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읽기 (2)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공화국의 안정과 번영의 원동력을, 집정관․원로원․호민관(민회)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혼합정체’적 정치구조 외에, 고대 로마공화국 특유의 ‘공화주의’ 정치이념과 그가 ‘비르투(virtū)’라고 표현한 시민문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전회에 살펴본 혼합정체가 고대 로마공화국에서 골격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공화주의와 비르투는 그 속에 흐르는 정신과 피의 역할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공화주의(共和主義, Republicanism)? 자유주의, 보수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다문화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등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정치이념을 갖고 있지만, 정치이념 중에서 ‘공화주의’만큼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고 난해한 이념도 없습니다. 공화주의란 이념을 처음 들어본 독자 여러분도 많을 것이고, 가사 그 이름을 들어봤던 독자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여 달라고 하면, 대부분은 처음부터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일반 상식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공화주의에 대하여는 학계에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이념일 될 수 있는지(실제 여러 정치이념들을 개괄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국내에서 출간된 10종 가까운 저술중 공화주의를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은 2-3종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보듯 그것이 갖는 현대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여 전혀 상반된 견해가 있을 정도입니다.

▲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개괄서들.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공화주의란 과연 무엇일까요? 민주주의의 어원 자체가 고대 아테네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공화주의(Republicanism)라는 말 자체는 ‘인민의 일’ 또는 ‘공공의 것’을 뜻하는 고대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유래합니다.

고대 로마의 공화파 정치인이었던 키케로(Cicero, BC 106∼43)는 “공화국은 인민의 일들이다. 그러나 인민은 아무렇게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을 의미한다”라고 말하며, 공동의 정의와 법을 인정하고 공동의 이익을 공유한 사람들의 모임(공동체)은 ‘혼합정체’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키케로의 말처럼, 공화주의는 ‘혼합정체’ 주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혼합정체 주장이 고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로부터 비롯되었고 고대 로마공화정에서 현실적으로 실현된 것처럼, 학자들은 공화주의의 기원을 고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기도 하고, 고대 로마의 폴리비우스(Polybios BC 200?∼118?)와 키케로에서 찾기도 합니다. 

이처럼 공화주의 이념의 시초는 혼합정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러나 공화주의는 하나의 정치이념으로서, 혼합정체라는 현실적 정치대안을 넘는 심오하고 난해한 정치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공화주의 이념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공화주의는 기본적으로 1) 자유, 2) 법의 지배(법치주의), 3)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 4) 공공선을 우선하는 시민덕성을 핵심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말하는 자유와는 현저히 다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키아벨리까지 이어지는 공화주의자들에게 자유란,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의 일방적․자의적 지배에서 벗어난 상태, 또는 어떤 집단과 계급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거나 자신들의 의사와 이익을 공동의 의사결정 절차에 투영하고 상대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갖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다른 개인, 집단, 계급의 일방적․자의적 지배를 받는 예속적 상태에 있을 때 자유를 잃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특정 개인이 자의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군주체제를 거부하고, 특정 계급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체제(귀족과 부유층이 지배)와 민주정체(빈민과 노동자가 지배)를 거부하는 혼합정체 주장과 연결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더불어 공화주의자들은 그러한 특정 개인․집단․계급의 일방적․자의적 지배를 예방하고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중요시하는데, 이는 자의적인 인치(人治)가 아닌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에 의한 지배(법치), 시민들의 공적인 일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공공의 이익과 의무를 중시하는 시민정신 등에 대한 강조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 체사레 마카리, '키케로의 원로원 연설' (1889년).

공화주의적 vs 자유주의적 자유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를 현대적 용어로는 ‘非지배(non-domination)’ 자유라고 합니다.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는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타인이나 다른 집단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국가, 사회, 타인으로부터의 ‘간섭의 부재’로서의 자유 관념은 17, 8세기 홉스와 로크 이후 등장한 것으로, 학문적으로 이를 ‘자유주의적’ 자유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유는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적 자유이지만, 우리와 정반대로 근대 이전의 정치사상가들은 공화주의적 자유 관념을 가졌고, 자유주의적 자유 관념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가장 명확히 분별한 사람은 프랑스의 콩스탕(Benjamin Constant, 1767∼1830)입니다. 그는 1818년 프랑스 왕립협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고대의 공화주의적 자유 관념과 근대의 자유주의적 자유 관념간의 차이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그의 다음의 언급은 이후 자유의 역사를 논하는 모든 저서들에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것이 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은 한 국가내의 모든 시민들에게 권력이 배분되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며, 이것을 그들은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인들의 목표는 각자의 사적인 소유의 보장이다.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이 소유의 보장을 일컫는다……계속적으로 집단적인 권력에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형성 가능했던 고대인들의 자유를 오늘날 우리들이 누린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 반대로 우리들의 자유는 사적인 독립을 평화롭게 추구하는 가운데 놓여 있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주의적 자유가 정치․권력․국가에 대하여 배제적․제한적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면, 非지배 혹은 脫예속 상태를 의미하는 공화주의적 자유는 오히려 자치․정치참여․권력분점 등 그것에 대한 구성적․형성적 내용을 핵심으로 합니다. 예컨대 근대의 자유주의자들이 ‘공적 권위가 끝나는 곳에서 자유가 시작된다’, ‘정치와 권력이 간섭하지 못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자유가 넓어진다’는 식으로 사유하나, 前근대의 공화주의자들은 그와 정반대로, ‘공적인 일이나 정치에 참여할 때만이 자유롭다’, ‘공적․정치적 영역이 넓어질 때 자유가 넓어진다’고 사유합니다.

