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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문(慶州崔門) 충효각(忠孝閣)
황경수 | 승인 2020.03.02 08:50

경주 최문(慶州崔門) 충효각(忠孝閣)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구룡리 382-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40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최문(慶州崔門) 충효각(忠孝閣)은 경주 최씨(慶州崔氏) 공진(拱辰) 최응허(崔應虛, 1572∼1636)와 그의 아들 최란선(崔蘭善, 1609∼1637)을 기리기 위하여 1861년(철종12)에 세운 정려이다. 공진(拱辰) 최응허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군(淸軍)과 싸우다 죽음을 맞아 병조참판(兵曹參判)의 벼슬이 내려졌고, 그의 아들 최란선은 평소 효행이 깊어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에 품계를 받은 바 있다.

지금의 충효각은 1984년에 다시 지은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자연석과 흙으로 담장을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올린 후 출입구에는 철제문을 달았다. 또한 정려의 4면을 홍살로 막아 보호하고 있다. 내부에는 2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유명조선국충신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최응허지문(有明朝鮮國忠臣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崔應虛之門)’, ‘유명조선국통훈대부군자감주부최란선충효지문(有名朝鮮國通訓大夫軍資監主簿崔蘭善忠孝之門)’이라고 쓰여 있다.

정려의 앞에는 세워진 비석은 상부에 가첨석을 얹었으며 우아하게 무궁화문양을 새겨 넣었다.

*최응허(崔應虛, 1572∼1636)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拱辰)이다. 최수준(崔秀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언방(崔彦邦)이고, 아버지는 최완(崔𡸥)이며, 어머니는 최노식(崔盧植)의 딸이다. 그는 1601년(선조34) 생원시에 합격한 뒤 1603년(선조36) 식년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선조 때 예조좌랑(禮曹佐郎)‧병조좌랑(兵曹佐郎)을 역임하였으며, ≪선조실록≫을 편찬하는 편수관(編修官)이 되었다.

1616년(광해군8)에는 서장관으로서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잘 해결하였다 하여 진주사(陳奏使) 민형남(閔馨男), 부사(府使) 허균(許筠) 등과 함께 전답 10결(結)과 노비 2사람을 임금께서 내려주었다. 1611년(광해군3)에는 경기도사로서 서경덕(徐敬德)의 치제관(致祭官)을 맡았다. 그 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수원부사(水原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조천일기(朝天日記)』는 현재 남아 있는 최응허(崔應虛, 1572~1636)의 유일한 저작으로 추정되는 일기이면서, 광해군 말년 북경으로 향하는 해로사행(海路使行)이 어떠한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다. 한양에서부터 북경에 도착하여 안주로 되돌아올 때까지 9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자별로 날씨, 유숙한 장소, 해당 날짜의 활동이 담겨져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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