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Leviathan≫ 읽기 (1)

서양사를 공부한 독자라면, 중세적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 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는 중간에 절대주의 시대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의 특징은 프랑스의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가 표명한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에서 가장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권력은 오직 내 개인에게 속한다. 법정이 그 존재 이유와 권위를 갖는 것도 오직 나로 인한 것일 뿐이고……입법권도 오직 나에게 속해 있고……모든 공공질서도 오직 나로부터 나온다……국가의 권리와 이익은……내 자신의 권리와 이익에 통합되어야 하며, 그것은 오직 내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절대주의는 군주의 절대성(“짐”)과 중앙집권적인 정치단위체(“국가”)를 특징으로 합니다. 권력분점적이고 지방분권적인 중세적 질서가 붕괴되어 가면서 단일국가체계와 그 상징으로서 군주가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군주들은 종래의 교회와 귀족, 봉건적 관습에 의한 제한에 대항하여 국가와 그 수장으로서의 자신의 절대적 권위와 권력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절대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즉 왕의 권위와 권력은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주장입니다.

이들 절대군주들은 자신의 권력을 현실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방대한 관료기구와 상비군 체제를 도모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감당하기 위하여 조세체제 정비, 화폐․도량형 통일, 무역 독점, 식민지 건설하는 등 중앙집권적인 행정체제를 마련하고 각종 중상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정력과 경제력 확대는 절대군주의 시민계급에의 의존성을 증대시키고 상공업계층의 성장을 가져와, 오히려 절대군주의 몰락(근대 자유주의 혁명)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중세에서 근대 자유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정치이념이자 정치체제인 절대주의를 대변하는 정치고전이 바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리바이어던Leviathan≫입니다. 절대군주의 권위와 권력을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무지막지한 바다의 괴물인 ‘리바이어던’에 비유한 것처럼, 정치사상사에서 홉스만큼 정치적 최고권위 또는 주권자가 갖는 권위와 권력의 절대성을 옹호한 학자는 없습니다. 여기서 ‘절대’란 정치적 최고권위는 귀족, 시민(시민대표), 종교적 권위체 등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그들과 힘을 분점하지도 않고, 그 힘의 행사에서도 제한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토마스 홉스.

괴물, 양쪽의 칼날 사이에 서다 ?

그런데, 그런 홉스가 1651년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리바이어던≫을 출간하며, “이 책은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자유를,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이 양쪽의 칼날 사이를 무사히 지나가기란 어렵다”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홉스는 영국으로 귀국 하였는데, 그의 불길한 예상은 적중하였습니다. 당시 자유를 주장하는 의회파는 물론, 권위를 주장하는 왕당파와 교회 세력으로부터도 홉스는 반역자, 무신론자라고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당대의 영국의 정치상황이 어떠하기에, 누구보다도 군주의 절대성을 지지한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출간하며 양쪽의 칼날 사이를 무사히 지나가기 어렵다고 걱정하고 있을까요? 도대체 이 책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기에, 그의 우려처럼 양쪽의 정치세력 모두로부터 배척을 받았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영국의 역사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전체 역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역사는 아마도 홉스가 살았던 17세기의 내전과 혁명의 과정일 것입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왕 중 한명인 처녀왕 엘리자베스 여왕(그녀는 이전에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언급한 헨리 8세 국왕이 앤 블린 사이에 낳은 공주였습니다)이 후사 없이 죽고,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되면서, 절대왕권을 옹호하는 ‘왕당파’와 귀족에 의한 왕권의 견제를 주장하는 ‘의회파’간의 분쟁이 본격화됩니다.

이러한 분쟁은 찰스 1세 국왕의 거듭된 실정과 의회탄압으로 악화되어 결국 1642년에 양측은 군대를 동원하여 내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흔히 이를 ‘청교도 혁명’ 혹은 ‘잉글랜드 내전’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왕당파가 우세하였으나, 의회파의 올리버 크롬웰이 지휘하는 신형군의 혁혁한 전과로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고, 1649년 찰스 1세는 반역죄로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100여년 후 영국의 신사들은 점잖은 체 하며, 18세기말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한 것을 맹비난하고 조롱하였지만, 사실 국왕 처형과 혁명의 역사는 그들이 선구자인 셈이었습니다.

