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만사라는데

―잘 하면 만사가 되고
잘 못하면 망사가 되는 인사.
좋은 사람을 발탁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마련.
이번 인사는 과연 만사가 될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인사라 함은 인재를 발탁해 자리에 앉혀 일을 하게 함이요, 만사라 함은 만 가지 일, 즉 모든 일을 말함이니 세상일은 사람을 골라 쓰기에 따라 그 성패여부가 달려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명구가 관심을 끄는 것은 국가나 단체, 사회 조직에서 인사가 이루어 질 때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사람이 선택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조직의 명운이 달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을 골라 적재적소에서 일을 하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요, 모자라는 사람을 맞지 않는 자리에 앉히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조선 선조 때 율곡(栗谷) 이이는 현명한 유형의 세 가지 신하를 꼽았습니다. 도덕이 몸에 배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편하게 하며 정도(正道)를 행하는 신하인 대신(大臣), 간절히 나라를 걱정하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정성을 다해 백성을 보호하고 국가를 안정되게 하는 충신(忠臣), 큰일을 하기 에는 미치지 못해도 항상 자기 직분과 능력으로 재능을 다해 능히 관직을 맡는 신하인 간신(幹臣)이 그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조 때 실학자 순암(順菴) 안정복은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이 멀리 해야 할 세 가지 유형의 관리로 세리(勢吏), 능리(能吏), 탐리(貪吏)를 들었습니다.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명리만 좇는 세리, 윗사람을 능숙하게 섬겨 총애를 받고는 재주를 부려 명예를 뽐내는 능리, 백가지 계교로 교묘히 사리(私利)를 취하고 제 몸만 살찌게 하는 탐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왕조시대 치세를 잘해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했던 왕들은 신하들을 잘 골라 썼던 반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불편하게 했던 왕들은 어김없이 신하들을 잘못 써 치세를 망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사의 잘잘못은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사권을 가진 자가 원칙을 따라, 그리고 재능에 맞는 적재적소에서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하는 일이 조직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원칙을 무시하고 혈연, 지연, 학연 등 정실인사를 일삼게 되면 당연히 조직은 흐트러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사권자와 관련된 사람이 사사로이 요직에 발탁되면 ‘낙하산 인사’라고 하고 또 ‘코드인사’ ‘보은인사’, ‘회전문인사’라는 말에 심한 경우 ‘개판인사’라는 험담까지 나오게 됩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간쟁(諫諍)을 좋아하는 신하는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정이든 사회이든 어느 조직이나 직언(直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인사에 있어 인격이 된 사람, 그의 삶에서 먼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깨끗이 살아 온 이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부장관을 비롯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등의 인사를 단행하자 이런 저런 인사 평들이 정가를 달구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인사의 백미(白眉)는 국정원장에 발탁된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 내정자는 한때 ‘호남홀대론’을 앞장서 주장하고 반 문재인 공격에 나섰던 인물인데 그것도 최고의 핵심 요직인 국정원장에 전격 발탁되어 일반의 허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명칭은 바뀌었지만 역대 책임자로는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김종필, 이후락, 전두환 등 당대의 실세들이 조직을 이끌었을 만큼 정권 수호의 핵심 요직이었기에 누가 책임자가 되느냐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시장 3선에,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박원순 시장이 2014년 6월 재선에 성공한 뒤 기자들에게 밝은 얼굴로 2기 시정운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Newspim

익히 알려졌다시피 박 내정자는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매일 아침 공개적으로 비난해 ‘문모닝’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야박하게 굴었던 사람입니다. 문 대통령과 박 내정자 간의 구원(舊怨)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의 몰표를 받아 당선되었지만 김대중 정권 시절의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했고 김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내정자는 검찰 수사에 휘말려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문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 수석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8전당대회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대세론을 앞세운 문대통령과 당권-대권 분리론을 주장한 박 내정자가 대표직을 놓고 격돌했습니다. 막말과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한 가운데 박 내정자는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 친문패권주의를 내 세워 문대통령을 거세게 공격했습니다.

결과는 3.5포인트 차로 문대통령이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습니다. 이때 문대통령에게 각인된 ‘호남 트라우마’는 좀처럼 잊기 어려운 상처가 됐습니다. 박 내정자가 불붙인 ‘호남 홀대론’은 반문 정서를 타고 일파만파로 번지며 새정치민주연합을 분열시켰습니다. 박 내정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 당에 입당해 2016년 총선에 당선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총선 직전 광주를 찾아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으나 호남은 총 28석 중 25석을 국민의 당에 몰아주며 좌절감을 안겼습니다.

2017년 대선 당시 국민의 당 원내대표였던 박 내정자는 오전 공개회의 때마다 문재인 때리기에 앞장섰으나 문대통령 취임이후 우호적 태도로 급선회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첫날인 2017년 5월 10일 국회를 찾은 문대통령에게 “오늘은 굿모닝입니다”라며 10년만의 정권 교체를 축하한 일은 유명한 일화가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박 내정자는 험난한 남북 관계의 격랑 속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잃지 않은 문 대통령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습니다.

국정원장 내정 소식이 공개된 뒤 박 내정자는 문 대통령에게 ‘충성’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페이스 북에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 하겠다”며 “앞으로 내 입에서는 정치의 정(政)자도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처럼 오랜 악연에도 불구하고 문대통령이 박 내정자를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은 험악해진 남북 관계 돌파를 위한 강한 의지와 절박함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누가 뭐래도 박 내정자는 20년 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인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과거의 구원(舊怨)을 잊고 박지원 전 의원을 깜짝 기용함으로서 나름 큰 정치인의 금도를 보여 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번 인사가 만사의 표본이 될지, 천사(千事), 아니 백사(百事)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정치는 생물이요, 종합예술”이라는 명구가 있기에 말입니다.

1000만 수도 서울의 수장인 박원순 시장이 갑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국민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야 곧 밝혀지겠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 한마디로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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