이러한 공화주의와 고대적(공화주의적) 자유의 의미를 알고 근대 이전의 정치고전을 읽는다면, 그것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를 포함하여 그 이전의 정치고전에서 등장하는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는 거의 모두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참여하지 않은 자는 아테네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자’라고 했던 페리클레스의 비유, ‘자유는 어느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거나 최소한 번갈아 지배하기’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로마의 자유는 귀족과 평민의 끈임 없는 싸움 덕분에 태어나고 유지되었다’라는 마키아벨리의 평가, ‘자유는 자신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사와 욕구에 복종하지 않는데 있다’라는 루소의 정의 등은 바로 우리와 전혀 다른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 관념에 기초한 것들입니다.

고대 아테네적 vs 고대 로마적 공화주의

이처럼 공화주의 내지 고대적(공화주의적) 자유 관념이 자치․정치참여․권력분점을 주요 내용으로 하지만, 그 취지에 대하여는 고대 아테네와 고대 로마적 전통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적 공화주의의 기원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이라는 그의 말처럼 시민이 완전한 인간적 존재로 발전하는데 있어서의 정치참여의 본질적(고유한) 가치를 강조하고, 계급․정치세력간 대립과 갈등 보다는 그것의 조화와 통합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사상가들은 시민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참여의 수단적(도구적) 측면을 강조하고, 각 개인․집단․계급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서로간의 대립과 긴장,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상대방의 일방적․자의적 지배를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들은 자치나 적극적인 정치활동만이 자유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세력간에 건강한 긴장 관계를 구축하거나 항상적인 경계 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유의 확보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전자가 정치참여 그 자체를 자유의 실현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정치참여(이를 통한 권력분점과 상호견제의 확보)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자간의 차이점이 있기에, 학자에 따라서는 전자의(고대 아테네적) 경향을 강력한․계발적 공화주의, 후자의(고대 로마적) 경향을 도구적․보호적 공화주의라고 분별하기도 합니다.

▲ 필립 페팃의 <<신공화주의>>, 20세기말에 근대이전의 공화주의가 복원된데는, 존 포칵, 퀸튼 시키너, 필립 페팃 교수의 영향이 큽니다. 특히 페팃 교수는 <<신공화주의>>(원제는 공화주의, 자유와 정부의 이론)에서, 고대 로마적 공화주의의 입장에서 공화주의의 의미와 역사, 자유주의와의 대조, 그리고 현대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 고대 로마공화국의 안정과 번영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한 ‘공화주의’ 이념은, 바로 후자인 ‘고대 로마적 공화주의’입니다. 전회에 살펴본 것처럼 그에게서 공화주의적 이념은 혼합정체 주장과 연결됩니다. 마키아벨리는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귀족과 평민, 과두파와 민주파 중 어느 일방이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상대방을 배제하면 자유가 사라지고 분쟁과 혼란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양 세력 모두에게 자신들의 의사와 이익을 표출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를 마련하여 주고 권력을 분점케 하는 혼합정체를 구성하면, 모두의 자유를 확보하고 정치적 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갈등’이 위대한 로마를 만들었다

귀족과 민중의 끈임 없는 싸움을 비난하는 것은, 로마의 자유를 유지한 원인 자체를 비난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들은 그 싸움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것을 낳아준 고마운 결과는 알지 못한 채 고함과 소동 쪽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정체에 반드시 두가지 대립 원인, 즉 귀족과 민중의 이익이 존재한다는 것과 자유를 위한 법령은 어떤 것이든 이들간의 알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오히려 이러한 대립과 분쟁 덕분에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한 합당한 법령이 태어난 것이다 

