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오른쪽에 서 있는 안내판을 읽어보니 한계리(閑溪里)석조비로사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한계1리 419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석조비로사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은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안내판 오른쪽에 있는 불상은 화강암의 주형광배(舟形光背)와 대좌(臺座)를 함께 조각하였는데 부조(浮彫)가 높지 않다. 광배의 윗부분과 불두는 마멸이 심한데 불상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안면은 인위적인 손상을 많이 입어 확인이 잘 안되나, 정면을 직시(直視)한 듯한데 눈과 코는 깊이 패여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고 목에는 삼도(三道)의 흔적이 보인다. 당당한 어깨에는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쳐 양팔과 무릎을 덮었다. 수인(手印)은 왼손의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잡은 지권인(智拳印)을 결하여 비로사나불임을 나타내준다. 광배에는 두광과 신광이 표현되었으나 별다른 문양은 없다. 대좌는 마멸되어 확인이 어려우나 연화문이 없는 단순한 형태로 보인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은 한계리 노계 마을의 절터에 있었으나 현재는 마을 앞 정자나무 뒤에 놓여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고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있던 탓에 마멸이 심해 불상의 얼굴 형체를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렵다. 희미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불상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화강암의 주형광배(舟形光背)와 대좌(臺座)를 함께 조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 110cm, 하단 너비 58cm, 두께 41cm, 불상 높이 74cm, 머리 높이 24cm, 어깨 높이 50cm, 어깨 너비 50cm, 무릎 높이 20cm, 무릎 너비 69cm로 부조(浮彫)가 높지 않은 편이다. 광배의 윗부분과 불두는 마멸이 심하고, 안면 역시 인위적인 손상을 많이 입어 확인이 잘 안되나, 정면을 직시(直視)한 듯한데 눈과 코는 깊이 패여 있다.

*청주목사(淸州牧使) 이익저(李益著)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이익저(李益著, ?~?)는 조선 후기 문신‧청백리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조암(釣巖) 이시백(李時白)의 종손이다.

관직은 청주목사(淸州牧使)와 상주목사(尙州牧使) 등을 지냈다. 청렴과 인덕으로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전라도 태인현감(泰仁縣監)으로 재직했을 때는 백성들이 그의 덕을 기려 관덕정(觀德亭)을 세우는 등 재직하던 지역의 백성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또 1708년(숙종34)에는 암행어사의 감찰에서 포계(褒啓)를 받았다. 『청구야담(靑邱野談)』에 조현명(趙顯命) 과의 일화가 전한다. 아들은 이성(李渻)이고, 손자는 이명덕(李命德)이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