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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義兵將) 한봉수(韓鳳洙) 송공비(頌功碑)
황경수 | 승인 2020.04.13 08:55

청주 성안길의 중심인 중앙공원의 북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좌측에 의병장(義兵將) 한봉수 송공비(韓鳳洙頌功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115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5년 청주시 향토유적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이 송공비(頌功碑)는 의병장(義兵將)이자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인 한봉수(韓鳳洙, 1872~1970)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7년에 세운 비석(碑石)이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91㎝ 폭 69㎝ 두께 39㎝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뿔 없는 용이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을 얹었다. 비신에는 ‘의병장한공봉수송공비(義兵將韓公鳳洙頌功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의 비문은 순 한글로 동천(東泉) 조건강(趙健相)이 짓고, 우송(友松) 이상복(李相馥)이 썼다.

*한봉수(韓鳳洙, 1872~1970)는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다. 일명 봉서(鳳瑞)·봉용(鳳用)·봉룡(鳳龍)이며, 충청북도 청주 출신이다.

1907년 8월 의병장(義兵將) 김규환(金奎煥)을 만나 감화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의병에 가담하게 되었다. 청주 세교리(細橋里) 장터에서 기의하여 4년 6개월 동안 33전 1패의 전과를 거둔 유격전의 명수였다.

진천(鎭川) 문백면에서 일본군 헌병 중위 시마자키[島崎善治] 등 3명을 사살하고 그 무기를 노획한 것을 시초로, 약 30명 정도의 의병을 이끌고 게릴라전으로 미원(米院)·진천(鎭川)·괴산(槐山)·횡성(橫城)·장호원(長湖院) 등으로 출몰하면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 뒤 상해(上海)로 건너갈 생각으로 서울 선교사 집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다가 남대문역에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교수형을 받았으나, 일제의 소위 ‘합방대사령(合邦大赦令)’으로 출옥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청주에서 시위하여 다시 2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63년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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