호민관(로마공화국에서의 평민의 대변기구) 제도의 시작이 내분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민중은 정치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고, 호민관은 로마인의 자유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 것이므로, 내분 자체도 찬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적 인물에 대한 로마공화국의) 고발제도의 또 다른 효과는 몇몇 시민들에게 끈임 없이 발생하는 열정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열정을 합법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면, 그 열정은 결국 비상수단에 호소하게 되어 공화국의 전복에 이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열정을 적당히 발산할 수 있도록 조장하여 국법이 인정하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게 되면, 세상에 이보다 더 국가를 강화해 주는 것은 없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대립과 갈등에 대한 인식은 그것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와는 현저히 다른 것입니다. 그 이전의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사회내의 대립과 갈등의 요소는 공동체를 분란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표출을 외면하고 억압하려고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마키아벨리는 대립과 갈등 요소의 존재는 사회적 필연이므로,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적극적으로 반영․수용․조정하는 법제도와 절차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러할 때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대립과 갈등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사회는 해방 전후의 좌우갈등, 한국전쟁 전후의 남북갈등, 성장기의 노자갈등, 민주화 이후의 노자․지역․보혁․세대갈등 등 다른 어떠한 나라보다도 여러 갈등을 겪었고 그 정도도 격심하였지만, 언제나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백안시하고 범죄시하여 억제하고 통제할 대상으로만 여겼을 뿐, 그러한 대립과 갈등의 필연성과 긍정성에 대하여 무지하였고, 그것을 합리적․적극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에 대하여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비르투(virtū), 위대한 로마인들의 시민정신

그러나 공화주의자들은 대립하고 갈등하는 계급과 정치세력들에게 자신들의 의사와 이익을 표출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를 제공하고 권력을 분점케 하여, 그들 상호간의 의사와 이익을 교환 조정하고 상대의 권력독점과 부정부패를 감시 견제할 수 있는 헌정질서와 제도적 절차를 마련한다고 하여 훌륭한 공동체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에 더하여 공공선(공공의 이익)을 우선시 하며, 공적인 일이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정치문화와 시민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마키아벨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가 말하는 공화주의적 정치문화와 시민정신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상무(尙武)적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공화국의 안정과 번영의 원동력의 또 다른 요소로, 고대 로마인 특유의 ‘비르투(virtū, 영어로는 virtue)’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르투는 마키아벨리의 독창적 개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비르투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키아벨리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고대 로마에서 비르투는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책임지는 시민의 전사(戰士)로서의 신중함, 대담함, 명예감 등을 의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하고 그리스 철학이 수입되고 기독교가 보편화하면서 비르투는 고대 로마 특유의 세속적․상무적 성격을 잃고, 정직함․경건함․관대함․겸손함 등 윤리적․종교적 덕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이러한 유약한 윤리적․종교적 비르투는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오기는커녕 노예근성과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그의 비르투에 대한 해석에도, 그의 反종교적․反윤리적인 현실주의적․결과지향주의적 정치관이 담겨있다고 할 것입니다.

고대의 민중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격렬하게 자유를 열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옛날과 오늘의 교육의 차이와 신앙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의 종교(오늘의 기독교)는 진리와 진실한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지만 동시에 현세에서의 명예는 값어치가 적은 것처럼 느끼게 했다……그러나 고대 종교(고대 로마의 종교)는 현세에서 공적으로 이름을 떨친 자에게만 축복이 내려졌으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받들어 모셔지지 않았다……이런 오늘의 기독교로 인하여 인간은 점점 더 나약해지고, 교활한 자들이 안심하고 세상을 마음대로 요리하고……교육은 부패하고, 따라서 현대에는 옛날만큼 공화국도 존재하지 않고,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어지고……옛날에는 누구나 자유인의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고대 로마인들은 이러한 세속적이고 상무적인 비르투에 충만하였기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며, 지금의 시민들에게도 고대 로마인들과 같은, 사적 이익․목표보다는 공동체의 이익과 국가적 영광을 우선시 하고, 그러한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담대한 용기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러한 비르투는 그냥 가져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와 같은 필요조건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이러한 비르투의 쇠퇴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부패’입니다. 그는 시민들이 공적인 일보다는 사적 욕망 추구에만 집착하고, 집단으로 세력을 나누어 이기적 집단이익만 추구하고, 정치인들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적 야심으로 공적 지위와 권한을 남용할 때(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부패’이고, 전회에 말한 마키아벨리가 아닌 ‘마키아벨리즘’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비르투는 사라지고 공동체는 파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공화주의는 ‘신데렐라 유리구두’ ?

