던 아내 다니엘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미테랑이 65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퍼스트레이디가 된 다니엘은 “엘리제궁의 인형이 되기 싫다”며 파리 시내에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팽조는 대통령의 정부(情婦)로 숨어 살았습니다. 미테랑은 재임 기간 동안 엘리제궁에서 자지 않고 거의 매일 파리 시내 그녀의 집에서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테랑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팽조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신년 아침엔 다니엘과 새해를 맞았습니다.

팽조가 처음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건 1996년. 퇴임 1년 뒤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뜬 미테랑의 장례식에서 입니다. 팽조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본처인 다니엘과 장례식장에 상복을 입고 나란히 선 것입니다.

박물관 큐레이터로 평생을 일한 팽조는 미테랑과의 관계에 대해 함구했습니다. 그러다 본처 다니엘이 세상을 뜬 뒤인 2016년 비로소 미테랑이 자신에게 보낸 러브레터 1218통을 엮은 책 ‘안에게 쓴 편지’를 출간했습니다. 문필가이자 철학자의 면모를 지닌 한 시대의 거인 미테랑의 편지는 문학적이고 관능적이며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미테랑의 장례식에 참석한 연인들. 왼쪽부터 영부인 다니엘, 그 옆은 아들, 혼외 딸 마자린. 그 뒤쪽 마자린의 어머니이자, 미테랑의 내연녀인 안 팽조. 그 다음 아들./자료사진

“이 작은 책이 당신과 함께 보낸 아름다웠던 여름을 간직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전해주는 메신저가 될 것입니다.” 1962년에 보낸 첫 편지입니다. “당신을 만난 후 위대한 여정이 될 것임을 직감했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팽조. 당신과 함께 있을 때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숨어서 지내야 하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소. 어린 딸이 사랑이란 가혹한 볼모로 평생을 자신의 날개도 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감스럽소.” “당신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이었소.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겠소.” 사망 몇 달 전의 마지막 편지 내용입니다.

미테랑이 58세에 낳은 딸은 마자린 팽조입니다. 철학과 교수이자 작가로 성장한 그녀는 한국과 작품으로 인연이 있습니다. 2006년 서울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영아살해 냉장고 유기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인형의 무덤’을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야 했던 자전적 에세이 ‘함구’에서 “세상은 나의 존재를 거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녀 역시 독립적이었습니다. “아침식사 후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으로 가면 아버지는 차로 엘리제궁으로 갔고 나는 학교로 갔다. 내 출생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소설가는 나의 선택이다. 사람들은 나를 정치적 상속자나 잔재로서가 아닌 내가 창조해 내는 것, 내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평가하길 바란다.”

미테랑 대통령은 1993년 9월14일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여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방문 기간 중 과로가 겹쳐 한때 졸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일선 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할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외규장각 도서는 그 뒤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프랑수아 올랑드(1954~ ). 2012년부터 17년까지 재임한 프랑스의 24대 대통령입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당선 축하연에서 두 명의 여인을 단상으로 불렀습니다. 한 사람은 전 동거녀였고 또 한사람은 새 동거녀였습니다. 전 동거녀인 루아얄에겐 볼에 키스를 했고 새 동거녀 트리에르바일레에게는 입술에 키스를 했습니다.

그가 취임한 지 2년 뒤인 2014년 1월 프랑스 대중지들에는 파파라치가 찍은 대문짝만한 사진이 등장합니다. 헬멧을 쓴 올랑드 대통령이 스쿠터를 몰고 심야에 정부의 집에서 나오는 사진이었습니다. 올랑드는 아무도 모르게 변장을 하고 밀회를 즐기고 나오다 기자들에게 들켰던 것입니다. 상대는 유명한 여배우 줄리 가예였습니다. 올랑드보다 18세 연하인 줄리 가예는 대선 당시 올랑드 후보 광고에 출연했던 여배우였습니다.

프랑스 대통령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를 이어가며 스캔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22대 자크 시라크도, 23대 니콜라 사르코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르코지의 두 번 째 아내는 과거 자신이 주례를 서줬던 신부로 첫 번째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나이를 초월해 사랑을 하고, 사생아를 낳아 키우고, 재임 중에 혼외 여인을 두거나, 이혼하거나 동거녀를 바꾸는 프랑스 대통령들의 러브스토리.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정치인이든 유명인이든 그들의 사생활은 프랑스에서는 거의 정치,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을 뿐 더러 정치적 도덕적 공격 대상도 아닙니다. 직무수행과 사생활은 철저하게 별개로 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언론이나 국민은 대통령의 연애나 밀회가 국가 이익에 관련되지 않고 국민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도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연애할 권리가 있고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흥미위주의 3류 대중지들이 대통령들의 사생활을 폭로해 시민들을 자극하지만 정론지는 그런 기사를 아예 싣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와는 다른 점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불문학자 매릴린 옐롬이 쓴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는 프랑스 작가와 작품 속의 사랑을 분석한 책인데 그의 관점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언제나 사랑에 자유롭고 열중한다. 관습이나 평판,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 쏟는 열광적이고 관능적인 사랑에 익숙하다. 그리고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모든 형태의 사랑을 자신이든 남의 경우든 차별 없이 받아들인다. 나의 연애가 로맨스가 되기 위해서는 남의 부적절한 관계도 로맨스로 봐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옐롬은 그들이 유별난 이유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진정 사랑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사랑한다?

1960년대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35대 대통령 존·F·케네디도 재임 중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밀회를 즐겼던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1990년대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인턴사원 르윈스키와 집무실에서 속칭 ‘지퍼게이트’라는 이상한 짓을 한 것이 세상에 알려져 탄핵의 벼랑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남자는 배꼽아래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사회 통념이 돼 있어 정치판에서의 여자 문제는 관대한 편입니다.

프랑스 대통령들의 스캔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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