이후 군주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시작되었지만, 크롬웰의 독재정치에 환멸을 느낀 영국의 정치세력들은 그가 죽자 군주정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국왕과 왕당파에 의한 정치적 탄압이 재현되자, 의회 주도자들은 1688년 당시 국왕인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그의 딸이면서도 대의제도와 제한군주정을 약속하는 메리와 그의 남편인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을 왕으로 옹립하면서 영국의 분쟁과 내전은 끝을 보게 됩니다. 이런 1688년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달성되었다고 흔히 ‘명예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영국의 분쟁과 내전은 절대주의로부터 근대 자유주의로의 이동을 상징합니다. 왕당파가 前근대적인 절대주의 이념을 반영한다면, 의회파는 자유주의․대의제도․제한적 군주권력 등 새롭게 성장하는 근대성을 반영한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살펴보는 홉스가 왕당파에 가까운 편이라면, 홉스보다 1-2세대 후의 로크는 의회파에 속하는 정치사상가라고 할 것입니다. 

군주권력이 리바이어던 만큼 절대적이라고 주장한 홉스가 의회파로부터 배척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지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정치사상은 왕당파로부터도 철저히 배척 받았습니다. 홉스의 철학은 왜 왕당파로부터도 배척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홉스가 자신의 정치사상의 기초를 철저히 근대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찰스 1세의 처형(판화).

홉스, 근대를 열다        

정치사상사에서 홉스는 근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홉스로부터 시작되는 근대 정치학의 근간 무엇을 의미할까요? 근대라 함은 고대, 중세와 구분되어 진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고대, 중세의 정치학의 기초와 어떻게 다를까요? 근대와 구별되는 고대, 중세의 정치학을 대변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고대 아테네 최고의 정치사상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결국 홉스의 정치학이 근대 정치학의 시작점이라는 것은, 그의 정치학이 중세 1천년 넘게 지속되어온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적 유산과의 철저한 단절에 기초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사회를 포함한 모든 사물은 자연적 질서에 따라 정해진 자리가 있으며, 정의는 그 질서에 부합할 때 이룩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이나 계급이 자연적 위계구조에 의하여 주어진 각자 혹은 각 계급의 직분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정치사상의 근간은 중세 기독교에서 자연이 ‘신’으로 대체 되었을 뿐, 그 근간은 그대로 지속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세계관은 근대 정치철학자들에게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 외부의 자연이나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질서, 정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개인) 그 자체에 주목하여 그곳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사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전체․위계․직분․의무․조화가 아니라, 개인․자유․평등․이익․갈등에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 근대의 변곡점인 것이고, 그 시작점이 바로 홉스였던 것입니다.  

자연은 인류를 육체적, 정신적 능력에서 평등하게 창조했다. 따라서 남보다 강한 육체적 능력을 지닌 사람도 이따금 있고, 두뇌 회전이 남보다 빠른 사람도 더러 있지만, 모든 능력을 종합해 보면, 인간들 사이의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에서 지배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고, 남을 섬기는데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이런 불평등을 자신의 학설의 기초로 삼았다.……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은 이성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경험에도 위배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주인이 되기보다 차라리 남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바보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자연이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면 그 평등은 인정되어야 하고, 가사 자연이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등한 조건에서가 아니면 평화상태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므로 그런 평등은 인정되어야 한다.

“지배받길 원하는 바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생각은 지금은 너무 진부한 것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었습니다. 그 당시까지 인류사회는 귀족, 평민, 노예가 존재하는 신분제 사회였고, 그것이 당연한 자연적 질서 내지는 신에 의하여 부여된 질서인양 받아들여졌으니까요.

이렇듯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기본적으로 근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관념을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의 결론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정반대로 정치적 최고권위의 ‘절대성’이라는 극단의 反개인주의․反자유주의에 이릅니다. 이러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핵심에 홉스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인 ‘공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에서 시작하지만 오히려 괴물 같은 절대권력을 만들어내게 된 계기가 바로 공포였던 것입니다.

