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세상

―연례행사인 장마철
전국에 비가 옵니다.
빗소리는 모든 소리의 으뜸. 
정치는 백년하청이고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해마다 6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어김없이 시작되던 장마가 올해는 웬일로 머뭇머뭇 하더니 늦게 서야 비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각장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여름철에 예외 없이 겪는 장마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동남아와 동아시아에서만 있는 특수한 기상 현상중의 하나입니다.

‘장마’라는 단어는 한자어가 아닌 우리 고유의 언어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길 장(長)에 수해를 떠올려 마귀 마(魔)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장마의 어원을 검색해 보면 ‘댱(長)+맣’으로 나옵니다. ‘맣’은 물을 뜻하는 옛말이니 장마는 ‘오랫동안 내리는 비’란 뜻이 됩니다.

장마는 다른 말로 구우(久雨), 임우(霖雨), 적림(積霖)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장마를 메이유(梅雨),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라고 합니다. 이들이 장마를 梅雨(매우)라고 같은 글자를 쓰는 것은 매실이 익을 때 장맛비가 시작된다고 하여 똑같은 글자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청호(大淸湖)호반 마동 창작마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서양화가 이홍원 화백은 해마다 여름 장마철이면 소나기를 소재로 한 몇 점의 그림을 그립니다. 지난 날 농촌에서 마구 엎어지고 뒹굴며 흙에서 자란 아이들의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작품은 어릴 적의 진한 향수를 불러오곤 합니다.

한 여름 검은 먹구름이 뒤덮여 어두컴컴하기까지 한 오후, 뇌성벽력에 번개가 내려치고 소나기가 퍼붓는 들판을 아이들이 커다란 황소를 앞세우고 빗속을 마구 달려가는 장면은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 우산도 흔하고 웬만한 거리는 자동차로 이동을 하곤 해 비 맞을 일이 별로 없지만 과거 농촌에서는 비가 오면 그냥 내달리거나 종종걸음을 치며 그대로 옷을 적시는 것이 그 시절의 풍속도였습니다.

장마철이 되면 남쪽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비구름이 동서로 길게 장마전선을 형성하고 한반도를 남북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비를 내립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잔뜩 습기를 머금은 구름 띠가 전라, 경상, 충청, 경기, 서울, 강원도, 그리고 북한 땅을 넘나들면서 이곳저곳에 비를 뿌립니다. 곳에 따라 집중호우를 쏟아 부어 물난리를 겪게 하는 등 강우량은 지역마다 편차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연 평균 강수량은 1234.5mm인데 여름철(6,7,8월) 강수량의 합은 717.4mm로 연간 강수량의 약 58%이며, 겨울 철(12, 1, 2월) 강수량 합은 60.7mm로 연 강수량의 약 5%입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데다 경사가 급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빗물이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렇게 바다로 흘러가는 양이 전체의 절반이나 되니 많은 양의 물이 그냥 버려지고 있는 셈입니다.

비는 두 얼굴의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활에 필수 불가결의 이로움을 줘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 삶을 송두리째 망치게 하는 심술궂은 존재로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물로 인하여 태어나고 성장하고 존재합니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 식물이 살지 못하는 것은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가 와야 합니다. 물은 생명의 원천인 것입니다.

비가 오면 대기 중에 떠있는 먼지를 말끔히 씻어 줘 공기를 맑게 해 주고 건조한 공기를 적셔 상쾌하게 해 줍니다. 메마른 대지에 비가 오면 초목들의 갈증을 풀어줘 생명의 에너지가 됩니다. 또 비가 내리면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줍니다. 시인들은 시상(詩想)을 다듬고 외로운 이들은 빗소리를 들으며 울적한 마음을 달랩니다.

휴전선 넘어 북한 개풍군의 한 농촌에서 농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연락사무소를 부수던 말 던 농사는 지어야한다. /NEWSPIM

어떤 이는 장마철의 빗소리를 모든 아름다운 소리의 으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깊은 밤 창밖에 쏟아지는 빗소리는 단 한 순간도 똑같은 소리가 없는 수만, 수십만, 수백만 개 음의 조합으로 그 소리야 말로 어느 악성(樂聖)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여성들이 빗소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집중호우가 쏟아지거나 너무 오래 비가 계속되면 필시 수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강이나 하천이 범람해 교량이 붕괴되고 도로가 유실되며 애써 가꾼 농작물을 망칩니다. 산사태가 나면 인명피해가 생기고 도시에서도 가옥이 침수되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장마철에 발표하는 강우량의 기준은 무엇이고, 측정은 어떻게 할까? 강우량의 ‘mm(밀리)’란 수심을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빗물이 다른 장소로 흐르지 않고, 증발하지 않고, 지면에 스며들지 않는 상태에서의 물의 깊이를 나타내는 척도가 강우량입니다.

즉, ‘1일 강우량’이 100mm라고 하는 것은 ‘하루에 비가 10cm 내렸다’라는 의미입니다. 10cm 깊이가 적은 양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도로나 지붕 위 등 모든 곳에 10cm가 내리기 때문에, 이 빗물이 낮은 곳에 모이게 되면 상당한 양이 되는 것입니다.

강우량은 간단하게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대야와 같은 원주형의 용기를 밖에 놓고 빗물을 직접 받습니다. 그리고 자로 수심을 mm단위로 재면 그것이 바로 강수량이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강수를 측정하는 원통의 지름은 20cm로 통일돼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여름은 평년에 비해 무더운데다 작년 보다 폭염 일수가 많을 것 같다고 합니다. 또한 열대야 현상에 집중호우현상이 잦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밤 잠 좀 설쳐야 할 것 같습니다.

개원한지 1개월이 넘은 국회가 파국 끝에 여 단독으로 겨우 21대 국회의 원 구성을 마쳤습니다. 그것도 여야가 등을 돌린 상태에서의 출발이니 온갖 악명이 높던 20대 국회를 다시 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황하가 100년인들 맑아 질 리 없다”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은 우리나라 국회를 위해 만든 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는 새로운 기록만을 세우며 계속 불안감을 증폭시킵니다. 전 세계에 확진 자가 1000만 명을 돌파하고 사망자만 5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누구의 말이던가, “불안해서 불안하고 불안하지 않아서 불안하다”는 ‘불안론’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참으로 불안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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