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영문학) 교수

▲ 김상구 청운대 교수.

터키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붉은 색 티셔츠와 남색 반바지를 입은 채, 엎드려 잠자는 듯 발견된 시리아의 세살배기 아일란 쿠르디 시신이 지구촌을 울렸다. 아일란은 부모를 따라 내전이 5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를 떠나 에게해(Aegean Sea)를 거쳐 유럽으로 가려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아일란 가족처럼 시리아인이 전쟁과 가난을 피해 조국을 줄줄이 떠나고 있지만 아직 시리아의 내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이슬람국가(IS)까지 합세하고 있는 이 나라의 미래는 갈수록 어둡기만 하다. 특히 슬라보예 지젝같은 좌파 철학자는 난민 발생의 궁극적 원인을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찾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에 암암리에 무기를 공급하지 말라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경고하고 있으니 내전에 외세마저 개입되고 있는 복잡한 형국이다.

시리아, 이라크를 비롯하여 중동 및 북아프리카 일부지역에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주로 난민, 테러, 전쟁, 참수 등과 같은 부정적 단어이다. 특히 IS에 의한 살벌한 참수 장면이 SNS를 통해 생생히 전파되면서 이들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적은 없었다. 특히 미국에서 2001년 9,11테러 이후, 공항에서 중동인에 대한 경계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는 해저터널 부근의 칼레(Calais)지역 난민들에게 ‘swarms'라는 벌레 떼나 가리킬 때 쓰는 단어를 써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 단어의 사용이 영국 사람의 속마음을 대변했는지 모른다. 난민 속에 IS와 같은 테러 분자들이 끼어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일란의 싸늘한 시신이 찍힌 사진 한 장은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 놓고 있다.

▲ 터키의 유명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민 유입에 손사래를 치던 독일 메르켈 총리는 “우리에게 온 모든 사람들을 인간적이면서도 위엄 있게 대하는 것이 독일의 이미지여야 합니다”라면서 시리아 망명자 모두를 독일에 수용하기로 통 큰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쿨하게 사과도 했지만 난민수용 결정에도 높은 도덕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도 시리아 난민 1만 명 이상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이집트도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며 난민 구호기금도 내놓고 있다. 영국도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일부국가들은 밀려드는 많은 난민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젝은 이러한 행위를 유럽인들의 위선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결정은 비참한 난민들의 모습을 보고 내린 휴머니즘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그들이 동양(중동)인 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있어왔다고 콜롬비아 대학의 저명한 교수였던 에드워드 사이드(팔레스타인 출신)는 그의 『오리엔탈리즘』(1978)에서 지적한바 있다. 그가 언급한 동양은 주로 지금의 중동을 의미했다. 그는 유럽의 방대한 문헌을 분석하면서 여행기, 학술서적, 혹은 문학작품에 나타난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 그 편견이 만들어 낸 허구적 지식체계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다. 유럽 사람들이 허접하다고 생각한 동양의 실체는 없다는 말이다.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소설은 오리엔탈리즘이 내재화된 유럽인들이 암흑의 대륙(아프리카)에 문명의 횃불을 들고 들어가 어둠을 밝혀주어야 한다는 잘못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유럽인들은 교화라는 미명하에 아프리카에서 억압과 지배를 했고, 훈육을 이유로 살인을 했고, 무역을 이유로 원주민을 착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도 가치 있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콘래드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사이드는 오히려 그를 비판하고 있다. 사이드가 보기에 아프리카와 중동을 좋아하는 현대의 서구인들조차도 콘래드의 눈빛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도 난민들의 생존을 위하여 유럽은 건성건성으로가 아니라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보여준 사이드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일은 지금의 아프리카,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동양)이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서양에 비교 우위에 있거나 비슷한 위치에 서는 일일 것이다. 유럽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스스로 먹고 살만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경제의 이데올로기와 문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일란의 시신이 들어있는 사진 한 장과 IS에 의한 생생한 참수장면이 오늘의 중동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처참한 난민들의 모습, 해변가에 죽어있는 아일란의 모습을 보면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이 서양인의 오만과 편견에서 나온 말일까 하는 생각도 스쳐간다. 그 지역의 급진적 정치, 경제의 변화만이 난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젝은 공산주의의 재발견에서 해답을 구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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