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여해 충신각(池汝海 忠臣閣)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은행1리 269-9, 269-4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이 충신각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철산부사(鐵山府使) 지여해(池汝海, 1591∼1636)의 충절을 기리어 1713년(숙종39)에 세운 정려이다. 그는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우다가 순절하였고, 그의 충성심이 알려져 인조 때에 병조참판(兵曹參判)의 벼슬이 내려졌다.

지금의 충신각은 1960년에 다시 세운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정려의 주변은 철제로 된 울타리를 두르고 출입구는 철제문으로 만들었으며, 정려에는 바람을 막아 주는 풍판을 달았다.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 비석에는 ‘통정대부행철산도호부사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충신지여해지문(通政大夫行鐵山都護府使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忠臣池如海之門)’, 기문판에는 ‘통정대부행철산도호부사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충신지여해지문(通政大夫行鐵山都護府使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忠臣池如海之門)’라고 쓰여 있다.

편액에는‘통정대부행철산도호부사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충신지여해지문(通政大夫行鐵山都護府使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忠臣池如海之門)’라고 충신문과 ‘중수기(重修記)가 걸려 있다.

*지여해(池汝海, 1591∼1636)는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이다.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湧奇, ?~1392)의 후손이며, 시직(侍直) 지영수(池永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지운(池芸)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지경담(池景湛)이며,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郞) 김정현(金挺賢)의 딸이다.

1627년(인조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되었다.

배소에 있을 때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나라 장수 유흥치(劉興治)의 변란에 백의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고 장연부사가 되었다가 얼마 뒤 철산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체찰사(體察使) 김류(金鎏)의 비장(裨將)으로서 지략을 발휘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의 포위 속에 있을 때 김류에게 출전을 간청하여 임금의 허락을 받고 어영포수(御營砲手) 200여 명을 이끌고 나아가 싸우다 전원이 전사하였다. 인조는 매우 슬퍼하고 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의 벼슬을 내리고 전사자를 수습하여 매장하게 하였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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