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하지 마라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자식의 효도를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로 뒤범범이 된 사회, 
효사상은 구시대의 유물인가.
하지만 근본은 버리지 말아야―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나라 말기의 약학서(藥學書)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까마귀의 습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까마귀는 부화한지 60일 동안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새끼를 키우지만 새끼가 자라서 날개 짓을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어미를 봉양한다는 내용입니다.

자고로 까마귀를 ‘효자 새’ 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까마귀의 생태적인 습성에 따라 이름 지어진 것입니다. 까마귀를 인자한 새, 자오(慈烏)라 하고 되돌려 먹인다하여 반포조(反哺鳥)라고 하는 것은 어미의 은혜를 갚는다 하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를 흉조(凶鳥)로 취급해 까마귀 떼가 날면 불길한 일이 일어 날 징조라고 혀를 차지만 일본에서는 길조(吉鳥)로 인식해 반갑게 대합니다. 유럽에서도 영국 같은 나라는 까마귀를 ‘새중의 왕(King,s Bird)’으로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똑같은 새이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서는 호불호(好不好)의 이미지가 다릅니다. 까마귀는 동물계에서 까치, 앵무새, 침팬지, 코끼리, 범고래와 함께 인간 다음으로 높은 지능을 가진 똑똑한 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3000여 년 전 중국 주(周)나라 때 효심이 남달랐던 문왕(文王)은 하루 세 번 씩 아버지에게 문안을 드렸습니다. 첫 닭이 울면 옷을 갈아입고 침실 밖에서 “지난 밤 안부가 어떠하였소?”하고 시종에게 물었고 “평안하십니다”라고 대답하면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한낮이 오면 또 그렇게 묻고, 해가 져 저녁이 되면 또 와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편치 못한데 라도 있어서 시종이 이를 고하면 왕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걸음걸이 까지 바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문왕이 늙어 병이 나자 그의 아들 무왕(武王) 또한 의관도 벗지 않고 아버지 곁에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아버지가 한 끼를 드시면 한 끼를 들고, 두 끼를 드시면 두 끼를 들면서 정성을 다해 시중을 들었습니다. 뒤에 공자(孔子)는 “효도란 그 뜻을 잘 계승하여 하던 일을 잘 따르는 것인데 문왕과 무왕은 그 효가 지극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공자의 제자로 효성이 지극했던 증자(曾子)는 “자식의 부모 공경하는 법이란 “그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고(樂其心·낙기심), 그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不違其志·불위기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즐겁게 해드리고(樂其耳目·낙기이목) 그 잠자리와 거처를 편안하게 해드리며(安其寢處·안기침처), 그리고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봉양하면 되는 것(以其飮食忠養之)”이라고 하였습니다.

한(漢)나라 때 선비 백유(伯兪)는 잘못을 저질러 늙은 어머니로부터 어릴 때처럼 회초리를 맞으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의아해 물었습니다. “지난 날 매를 때릴 때는 운적이 없었거늘 오늘은 웬일로 눈물을 흘리느냐?” 백유 대답하기를 “전에 매를 맞을 때는 몹시 아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프지가 않습니다. 어머니의 기력이 옛날 갖지 않은 것이 슬퍼 그래 울었습니다.”

남송(南宋) 때 하자평(何子平)이라는 효자는 어머니 상(喪)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땅을 치고 울면서 기절했다 깨어나고, 기절했다 깨어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는 기근이 들어 몇 해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밤낮으로 곡(哭)하면서 추운겨울에 솜옷도 입지 아니하고 무더운 여름에는 밖에 나가 바람도 쐬지 않았으며 날마다 죽으로 연명했다고 합니다.

어버이날을 맞은 8일 ‘노인들의 안식처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 한 노인이 앉아있다. 이 공원은 코로나19 확산방지 차원에서 폐쇄된 상태이다. /Newspim

엊그제 ‘어버이날’을 지내면서 옛날 효에 관한 중국의 고사 몇 가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인간이 로켓을 타고 달나라를 다녀오는 세상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그래도 지난 날 우리나라가 효사상이라면 둘째가기 싫어했던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지라 오늘의 삭막한 세태를 돌아보는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조선조 500년의 역사가 당쟁으로 얼룩졌어도 기나긴 세월, 사직(社稷)을 지탱해 온 것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올곧은 선비정신과 조상을 깎듯이 봉양한 효사상이 밑바탕이 돼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에 앞서 늙은 부모를 지개에 지고가 산에 버리고 온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낯 뜨거운 악습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교가 국교가 된 조선의 효사상은 미풍으로 연면히 전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효의 근본은 불위(不違)요, 무위(無違)입니다. 불위, 무위란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는 거스르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아버지가 부르면 “예”할뿐,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였습니다. 하물며 부모의 뜻을 거슬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두말이 필요 없는 불효였습니다. 하여 효자는 아버지가 눈을 감은 뒤 3년 동안 기거하던 방을 치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지 언 정 생전 그대로 바꾸지 않고 두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한시외전(漢詩外傳)에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아니한다(子欲養而親不待)― 그래서 송(宋)나라의 대학자 주자(朱子)는 사람이 후회하는 열 가지 가운데 첫 번째를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로 적었습니다. 이르되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입니다. “불효하면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는 뜻입니다.

매사가 그렇지만 근본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찮은 미물들도 지켜야 할 길이 있거늘 하물며 인간임에랴. 지금 우리 사회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뒤범벅이 되어 있지만 그럴수록 근본을 잊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버이날에 느끼는 소회는 그렇습니다.

사회 원로 한 분의 말씀을 옮겨 적습니다. “천하의 자식들아, 효도하지 말지어다. 또한 불효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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