공화주의는 이처럼 고대 아테네와 고대 로마에까지 거슬러 올라갈뿐더러, 마키아벨리․몽테스키외․루소․매디슨․밀 등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내놓으라 하는 사상가들도 공화주의를 신봉하거나 공화주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회에 언급한 것처럼) 근대의 정치엘리트들이 근대 정치체제와 질서를 구축할 때 주요 텍스트로 삼은 것 중의 하나도 공화주의 이념과 그것을 체화한 혼합정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근대와 더불어 등장한 정치이념인 ‘자유주의’ 이념이 보편화되고, 19세기 중반이후 ‘민주주의’ 이념이 대두되면서, 古來의 공화주의는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시민들은 공화주의적 시민 덕성이나 공적 유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개인의 사적 욕망을 충족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정치참여로서의 자유보다도 정치로부터의 개인적․사적 영역의 보호와 그것을 위한 정치권력의 제한이라는 문제를 더욱 관심을 갖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잊혀진 공화주의가 지난 20세기말부터 다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파적 학자들은 물론 좌파적 학자들로부터도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파와 좌파가 공화주의의 재건 혹은 부활을 주장하는 취지는 모두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에 있지만, 그러나 그 맥락은 역설적이게도 정반대입니다.

우파 학자들은 개인주의의 팽배, 이기주의에 기반한 분쟁과 시위의 확산, 시민 윤리와 공동체 의식의 실종, 조정자로서의 법적 정의와 정치적 권위에 대한 불신 등 현대 사회의 제 문제는 무분별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시민들의 사회적 의무감와 공동체적 연대의식 등을 제고하기 위하여 공화주의 이념을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하여 좌파 학자들은 공화주의가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 ‘부족’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점증하고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사회경제적․이념적․문화적 모순과 반목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촉구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제 세력들의 의사와 이익을 반영할 정치적 채널의 확보를 중시하고 이들 간에 공공선에 입각한 조정과 타협을 주장하는 공화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나친 단순 도식화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설명하자면, 전자는 고대 아테네적(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에, 후자는 고대 로마적(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에 주요한 방점을 부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의 경향은 현대의 공동체주의자(대표적인 경우가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덜 교수)․보수주의자․종교적 우파 이론가들에게서, 후자의 경향은 현대의 자유적 공화주의자․진보적 정당민주주의론자(대표적인 경우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처럼 최근에 이르러 공화주의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것의 학문적․현실적 위상은 과거와 현저히 다릅니다. 현대에 다시 부각되는 공화주의에서, 과거 전제정치나 민주정체를 대신한다는 혼합정체 주장과 같은 ‘보도(寶刀)’적 힘은 없습니다. 현대에 공화주의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이념적․실천적 부족분을 메워주거나 수사(修辭)적 미화를 위하여 누구나 한번쯤 신어 보는 ‘신데렐라 유리구두’처럼 느껴집니다. 

▲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민주주의의 불만>>, 샌들 교수는 대표적인 우파 공동체주의자입니다. 그의 저서인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우리나라에서 정말 생뚱맞은 정의론 열풍을 일으킨 저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저서를 통하여 그의 정치철학이 갖는 현실적 맥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민주주의의 불만>>을 통하여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저서에서 20세기 미국의 정치, 사법史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적 경향을 분석하며 이러한 경향이 현재의 불만스런 민주주의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고, 그것의 극복 방법으로 공동체주의 내지는 공화주의를 부활 ! 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를 가장 닮은 홉스, 그를 넘어서 근대로 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는 정치와 정치학의 독자성, 현실주의적 정치관, 결과주의적 정치윤리관, 시민과 자유에 기반한 공화주의, 대립과 갈등에 대한 재해석 등 고․중세와 전혀 다른 혁명적 전복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근대의 몇몇 징후(예컨대 이익, 자유, 갈등, 권력, 국가 등)를 누구보다 훌륭히 읽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서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기란 어렵습니다. 그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는 자신의 정치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처한 특정한 인물의 처신과 그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덧붙이는 식으로 전개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라는 책제목처럼, 그는 군주의 권력과 인민의 자유 사이에서 불안하게 동요할 뿐, 그것으로 새로운 근대 정치의 패러다임(홉스의 절대주의, 그 이후 로크의 자유주의와 같은)을 완성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의 궁극적 이상은 ‘고대’(위대한 교사들과 고대 로마의 혼합정체)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르네상스(Renaissance,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재생을 의미)적 인간’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최초의 ‘근대’ 정치사상가라는 영예는, 그로부터 100년 후에 등장하는, 다음 회에 살펴 볼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에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의 세상과 정치를 보는 눈은 역대 어느 사상가보다도 마키아벨리를 닮았지만, 그의 정치적 결론은 마키아벨리와 전혀 다릅니다. 그의 결론은 고대가 아닌 전혀 새로운 ‘근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