홉스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홉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개개의 인간은 보다 많은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의 인간관은 마키아벨리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홉스는 이러한 인간이 모여 사는 ‘자연상태’를 가정합니다. 물론 자연상태는 역사적으로 실제 하였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든, 사회 규범과 질서가 마련되어지기 이전의 가상의 상태입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그러면서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로 이루어진 자연 상태는 어떠할까요?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인간 모두는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할 무제한의 자유를 갖는데, 그러한 상태는 결국은 모두의 파멸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 성향의 하나로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서 끝나는, 권력에 다한 끈임없는 욕망을 들겠다. 이러한 욕망의 원인은 인간이 이미 획득한 것보다 더 강한 기쁨을 바러거나 혹은 좀 더 온건한 권력에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많은 권력을 축적하지 않고는 현재 그가 갖고 있는 권력이나 수단마저 확실하게 지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동의 권력이 없다면 인간은 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에서는 노동의 결과가 불확실하기에 땀 흘려 일한데 대한 보상이 불투명하고 따라서 토지의 경작이나 항해, 무역, 건축, 이동이나 운반을 위한 도구, 지리학도 불가능하고, 시간의 계산도 없고 예술과 학문도 없고 사회도 없다. 가장 나쁜 것은 끊임없는 두려움과 폭력에 의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것이다. 

모두의 자유와 평등은 “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일 뿐

홉스는 물론 그 이후의 로크, 루소 등 근대의 많은 정치사상가들은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이라는 담론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계약이나 그러한 계약 이전의 원초적 상황인 자연상태란 관념은 고대 아테네와 중세에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글라우콘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남의 나쁜 짓을 피할 수도 없고 남에게 나쁜 짓을 전혀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인간들에겐 나쁜 짓을 하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는 협약을 맺는 것이 이롭습니다. 이것이 입법의 시작이고 협약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법의 집행은 합법적일뿐 아니라 정의롭기까지 하다고 배웁니다. 그것이 정의의 기원이자 진정한 본질이다”라고 답합니다. 글라우콘의 말 속에서 사회계약적 사고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상태와 사회계약 담론이 정치사상사에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입니다. 왜 그들은 갑자기 뜬금없이 유행처럼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을까요? 앞서 지적하였듯이 고대와 중세의 사상가들은 모든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을 자연 혹은 신의 섭리로 설명하였지만, 근대의 사상가들은 인간 외부의 자연이나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질서, 정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개인) 그 자체에 주목하여 그곳으로부터 자신들의 사유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뒤 바로 뒤따르는 질문은 그러한 개인들이 어떻게 공동의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분석틀 중에 그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담론이 바로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홉스가 말하는 만인 대 만인의 전쟁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공멸로 치닫지 않고, 보다 안정적인 평화상태나 정부가 있는 문명사회로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의 권력을 창출할 수 있을까요? 로크나 루소와 달리, 홉스식의 인간과 자연상태에서는 사회계약 관념을 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홉스의 말대로 인간이 절대적으로 야만적․反사회적 존재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절대로 평화나 문명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해야 보다 논리적입니다. 그렇다면 홉스는 어떻게 그런 논리적 한계를 극복할까요?

어떻게 전쟁상태에서 계약단계로 이행할 수 있나?

그러나 인간이 그런 가혹 상태로부터 벗어날 가능성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은 인간의 정념과 인간의 이성에 있다. 인간을 평화로 향하게 하는 정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쾌적한 생활에 필요한 각종 필요품에 대한 욕망, 그런 필요품을 자신의 노동으로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등이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들이 서로 협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적절한 평화의 조항들을 시사한다.……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이성의 계율 또는 일반적 원칙이 나온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획득할 가망이 있는 한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인간은 평화와 자기 방어를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한, 또한 다른 인간들도 모두 그럴 경우에는 만물에 대한 이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어떠한 정의도 질서도 도덕도 없이, 무제한적 자유와 그러한 자유를 평등하게 갖는 인간들로 이루어진 자연상태에서 인간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본성인 이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곧바로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에 항상 떨게 되고, 그러한 항존하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인 ‘이성’, 달리 말하면 처음의 원초적이고 단순한 이기심이 아닌, 보다 계산적이고 숙려된 이기심을 발휘하여 평화협정 즉 사회계약을 맺게 되고, 이에 따라 공동의 권력을 창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민들은 그 공동의 권력에게 자신들의 자연적 권리의 많은 부분을 위임하여야 하고, 공동의 권력은 그 위임에 따라 본래의 자연적 평화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단속하고 인민들 간의 분쟁에 대하여 중립적으로 판단을 하는 등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구조는 로크와 동일합니다. 근대 정치철학을 이야기 하는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홉스와 로크가 인간 본성과 그에 따른 자연상태에 대한 인식에서 정반대적이며, 이러한 인식의 차이로 인하여 이후의 국가권력의 크기와 강도의 정반대적 차이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홉스가 최악의 인간과 자연상태를 전제하였기에, 그것을 최악의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러한 뉘앙스적 차이가 있지만, 앞서 보았듯이 적어도 공동의 권력을 창출하는 기본적 논리구조는 그러한 오해와 달리 거의 동일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을 근간으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홉스도 앞서 보듯 로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또 다른 본성으로 ‘이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 이성을 발휘하여 자연상태에서도 평화로운 상태로 다다를 수 있고 그 평화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하여 공동의 권력이 만들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존 로크.

위대한 지상의 신, ‘리바이어던‘의 탄생

흔한 오해와 달리, 홉스와 로크와의 중대한 차이는 그 이후에 발생합니다. 홉스에게서는 여기서 등장하는 공동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리바이어던으로 급격히 도약합니다. 이러한 놀라운 비약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먼저 ‘리바이어던’이 등장하는 순간을 보시죠.  

한 사람 또는 합의체를 임명하여 자신들의 인격을 위임하고 그 위임받은 자가 공공의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인민들에 어떤 일을 하게 하든, 인민 각자는 그 모든 행위를 수행하고 그 지시의 수명자임을 인정함으로써, 인민 개개인의 의지와 판단을 그의 의지와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이것이 실행되어 다수의 인민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위대한 '리바이어던'이 탄생한다. 영원한 불멸의 하나님의 가호 아래, 우리의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tal God)'이 탄생하는 것이다……그리고 이 인격을 맡을 사람을 주권자라 하여 그가 주권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홉스가 말하는 ‘위임받은 자(리바이어던)가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인민들에게 어떠한 일을 하게 하든’은 무슨 의미일까요? 홉스는 이후 이 의미에 대하여 즉 인민과 리바이어던의 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민들은 그 위임을 해지하여 원래의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고, 위임의 내용을 결코 변경할 수도 없고, 주권자를 비난하거나 그에게 항의할 수도 없는 반면, 주권자는 인민의 평화와 방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독단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무엇이 법인지 마음대로 정하고 폐지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인민의 자유와 소유권의 내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인민의 자유와 소유권은 주권자의 관용과 묵인에 의하여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인민의 자유는 법의 침묵에 달려있다. 즉 주권자가 그에 대한 별도의 법을 정하지 않은 경우에만 인민은 자기의 재량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인민의 자유는 주권자가 자신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다르다.

주권자는 모든 인민들에게 자기 몫의 토지를 나누어주는데, 이는 어떤 인민 혹은 다수 인민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 자신의 판단에 따라 나누어주는 것이다……여기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한 인민의 소유권은 다른 인민들이 그것을 쓰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권리이지, 그들의 주권자를 배제하는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주권자가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일을 처리하기도 하기도 한다. 이것이 자연법 위반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민이 주권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거나 부당하다고 고소를 하거나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든 주권자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잘못된 견해중 하나는 ‘주권자도 시민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권자는 시민법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잘못된 견해는 법을 주권자보다 위에 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 그것은 재판관과 처벌자를 주권자 위에 두는 것이며, 결국 이것은 또 하나의 주권자를 만드는 것이며 같은 이유로 제2의 주권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3의 주권자를 만들고 이런 일이 끊임없이 계속되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져 붕괴되고 말 것이다.    

▲ <<리바이어던>> 속표지 삽화의 일부, 이 그림에서 주권자의 몸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신민들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더불어 주권자는 한손에 칼, 다른 한손에 홀을 들고 있는데 이는 각각 권력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홉스는 도대체 어떻게 계약으로 괴물을 만들 수 있을까?

인민과의 계약 혹은 위임에 의하여 공동의 권력이 생겼다면, 공동의 권력은 위 계약 혹은 위임의 목적내로 제한된다고 하는 로크의 주장이 보다 논리적입니다. 홉스가 스스로 인정하듯 자연 상태에서도 평화로운 상태를 구성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면, 구태여 자신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을 끌어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보다 상식에 부합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홉스는 공동의 권력에 리바이어던 같은 절대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정치사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홉스만큼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정치사상가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놀라운 비상식적인 비약을 홉스는 어떻게 논리적으로 정당화 하였을까요? 그것을 논리적으로 가능케 하는 홉스만의 특별한 묘약이라도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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